일몰의 황홀경 속에서 초겨울의 정취 만끽

[주말이 즐겁다] 안면도
일몰의 황홀경 속에서 초겨울의 정취 만끽

차가운 바닷바람에도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 갈매기의 애잔한 울음소리, 쉬지 않고 들락거리며 갯벌을 애무하는 파도의 손길, 인적 없이 해변에 외로이 찍혀있는 긴 발자국, 그리고 온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바다로 잠기는 홍옥 같은 태양….

계절은 어느덧 겨울의 들머리인 12월. 왠지 모를 그리움이 물씬 풍겨오는 이런 계절엔 서해로 가보자.

서해안의 안면도는 겨울해변의 정취와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섬이다. 안면도의 수많은 해안과 항구 중에서도 꽃지해안의 낙조는 서해안 3대 낙조 가운데 하나로 꼽힐 정도로 아름답다.

꽃지해안 백사장 북쪽 끝에는 할미ㆍ할아비 바위라 불리는 두 개의 바위봉우리가 솟아있다. 신라 때 전쟁에 나간 지아비를 평생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는 가슴 아픈 전설을 간직한 이 바위는 꽃지해안의 보물이다. 두 봉우리 너머로 떨어지는 일몰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천년 사랑에 얽힌 슬픈 전설은 노을에 뜨거운 생명을 불어 넣어준다.


서해안 3대 낙조로 꼽히는 꽃지해안

아름다운 일몰과 잘 어울리는 ‘꽃지’라는 예쁜 이름은 모래밭에 붉은 해당화가 많아 지어진 것이라 하는데, 아마도 꽃지해안에 저 ‘노부부’가 없었다면 여름 해당화가 아무리 곱다 한들 이처럼 유명해지진 못했을 것이다.

붉은 햇덩이가 수면 아래로 잠기자 노부부 사이로 어두운 장막이 드리워진다. 바다가 물러앉은 썰물을 틈 타 노부부에게 다가간다. 찰박거리는 파도 소리는 한없이 정겨운데, 사이가 생각보다는 멀다. 이렇게 애틋하게 얼마나 오랜 세월을 보냈을까….

안면도는 꽃지해안 일몰과 더불어 중부 서해안에서 가장 좋은 품종을 자랑하는 안면송(安眠松)으로도 유명하다. 일제 시대까지만 해도 안면도는 섬 전체가 푸른 숲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소나무가 울창했다. 그래서 안면도엔 ‘도끼 하나만 있어도 잘살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지만, 해방 후 무자비한 남벌로 많이 훼손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꾸준히 소나무 보호정책을 편 덕에 다시 예전처럼 안면송의 솔향을 맡을 수 있게 되었다.

세계에서도 빠지지 않는 리아스식 해안답게 해안선의 굴곡은 아름답고 섬 곳곳에 자리한 백사장도 솔숲과 잘 어울린다. 안면도 서쪽 해안을 따라 백사장, 삼봉, 기지포, 안면, 방포, 샛별, 장돌, 바람아래 등 질 좋은 모래가 가득한 백사장이 산재해 있어 해안 어딜 가도 겨울바다를 실컷 거닐 수 있다.

백사장항은 안면도에서 들어서자마자 만날 수 있는 첫 항구. 이곳은 꽃지보다 먹을거리가 풍부한 곳이다. 도다리 주꾸미 간자미 개불 같은 어물을 한 짐 부려놓고 “일루 들어오슈”하며 행인을 부르는 구수한 사투리도 좋고, 단체로 들이닥친 손님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란도 괜찮다.

안면도의 맨 남쪽 끝 영목항은 조용하고 운치 있는 항구다. 가는 길에 고남면 패총박물관에서 안면도에서 살았던 선사시대인들의 흔적을 살펴보자. 2002년에 설립된 이 박물관에는 상설전시실, 역사실, 영상기획전시실, 체험학습실 등의 시설이 있다. 빗살무늬토기 모형과 원삼국, 고려 토기 22점 등 유물 470여 점이 주요 소장품이다.

상설전시실에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디오라마와 터치스크린도 갖추고 있고, 역사실은 원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신시대의 토기ㆍ자기 등 22점을, 영상기획전시실은 태안에 분포한 문화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과 영상 자료가 있다.


조선시대 운하 공사로 섬이 된 안면도

‘동물이나 사람이나 편안히 누워 쉴 수 있는 섬’이란 뜻을 지녔다는 안면도(安眠島)는 원래는 섬이 아닌 육지였다. 고려시대 지방에서 걷은 조세를 선박을 이용하여 운송하는 조운(漕運)제도가 정비되면서 안면도가 연결되어 있던 태안반도는 위정자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삼남의 세곡은 모두 서해를 통하여 보령 앞바다~태안, 안흥량~당진 난지도를 경유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태안반도 앞바다인 안흥량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유속이 빠른데다 암초가 많아 사고가 빈번한 해역이라 사고가 잦았다.

이는 국가 재정의 손실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대안을 찾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조거(漕渠)라 불리는 운하(運河)였다. 태안과 서산 사이의 금북정맥 산줄기를 파내고 운하를 만들면 안흥량을 거치지 않고도 바로 당진의 난지도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운하공사는 고려 때인 1134년(인종 12) 처음 시도한 이래, 조선시대까지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차선책으로 조선시대인 1638년(인조 16)에 안면도 북쪽 남면 신온리와 안면읍 창기리 사이의 개미목에 운하를 만드는 데 성공했고, 안면도는 섬이 되었다.


▲ 교통 안면도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접근하는 게 가장 빠르다. 서산 나들목→32번 국도→서산→태안→77번 국도→19km→안면교→11km→꽃지해안. 또는 홍성나들목→96번 국가지원 지방도→천수만방조제→77번 지방도→안면도 코스를 선택해도 괜찮다.


▲ 숙식 안면도엔 각 해안이나 항구마다 숙박시설이 많다. 꽃지해안 민박촌엔 조약돌(041-673-3136), 내고향(041-673-3447), 꽃지(041-673-3451) 등의 민박집이 있다. 안면도자연휴양림(041-674-5019)은 안면송 향기를 실컷 맡을 수 있는 숙박지. 기타 자세한 것은 태안군청 문화관광과(041-670-2544)에 문의.

입력시간 : 2003-11-2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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