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읽기] 레드 제플린은 레드 제플린이었다


재즈음반을 찾으러 음반가게에 들렀다. 가게의 포스터를 통해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베스트 앨범이 출시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레드 제플린 라이브 앨범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 이 앨범이 언제 나왔지? 여름에 출시된 앨범인데, 신문과 인터넷에서 음반소식을 스쳐 지나가 버렸나 보다.

이제는 함께 음악을 듣고 정보를 교환할 또래가 없다 보니 생겨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보다는 겨울의 문턱에서 레드 제플린을 만나는 일이 훨씬 그럴듯하다는 생각을 하며, 몇 장의 음반을 챙겨 가지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레드 제플린의 라이브를 수록한 앨범으로는 ‘The song remains the same’(1976)과 ‘BBC sessions’(1997)가 있다. 대단히 탁월한 앨범들이지만 전자가 영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의 형식이었고 후자가 영국 BBC 라디오의 방송 실황을 담은 것이라 라이브의 생동감을 느끼기에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1972년 LA공연 실황을 담은 ‘How the west was won’은 그들의 라이브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최초의 음반인 셈이다.

레드 제플린은 레드 제플린이었다. 프리재즈를 연상시키는 즉흥연주들이 숨막히게 펼쳐졌고, 31년이라는 시간의 격차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31년 전에 이러한 연주가 가능했다는 사실에 아연할 따름이었다. 음반기획자 이주엽의 말처럼, 진짜 음악 앞에서 시간은 무효였다.

1968년 ‘야드버즈’의 뒤를 이어서 출발한 레드 제플린은 지미 페이지(기타), 로버트 플랜트(보컬), 존 폴 존스(베이스), 존 보넘(드럼)이 모여서 만든 밴드이다. 이들이 음악활동을 본격화했던 1970년대 초반은, 한마디로 상실의 시대였다.

설마 했던 비틀즈의 해산(1971)이 현실로 다가왔고, 히피의 상징인 자니스 조플린이 약물과다복용으로 돌연사했으며(1970),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자유와 반항의 정신을 보여주었던 지미 헨드릭스가 2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1970).

이러한 상황에서 레드 제플린은 9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하며 록을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1970년대의 문화적 상실감을 예술적인 경이로움으로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1980년 9월 드러머 존 보넘이 급작스럽게 사망했고, 페이지는 보넘이 없는 레드 제플린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해산을 선언했다. 신화가 완성되는 비극적인 순간이었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겠지만 개인적으로 레드 제플린은 중ㆍ고교 시절의 복음(福音)이었다. 교과서 이외의 책 한 줄 읽을 시간이 없었던 시절에, 레드 제플린은 신화였고 문화였고 예술이었다. ‘Stairway To Heaven’을 처음 들었을 때, 너무 아름다우면 죽고 싶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가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사춘기 소년이 느꼈던 황홀경이자 극한의 미적 체험이었던 셈이다. 레드 제플린을 통해서 블루스, 하드록, 헤비메틀, 포크록 등과 같은 다양한 장르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록음악의 역사를 하나의 흐름 속에서 공부한 셈이 되었다. 그밖에도 레게 리듬을 가미한 펑크 스타일의 ‘D’yer Ma’ker’나 냉정하게 조율된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Whole Lotta Love’는 여전히 놀라운 즐거움이다.

레드 제플린은 많은 것을 가르쳐준 과외선생이었다. 불멸의 블루스 넘버 ‘Since I’ve Been Loving You’는, 칸트의 ‘판단력비판’을 읽기도 전에, 예술에서의 숭고(崇高)가 무엇인지 알려 주었다. 대학에서 배운 미하일 바흐친의 다성성(多聲性) 개념 또한 이미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는 것이었다.

레드 제플린의 음악이 침묵과 소음, 협화음과 불협화음, 서정성과 몽환성, 실험성과 대중성, 질서와 무질서가 공존하는 소리의 축제이자 놀이의 시공간이었던 때문이다. 그들의 음악에는 억압이나 종속의 지점들이 발견되지 않는다. 개인의 독자성과 전체의 포괄성이 이상적인 조화의 지점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그들은 음악적 유토피아의 표상이기도 하다.

레드 제플린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자면 3박 4일은 족히 걸릴 것 같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으니 이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음악에 대해서 이해 가능하면서도 번역 불가능한 모순적 특징을 통합시킨 상징 체계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마도 레드 제플린의 음악에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닌가 한다. 음악으로 들으면 너무나도 잘 이해되지만, 그 감동을 글로 옮기려면 눈앞이 깜깜해지고 만다. 15년 넘게 레드 제플린의 음악을 들었는데, 아직도 나는 그들의 음악을 표현할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할 따름이다. 레드 제플린은, 레드 제플린이다.

김동식 문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3-12-03 11:02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pa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