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발판으로 영남 앞세워 수도권 승리로 전국정당 변모 목표

민주당 조순형 시대 개막
호남 발판으로 영남 앞세워 수도권 승리로 전국정당 변모 목표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민주당은 분열의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내년 총선에서 낡은 정치와 부패원조당인 한나라당, 배신분열정당인 열린우리당을 무너뜨리고 반드시 제1당으로 승리할 것입니다.’

민주당의 새 선장으로 선임된 조순형 당 대표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떠 있는 당선사례의 글이다. 조 신임 대표는 17대 총선의 1당 등극을 위해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과의 차별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선친인 유석 조병옥 박사의 유지를 잇는 정통 야당의 개혁 대표로서, 또 서울 출신의 비호남권 대표로서 갖는 상징성을 한껏 내세워 DJ와 호남 대주주의 영향권에 있던 민주당을 지역 색채가 없는 전국 정당으로 변모시켜 야당 정통성을 찾아가겠다는 포부다.

이번 경선의 결과는 함축하는 바가 크다. 먼저 8명의 후보가 복수투표로 순위를 가린 대표 경선에서 1,2위가 비호남 출신이다. 조 대표가 31.03%의 지지율을 얻었고 턱밑까지 추격해 오던 추미애 의원은 21.4%에 그쳤다. 호남 출신의 김경재 의원(11.93%)이 3위에 올라 나름대로 지역 대표성을 인정받았고, 4위는 장재식(11.44%)의원이, 5위는 김영환 의원(8.84%)이 차지했다.

반면 호남 출신 이협 김영진 장성민 전ㆍ 현직 의원들은 5위권 밖으로 쳐져 상임 중앙위원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2위에 오른 추 의원은 내년 총선의 실질적인 책임을 맡는 선대본부장 자리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호남 출신 의원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민주당에서 비 호남 출신 의원들의 이 같은 약진은 바로 ‘부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내년 총선에서의 선전을 통해 화려한 재기를 해달라는 염원이 담긴 것이다. 호남을 발판으로 삼되 조순형 대표를 중심으로영남 출신의 추미애 의원을 앞세워 수도권과 영남에서도 의석을 차지할 수 있는 탈 지역, 정통 야당의 기틀을 세워달라는 뜻이다. ‘조순형 호’의 향후 항해 일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대목이다.


조정역 자임으로 정국주도 노려

조 대표는 12월1일 박관용 국회의장과 회동을 시작으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김원기 열린우리당 의장, 김종필 자민련 총재를 잇따라 예방한다. 조 대표는 또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을 면담하고 김대중ㆍ김영삼 전 대통령도 찾아갈 계획이다.

취임 인사를 겸한 조 대표의 ‘순례’에 따라 민주당은 자연스럽게 극한 대치 정국 속에서 조정, 또는 중재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갈등의 한 축이 되기보다는, 해결사 역할을 맡아 민주당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그가 11월30일 첫 상임중앙위원 회의에서 “벼랑 끝 정치는 안 된다. 민주당이 나라를 위해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조 대표는 우선 ‘선(先) 국회복귀, 후(後) 특검법 논의’ 카드로 한나라당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고, 청와대에 대해서도 “재신임을 즉각 철회하고 정치 정상화에 협조하라”고 압박했다. 한나라당에게는 특검 재의 찬성을 무기로, 청와대에는 재신임 철회와 민생 현안의 국회 통과 등을 앞세워 ‘채찍 반(半) 당근 반’ 전략을 펴고 있다.

캐스팅보트를 넘는 실질적인 조정역을 자임하기 위해서는 양극으로 치닫는 한나라당과 청와대 사이를 어떤 식으로라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 국민에게 달라진 민주당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여기에는 열린우리당에 대한 의도적인 배제 전략이 깃들어 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으로 갈린 정국 주도권 싸움에 민주당이 끼어 들어 조정할 경우 열린우리당은 어쩔 수 없이 변두리로 밀려날 것이란 계산이다.

이를 위해 당분간 한나라당, 청와대와 각각 긴장상태를 유지하며 차별화에 나설 방침이다. 자칫 특검재의 정국에서 한ㆍ민 공조로 비춰질 경우 민주당의 고정 지지층마저 균열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 청와대에 대한 공격도 멈출 기색이 전혀 없다. 새롭게 구성된 민주당 지도부 모두가 경선 과정에서 ‘노무현 때리기’에 한 목소리를 냈고 특검법과 재신임, 대선자금 등 각종 사안에서 청와대와 대립 각을 세운 것이 정국을 돌파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영환 신임 상임중앙위원장은 “노 대통령과 한나라당 대선자금에 대한 독자적인 특검법 발의도 생각할 수 있다”고 밝혀 항후 민주당의 독자적인 활로 찾기가 계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반(反)한나라, 반 노무현, 반 열린우리당이란 이른바 ‘3반정책’의 시작인 셈이다.

물론 암초도 깔려 있다. 추 의원 등을 위시한 개혁세력과 구 주류를 정점으로 한 기존 세력간의 잠복된 힘겨루기다. 내년 총선의 조직책 선정을 놓고 두 세력간의 힘겨루기가 수면 위로 부상하면 조 대표의 리더십은 도마 위에 오르게 된다.


조 대표, "열린우리당 조심해"

조 대표의 당선 사례 문구에서는 열린우리당을 배신분열정당이라고 적고 있다. 물론 한나라당도 부패원조정당이라고 공격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공세 강도는 열린우리당 쪽이 더 셌다. 그만큼 조 대표의 지향점은 먼저 열린우리당을 넘어선 뒤 한나라당과 일전을 불사하겠다는데 맞춰져 있다.

내년 총선에서 선전을 노린다면 민주당은 일단 호남은 반드시 석권해야 하는 지상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 및 수도권에서 약진을 기대해야 한다. 하지만 호남 차지를 위해 이곳 출신 인사나 구 동교동계가 대표로 나서게 될 경우 자칫 수도권 참패와 호남에서마저 기득권 지키기에 연연한다는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다. 사실 이 때문에 서울 출신 대표, 대구 출신 선거본부장의 새 체제가 출범됐고 상대적으로 대주주였던 한화갑 박상천 김옥두 의원 등은 한 켠으로 밀려난 것이다.

민주당의 입장에서 한나라당은 사실 2차적인 싸움 대상이다. 호남과 영남으로 극명하게 엇갈린 텃밭 지역은 사실상 승부가 갈려져 있는 상태라 그다지 신경 쓰이는 대목이 아니다. 민주당의 표를 갉아먹을 가능성이 큰 열린우리당은 조 대표 입장에서는 그냥 묵과할 수 없는 정적이다.

이를 입증하듯 조 대표의 당선이후 나타난 양당 및 청와대의 반응은 크게 달랐다. 한나라당은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분위기다. 당면 현안인 노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사건 특검법안 처리문제와 관련, 조 대표가 시종일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반대 및 재의시 찬성 당론 입장을 밝혀왔다는 점에서 ‘한ㆍ민 공조’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도 섞여 있다.

열린우리당은 “개혁의 동반자가 되길 바란다”고 원칙 환영 입장을 밝히면서도 내심 ‘민주당 구 주류인 정통모임이 당권을 장악했다’며 평가절하했다. 또 특검법 재의에 대해 조 대표가 ‘당론 찬성’입장을 밝힌 바 있어 ‘한ㆍ민공조’가 가시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도 표출했다.

정동채 홍보위원장은 “민주당의 새 지도부는 훌륭한 분들이지만,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끊임없는 저주와 폭언으로 짧은 인기를 얻는 분들이 있다”며 “열린우리당은 민주당과 함께 건전한 개혁경쟁, 국민통합경쟁, 정책경쟁하는 정당이 되길 바란다”며 민주당의 한나라당 접근 가능성을 견제하려고 애썼다.

청와대는 기대반 우려반의 표정이다. 다만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연합공천론에 대해 서울 출신의 조 대표가 어떤 입장을 취할 지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조 대표는 열린우리당과의 관계에 대해 공조도 재합당도 절대 불가능하다고 못박아 왔다. 더구나 정통모임 등 구 주류의 지원사격으로 대표에 오를 수 있었던 입장을 감안한다면 양당간 연합 제휴 등의 시나리오는 물 건너 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니 인터뷰


"분당·대통령 탈당, 총선서 심판"

- 대표에 선출된 배경이 뭐라고 생각하나.

"이번 경선은 분당이라는 창당 이래 최대 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평상시 조직과 돈에 좌우됐던 과거 여야 정당의 경선과는 양상이 달랐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비상한 결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 영향을 줘서 저같은 사람이 된 것 같다."

- 소장파는 개혁을, 중진은 안정을 바라는 상반된 요구가 있다.

"본래 정치는 사회 각 분야의 상충되고 첨예하게 대립되는 견해를 화합하고 조정하는 분야다. 소장파와 중진의 상충하는 요구를 승화시켜 조화와 균형의 리더십을 발휘하겠다. 하나는 취하고 하나는 버리는 것은 정치인의 영역이 아니다."

- 열린우리당과의 재통합 가능성은.

"수도권에서 공멸의 위기라고들 하는데 만약 연합공천이나 재통합을 시도하면 왜 분당했느냐, 급하니까 편의상 손잡는 것 아니냐고 (유권자가) 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다. 분당 사태는 기본적인 정치도덕의 문제다. 설사 공멸하더라도 대통령의 탈당 등은 총선을 통해 심판받아야 한다."

- 한나라당은 특검공조를 기대하고, 열린우리당은 기득권세력의 승리라고 폄하했다.

"특검법은 국회에서 헌법절차에 따라 재의결해야 하고, 한나라당은 하루빨리 복귀해 재의결해야 한다. 신당하시는 분들이 기득권세력 승리라고 했다는데 그런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찬성하지 않는다. 정치인은 그렇게 편향돼서는 안 된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 2003-12-03 15:45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