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때려 족쇄, 손배소로 맞불법워 '유사 휘발유 아니지만 공급중단명령 유효' 판결로 논쟁 재점화

다시 불 붙은 세녹스 공방
세금때려 족쇄, 손배소로 맞불
법워 '유사 휘발유 아니지만 공급중단명령 유효' 판결로 논쟁 재점화


“석유사업법이 금지하고 있는 유사 휘발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단 산업자원부가 관련 업체에 세녹스 원료공급 중단을 명령(용제수급 조정명령)한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석유사업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된 성정숙 프리플라이트 사장 등에게 법원이 11월20일 무죄를 선고했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 세녹스 제조사인 프리플라이트사는 4개월 가량 중단했던 세녹스 제조와 판매를 재개했다. 소비자들은 ‘다시 돌아 온 세녹스’ 에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전국 43개 판매점에서 하루 30만~40만 리터가 판매되면서 판매 중지 이전의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판매 재개 1주일여 만에 세녹스는 다시 자취를 감췄다. 잔뜩 독이 오른 정부가 판매 단속과 세금 추징,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세녹스 제품에 대한 압류 조치에 나선 결과였다. 법원이 법리적으로는 분명 세녹스 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그래도 정부의 행정명령은 유효하다는 애매모호한 단서를 붙인 때문이었다.

세녹스 때문에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해 온 주유소 업계는 세녹스 판매가 계속될 경우 동맹 휴업에 들어가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이에 맞서 세녹스 판매인들은 정부를 상대로 800억원에 달하는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법원 무죄 판결로 다시 촉발된 세녹스 파동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분위기다.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이 논쟁 촉발

세녹스는 지난해 6월 벤처기업 프리플라이트사가 2년여간의 연구 끝에 솔벤트(용제) 60%에 톨루엔 10%, 메틸알코올 10%, 방향족 화합물 20%를 혼합해 내놓은 제품.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연구원은 제품 판매에 앞선 성능 검사에서 휘발유에 비해 일산화탄소 배출이 34% 줄어드는 효과를 낸다며 휘발유에 적정 비율로 섞어서 사용할 수 있는 ‘휘발유 첨가제’라는 판정을 내렸다.

세녹스가 정부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60대 40’의 배합 비율 때문이었다. 첨가제라는 것이 통상 휘발유에 1~2% 정도 첨가되는 것인데, 세녹스는 무려 40%를 적정 혼합 비율로 제시했다. 더구나 휘발유를 전혀 넣지 않고 세녹스만 100% 넣어도 자동차 운행이 가능했다.

환경부의 제품 유형 판정을 뒤집고 산업자원부가 ‘유사(가짜) 휘발유’라는 유권 해석을 내린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이 화를 자초한 것이었다.

현행 교통세법 등에 따르면 휘발유와 유사한 대체 유류에 대해서는 교통세, 교육세, 주행세 등이 부가되는 반면, 첨가제의 경우는 리터당 54원의 부가세만 내면 된다. ‘휘발유 첨가제냐, 아니면 유사 휘발유냐’가 중요한 이유다. 제조 원가, 즉 공장도 가격 면에서 세녹스는 리터당 540원으로 휘발유(379.6원)보다 1.5배나 높은데도 불구하고, 실제 판매가는 990원으로 1,300원이 넘는 휘발유보다 훨씬 저렴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현재 휘발유에는 리터당 112.3원의 부가세 외에도 572원의 교통세, 85.8원의 교육세, 그리고 85.5원의 주행세가 부과되고 있다.

만약 세녹스에 휘발유와 동일한 세금이 붙는다면 판매 가격은 현재의 두 배에 가까운 1,800원 수준으로 껑충 뛸 수밖에 없다. 최대 무기인 가격 경쟁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부와 업체, 아전인수격 해석

아직 1심에 불과하지만 이번 법원 판결로 세녹스를 ‘유사 휘발유’라고 줄곧 규정해 온 정부의 주장은 정당성을 잃게 됐다. 판결문에서 세녹스가 첨가제라고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유사 휘발유라고 볼 수는 없음을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용제수급 조정명령이 유효하다는 단서는 현재 행정소송이 진행중인 만큼 형사 법원에서는 판단을 하지 않겠다는 것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유사 휘발유’라는 주장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산자부 석유산업과 관계자는 “법원 판결에 승복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며 “검찰이 곧 바로 항소를 한 만큼 상급심에서 얼마든지 판결이 뒤집어 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세녹스와 유사한 제품인 LP파워의 판매자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내려진 적도 있기 때문에 최종심의 판단이 내려지기까지는 정부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법원 판결 이후 더욱 공세적으로 원료 공급 업체들에게 용제 공급을 중단토록 하고, 판매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프리플라이트 측은 “공권력 남용”이라고 주장한다. 이 회사 구동진 차장은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 추정을 하는 것이 형사법의 기본 원칙”이라며 “게다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마당에 계속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은 공권력을 남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공세를 폈다.


첨가제냐, 정상 휘발유냐

겉으로는 큰 소리를 치고 있지만 정부 역시 법원의 무죄 판결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세녹스 판매를 집중 단속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단속에는 나서지 않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부는 대신 국세청을 통해 600억원에 달하는 이전 세녹스 판매분에 대한 세금 추징과 함께 제품 압류를 통해 판매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우회적인 제재 방식을 택했다.

정부는 세녹스 판매 1주일 만인 11월28일 전남 영암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세녹스 제품과 원료에 대해 압류에 들어가 사실상 세녹스 판매를 봉쇄했다.

“설사 이번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세녹스가 첨가제임을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사 휘발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정상적인 석유 제품이라는 얘기입니다.” 첨가제가 아닌 이상 유사 휘발유이든 정상 휘발유이든 교통세를 비롯한 세금을 물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판단이다.

정상 휘발유에 대해 판매를 단속하는 것은 추후에 논란을 부를 수 있지만, 세금 추징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최종심까지 법원의 동일한 판단이 이어질 경우 이제 공방은 ‘첨가제냐, 유사 휘발유냐’가 아니라 ‘첨가제냐, 정상적인 휘발유냐’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법원의 무죄 판결에 잔뜩 고무돼 즉시 세녹스 판매 재개에 나섰던 프리플라이트 측도 정부의 강공에 맞서 ‘결사 항전’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세녹스 판매인들의 자치 기구인 세녹스판매인연합회는 “정부의 단속과 영업 중단으로 입은 물질적 피해를 배상받아야 한다”며 870억원 가량의 손해배상 소송을 곧 제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법원 무죄 판결 →세녹스 판매 재개 →정부 특별 단속 및 세금 추징 방침→주유소협회 동맹 휴업 예고 →세녹스 제품 압류 →세녹스 판매인 거액 소송 방침 등 파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확대되는 추세. 이제 세녹스가 엄청난 세금을 물어내고 문을 닫느냐, 아니면 정부가 두 손을 드느냐의 양극단의 결과만 남은 듯이 보인다.

극적으로 절충안이 모색될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다. 프리플라이트 측이 최근 정부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세녹스를 연료첨가제나 석유 원료로 명확히 구분해 판매를 허용한다면 현재 국세청에 체납된 600억원의 세금 문제를 해결할 용의가 있다.

연료 첨가제로 인정받는다면 첨가 비율을 조정해 판매할 수도 있다”고 한 발 물러서는 듯한 인상을 풍겼기 때문이다. 허나 첨가 비율을 현재 40%에서 정부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인 1~2%까지 낮추는 것은 세녹스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어 당분간 공방은 쉽사리 사그러들지 않을 듯하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 2003-12-03 16:24


이영태 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