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칼잡이의 황당코미디당위성과 근거 미약한 스토리 전개, 엉뚱함에 "그냥 웃자"

[시네마 타운] 낭만자객
어설픈 칼잡이의 황당코미디
당위성과 근거 미약한 스토리 전개, 엉뚱함에 "그냥 웃자"


개봉 전에 영화에 대한 간단한 줄거리와 사진 한 장을 봤을 때 재미있을 것 같은 영화가 있다. 그런데 막상 완성된 영화를 보자 우스울 것 같았던 부분은 영화에서 극히 표피적인 차원에 지나지 않을 때가 있다.

석기시대의 자동차와 볼링게임이라는 아이디어만으로도 재미있을 것 같았던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1994)은 기계에 의존하지 않은 비슷한 발명품을 보는 신기함이 몇 분 지속되었을 뿐 그 자체가 2시간 여 동안 흥미를 유지시키지는 않았다.


현재와 오버랩 되는 불평등 국제관계

<낭만자객>도 조선시대의 나이트클럽 ‘주리아나’ 혹은 얼빵한 자객단의 아이디어는 영화 전체를 구제해주지 못한다. 노예들에 의해 나이트클럽의 특수 효과들이 이루어지는 걸 제외하고는 그 외의 모든 것이 현대와 흡사한 내부의 모습은 오히려 내러티브의 흐름을 방해하고 의미 없는 치장으로 시간을 끈다는 느낌을 준다.

<낭만자객>은 윤제균 감독의 세 번째 영화다. 이전의 <두사부일체>와 <색즉시공>도 손색없이 잘 만들어진 코미디라기 보다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인 영화였다.

조폭이 뒤늦게 공부하러 학교에 가서 사학의 비리에 정면으로 맞서게 된다는 <두사부일체>나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와 <아메리칸 파이>의 한국판 같은 <색즉시공>은 비록 에피소드나 짧은 대사에 의존하며 버겁게 이끌어가더라도 비리에 맞서는 조폭의 모습과 순정파 남성의 따뜻함이 웃음과 더불어 코미디를 즐겁게 했다.

<낭만자객>에도 코믹한 인물 혹은 상황 이외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번엔 사학 비리 혹은 타락한 성과 같은 국내 문제가 아니라 약소국인 한국이 강대국인 청과 겪는 국제관계의 불평등이다. 조선에서 살인을 저질러도 청으로 도망가면 그만이고, 임무 수행 중에 발생한 실수이기 때문에 무죄 선고를 받는 청나라의 관리들은 미군들을 쉽게 연상시킨다.

더구나 자객 중 가장 멍청한 요이(김민종)의 여동생 달래(고주연)가 억울하게 살해되고 백성들이 분노하는 장면은 얼마 전 있었던 여중생들의 죽음를 금방 떠올리게 만든다.

실력이 엉터리인 이 낭만자객의 황당함은 사룡이라는 청나라 사신에게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전직 기생출신의 처녀귀신들의 등장으로 더욱더 황당해진다. 야한 화장과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경상도 사투리로 반말을 지껄이며 걸핏하면 폭력을 행사하는 이 귀신들은 우연히 이들이 기거하는 폐허에 찾아온 낭만자객들에게 자신들의 한을 풀어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짧은 도포스타일 미니스커트를 입고 사방을 날아다니며 귀신들의 비술인 ‘영혼검법’을 가르쳐봐도 이 어설픈 자객단원들은 실수를 연발한다. 또한 이들은 처녀귀신들이 몸 안에 들어와야만 제대로 적을 무너뜨린다.

아름답고 가여운 처녀귀신이 아니라 무협의 주인공 같은 힘과 기술 그리고 조폭같이 거친 입을 가진 이 귀신들은 전래동화의 이미지를 단박에 뒤집는다. 한밤 중에 선녀처럼 옷을 벗어놓고 목욕을 하기도 하지만 목적은 총각을 죽게 해 천도하기 위한 눈물을 수집하기 위해서 이고, 육체적 아름다움은 순결하고 정숙하기 보다는 야하고 도전적이다. 그 중 전직 7공주 출신의 향이는 선녀처럼 우아하게 날아와 착지를 하지만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반말을 지껄이고 자객들과 나머지 귀신들을 거칠게 지배한다.

주리아나에서 눈의 표적이 되는 야한 의상을 입은 여성들의 춤추는 장면이 눈요기에 지나지 않았듯이 처녀귀신들의 목욕장면도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 중 하나이다. 처음 등장해서 자객들을 놀라게 했던 향이는 얼굴에 하얀 칠을 하고 하얀 옷과 긴 머리를 하고 등장했다가 바로 목욕재개를 하고는 섹시한 귀신으로 탈바꿈한다. 이 목욕장면은 소프트 포르노에서 적절하게 사용될 수도 있겠지만 처녀귀신들의 한과 낭만자객들의 행동을 이어주는데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


금지된 욕망과 운명의 장난

귀신들이 ‘선녀와 나뭇꾼’을 빌어오듯이 요이와 달래는 ‘오빠생각’이라는 동요를 차용한다. “우리 오빠 말 타고 장에 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라는 구절은 요이와 달래의 관계에 그대로 적용된다. 요이는 달래에게 예쁜 고무신을 사주고 달래는 오빠가 그 신발을 신겨주기 전에는 하늘나라로 가지 못하고 헤맨다.

분명히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갈등 구조이고 감동적인 부분이어야 하는 것이 요이와 달래의 관계로 여겨지지만, 마지막 비극이 발생하기 전까지 이들의 관계는 너무나 주변적인 요소로 다뤄진다. 그렇기 때문에 종국에 가서 달래의 죽음과 그에 따른 요이의 슬픔이 너무 과장되었다거나 갑작스럽게 생각된다.

요이와 예랑의 너무 진한 키스신처럼, 꿈이라기는 하지만 요이는 달래에 대한 금기시된 욕망을 보여준다. 신랑이 누구인지 나오지 않은 달래의 시집가는 행렬 속에서 달래는 요이에게 손가락에 피가 난다며 가마에서 밖으로 손을 내밀자 요이는 그 손가락을 너무도 행복하게 빨아준다.

동성애나 근친상간에 대한 요소들까지도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배치해 놓았지만 이런 모든 장면들은 자연스럽게 웃기기보다는 억지로 웃으라고 강요한 것처럼 여겨진다. 즉, 웃겨야 하는 것과 심각해야 하는 것이 너무 뒤죽박죽 되어 있어 이런 장면이 왜 있어야 하며, 이 장면이 왜 웃기는지에 대한 근거와 당위성이 너무 부실하다.

그러나 유치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으면서도 많은 관객들이 웃고 즐기는 영화들이 있다. 잘 만들어지지 않았고 개연성과 당위성이 부족하고, 엉성한 구조임에도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영화는 있다. 그런 영화는 <두사부일체>처럼 조폭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타거나 <색즉시공>처럼 새롭다고 여겨지는 적절한 시점에 등장을 하거나 ‘시기’가 중요하다. <낭만자객>도 그럴 수 있을지 궁금하다.

시네마 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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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3-12-0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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