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당 총선 채비 서두르며 특검정국 득실계산으로 분주특검수사가 최대변수, 여권 충격 최소화 전략 짜기 고심

"이젠 총선이다" 4당 4색 출정 채비
각당 총선 채비 서두르며 특검정국 득실계산으로 분주
특검수사가 최대변수, 여권 충격 최소화 전략 짜기 고심


이제는 총선이다. 특검은 나중 문제고 지금은 오직 총선 뿐이다.

그렇게 사생결단식으로 특검 재의(再議) 여부를 놓고 청와대와 여야 각 당들이 사생결단식으로 충돌하더니 막상 재의가 여유 있는 표차로 국회에서 통과되자 ‘특검 충돌’이 언제 있었냐는 듯 여야는 모두 내부문제로 눈을 돌리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언론과 만나 이례적으로 개각에 대한 청사진을 밝히며 사실상 총선 진두지휘에 나서기 시작했고, 단식을 끝내고 병원에 입원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도 벌써부터 내부 물갈이에 시동을 거는 등 ‘병상 정치’를 시작하고 있다.

조순형 대표 체제로 출범한 민주당과 김종필 총재 1인 지휘체계로 재정비한 자민련도 총선을 향한 조직 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만 안팎으로 잡음만 무성해 ‘식물여당’으로 전락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이 한발 뒤처져 있는 형국이나 노 대통령 입당을 앞당겨 도약의 기틀을 마련할 태세다.

여야 각 당이 총선체제로 서둘러 재정비에 나선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 특검 실시로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당사자들이다. 어떤 악재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일이며, 노 대통령과 직결된 이야기도 등장할 수 있다.

그 경우 여권 입장에서 총선은 하나마나다. 지금처럼 무방비 상태로 손을 놓고 있다가는 역사상 최악의 여당 참패라는 기록적인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이에 특검 수사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체제 개편을 꿈꾸고 있다. 과거의 일을 구 정치의 구습으로 몬 뒤 신 정치를 지향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겠다는 의도다.

여기에는 특검과 별개로 진행되는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에서는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월하다는 상황논리도 포함돼 있다.

한나라당은 특검 실시로 일단 총선을 위한 최고의 방패를 얻게 됐다. 검찰 수사로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신세였지만 적어도 상대방을 같은 처지로 끌고 나오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보다 더 좋은 물타기는 없다”는 게 당 내부의 일치된 목소리다. 다만 특검과 검찰 수사의 강도가 더해질 것으로 보여 아무래도 중진급 중 유탄을 맞게 될 의원이 상당수 나올 것이란 전망이다. 이미 중진 S의원이 특검 대상에 올라 있는 썬앤문 그룹으로부터 수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검찰에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대표의 내부 물갈이가 앞으로 더욱 힘을 얻을 것이란 사실은 자명하다.

민주당과 자민련은 특검 정국에서 상대적으로 반사이익을 노리고 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특검 및 검찰 수사에서 쉬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얻을 게 분명해 양당은 자기 자리만 고수하면 절반의 승리는 보장된 상태다. 적당히 싸움을 붙이고 적당히 말리는 시늉을 하면서 양측이 챙기지 못한 전리품만 가져오면 된다. 그래서 향후 정계의 기상도는 특검 재의를 통해 민주당ㆍ자민련 맑음, 한나라당 흐림, 열린우리당 안개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열린우리당 "특단 대책" 한목소리

특검 정국에서 가장 속타는 쪽은 열린우리당이다. 대표 선출 문제로 당내는 시끌벅적하고 외부적으로는 노 대통령 측근을 겨냥한 특검이 옥죄고 있다.

또 지지부진한 정치개혁으로 당 지지율이 답보상태에 머무는 가운데 믿었던 호남민심도 민주당쪽으로 기우는 듯하다. 특단의 대책이 없고서야 지금의 위기를 타개할 방법이 없다. 이에 노 대통령만 쳐다보고 있는데 어째 청와대 측은 좌우를 살피며 천천히 나아가는 모양새여서 더욱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최근 의총에서 신기남 의원은 “노무현 정부의 짐은 짊어지면서도 정책 결정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어중간한 위치에 있다”며 “노 대통령에게 입당을 강력히 권유하고 할 말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대치 구도로 흐르게 된 현 정국 상황을 실제적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주도할 수 있도록 물꼬를 돌려놓아야 한다는 취지다.

정장선 의원도 “노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재고해 달라는 의견도 낼 수 있었을 텐데 무작정 찬성하는 바람에 우리당이 청와대 뒤치다꺼리나 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라고 지적했고, 김근태 원내대표도 “행정부와의 통로가 없는 상황에서 정국 주도권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모두가 노 대통령의 조기 입당을 통해 완전한 여당으로서의 위상확보를 바라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열린우리당은 대대적인 개각과 인적 개편을 단행해 강금실 법무장관과 문재인 민정수석 등 경쟁력 있는 인사를 징발해 총선전 최일선에 서둘러 배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노 대통령도 생각이 많다. 급박한 열린우리당의 속내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곧바로 ‘히든카드’를 꺼내 들었다가 특검에서 엄청난 악재라도 터지면 카드 자체가 무용지물이 된다. 또 실제 써먹을 카드도 그리 많지도 않다. 결국 아끼고 아꼈다가 가장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에 내놓아야 한다.

노 대통령은 12월7일 총선과 관련한 개각 로드맵을 내놓았다. 1차적으로는 연내에 소폭으로, 2차적으로는 임시국회가 끝나는 1월 초순경에 중폭이상의 개각 단행을 시사했다. 개각을 1,2차로 나누어 하는 것도 이례적이고 극도의 보안을 유지해야 하는 개각 시점을 미리 못박고 나선 것도 좀체 보기 드문 일이다.

1차 개각은 총선과는 무관하게 이뤄질 것으로 점쳐지지만 2차 개각에서는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총선을 향한 진용이 될 것 같다. 김진표 경제부총리와 강금실 법무 권기홍 노동 진대제 정통부 장관 등은 징발 1순위로 꼽히고 있다. 청와대 비서실에서도 문희상 실장과 유인태 정무 문재인 민정수석이 맨 앞쪽으로 거명된다.

이런 분위기가 유도되면 2탄으로 나올 카드는 책임총리제를 포함한 노 대통령의 선거 공약. 가령 1당에게 총리지명권을 준다던가 내각구성권의 절반 가량을 할애한다는 등의 승부수가 띄워질 수 있고, 특검수사나 검찰수사가 가닥이 잡히는 시점에 최종적으로 노 대통령의 입당으로 화려한 총선 이벤트의 대미를 장식한다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한나라당 최 대표, "바꿔 또 바꿔"

이번 특검의 최대의 수혜자는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라는데 이의가 없다. 노 대통령에 대한 호적수로 떠오른 측면도 있고 당의 내부 잡음도 일거에 해소시켰다. 일각에서는 “민심은 잃었지만 당심은 얻었다”고 표현하지만 엄밀히 말해 민심도 별로 잃지 않은 편이다. 어차피 친 한나라당 성향의 유권자라면 반노(反盧) 의식이 강하다.

특검에 의해 노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수사가 진행될 경우 반대로 민심은 한나라당 쪽으로 확 쏠릴 수도 있다.

또 대선자금과 관련해 진행되는 검찰 수사는 특검 실시로 오히려 더욱 불을 뿜을 것이 자명하다. 검찰이 살기 위해서라도 더욱 좌고우면 하지 않는 강경한 태도만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벌써 중진의원 수명이 이와 관련해 의혹을 받고 있으며 조만간 소환될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소환대상자로 거명되는 사람들은 이회창 전 총재 시절 주류에 편입된 인사들이다.

당시 비주류였던 최 대표와는 정적관계인 셈이다. 라이벌 인사들이 검찰에 불려간다는데 최 대표로서는 손해볼 게 없다. 그래서 계속 당 안팎에서 거론되는 게 내부 물갈이다.

명분도 있다. 영남 중진의원과 5, 6공 출신 ‘영감님’들을 신진인사로 교체하겠다는데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당연히 환영받을 일이다. 차제에 최 대표는 ‘이회창의 한나라당’ 색깔을 완전히 탈피하면서 ‘신 한나라당’ 체제로 탈바꿈시키려 하고 있다. 물론 사당화(私黨化) 하려는 움직임이란 경계의 시각도 있다.

이미 이재오 사무총장과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 김문수 외부인사영입위원장 등을 전면에 내세워 물갈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홍준표 의원은 “경력만을 앞세워 국회의원을 여가활동하듯 하는 사람들은 교체해야 한다”고 중진 의원들을 직접 겨냥했다. 영남뿐만이 아니다. 서울과 수도권 등지에도 이에 해당하는 현직 의원 및 원외위원장들이 수두룩하다.

대선자금에 연루된 중진 의원들이 검찰 수사망에 걸려들 경우 최 대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새로운 한나라당으로 바꿀 것이란 해석이다. 최 대표는 공석 사석에서 현역 의원 30~40%의 물갈이를 공언한 바 있다. 여기에 전직 원외 위원장들도 합한다면 창당 이래 가장 큰 폭의 교체가 이뤄질 전망이다. 물론 최 대표의 입김이 반영된 상태에서의 물갈이를 의미한다.


민주당, "도랑치고 가재잡고"

민주당은 이번 특검 정국에 따라 뒤돌아서서 웃을 일만 남았다. 대놓고 웃으면 한나라당과 공조한다고 비쳐지므로 앞에서는 청와대와 한나라당을 싸잡아 비판하면서도 속으로는 쌍수를 들어 이번 구도에 박수치는 상황이다.

대선자금과 특검의 동시 수사는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윈-윈 게임’이 아닌 ‘루즈(Lose)-루즈 게임’이다. 다만 누가 덜 다치느냐만 남을 뿐 양쪽 다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즉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국민에게 비판받는다는데 민주당 입장에서야 환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민주당은 조순형 대표체제가 출범하자마자 곧바로 전북 전주에서 이무영 전 경찰청장을 조직책으로 임명하는 지구당 창당대회를 갖는 등 호남 공략을 시작했다. 텃밭인 호남에서 열린우리당에 밀릴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이미 민주당의 옛 주인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조 신임대표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민주당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을 표현했다.

조 대표와 추미애 의원의 양두마차 체제로 총선을 향해 진격하면서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격렬한 전투에서 떨어지는 수확물만 하나씩 둘씩 빼오기만 해도 된다. 상황이 이러니 열린우리당 측에서는 민주당과의 재통합론 이야기를 슬슬 꺼내고 있지만 민주당에서는 반응이 없다.

조 대표도 “개별적으로 입당하는 것은 말리지 않겠지만 당 대 당 통합 등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지율이 1위로 급반등하는 시점에서 굳이 열린우리당이 내민 손을 잡을 이유가 없다. 호남을 지역구로 둔 인사들은 “열린우리당과의 사이가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총선에서 유리하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다.

자민련도 상황은 비슷하다. 특검 정국이 싫을 이유가 없다. 충청권을 위협하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민심이 이반되면 이반될수록 반사이익은 크다. 이때문에선지 그간 김종필 총재와 반목해온 이인제 의원이 최근 화해 제스처를 먼저 취했다.

이 의원은 인적 쇄신을 요구한 과거 일을 사과했고 김 총재가 “당무회의에 나와 당원들에게 공개 사과하고 입장을 밝히라”고 지시하는 선에서 매듭지어졌다.

특검 재의 통과로 인해 한나라당은 더욱 가속화한 물갈이, 민주당과 자민련은 더욱 두터워진 내부결속력을 바탕으로 한 총선형 조직정비,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수사 추이를 지켜보면서 한발한발 조금씩 나아가는 우보(牛步)식 전략을 펴고 있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 2003-12-10 10:27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