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정국 핵심으로 떠오른 '실세3인방', 정치권 지형 바꿀 '뇌관'

안희정·이광재·이강철, 정국반전 희생양 될까?
특검정국 핵심으로 떠오른 '실세3인방', 정치권 지형 바꿀 '뇌관'

“누군가 십자가를 져야 하는데…”. 지난 11월 초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에 대한 국회 의결을 앞두고 청와대의 한 인사가 기자에게 푸념처럼 던진 말이다. 꼭 한달 전인 10월10일 ‘재신임’ 카드로 위기 국면을 돌파하고 ‘비자금’ 정국이 전개되면서 한시름 놓았던 청와대로서는 특검법이라는 ‘돌출 변수’가 정국 주도권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지던 때였다.

청와대 인사의 푸념때문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12월 3일 ‘사설 대통령’ 소리를 듣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구속되고 이튿날엔 노무현 대통령의 386 핵심 참모인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썬앤문그룹과 관련해 소환조사가 예고되는 등 ‘십자가’를 의심케 하는 일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분류돼온 강 회장과 이 전 실장이 특검 정국에 대비한 ‘희생양’이 아니냐는 의문이 정가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강 회장은 구속 영장이 떨어진 뒤 스스로 ‘희생양’이라고 했다.

두 사람이 희생되면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아니, 두 사람은 진짜 실세일까?

이에 대한 답변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실세들의 영향력에 따라 정국의 지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이다.

청와대와 정계, 특히 ‘정신적 여당’인 열린우리당 주변에선 여전히 이강철 우리당 중앙위원, 안희정 우리당 충남창당준비위 공동위원장, 이광재 전 실장이 ‘실세 3인방’으로 거론되고 있다. 안 위원장과 이 전실장은 ‘노심’(盧心, 노무현 대통령 복심)을 그리거나 노심에 직접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이 중앙위원은 노심의 전달창구라는 점이 실세 평가의 배경이 되고 있다.

이들 3인방은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자치경영연구원 출신들이다. 1993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서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뒤 대선 때 이 중앙위원은 노 후보의 조직특보, 안 위원장은 정무팀장, 이 전 실장은 기획팀장을 맡아 대선 승리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영향력 막강한 '안희정 파워'

노 정권 출범 전부터 ‘좌(左)희정 우(右)광재’로 불리며 실세 중 실세로 인식돼 안희정, 이광재 두 사람은 청와대와 떨어져 있으나 여전히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고, 노 대통령의 결단에도 적지 않게 관여하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야당쪽에서도 지난 11월1일 노 대통령 부부가 강금원 회장과 강 회장 소유의 시그너스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할 때 안 위원장이 현장에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데, 사실 유무를 떠나 ‘안희정의 위상’과 관련해 주목되는 부분이다. 안희정의 힘을 야당측에서 아직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청와대 주변에서 나도는 ‘안희정 파워’설은 보다 구체적이다. 노 대통령이 ‘재신임’이라는 승부수를 던지기 직전에 정국운영에 관한 리포트가 하나 전달됐는데, 기안자가 안 위원장이라는 것이다.

안 위원장이 12월2일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께서 최근 지구당 창당 때 전화를 통해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셨고, 간혹 뵙고 싶으면 일요일 저녁 같은 때 (청와대에 가서) 식사하고 나온다”고 말한 것도 헛소리가 아닌 것으로 주변에서는 보고 있다.

실제로 11월29일 충남 논산시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안 위원장의 열린우리당 지구당 창당대회에는 신임대표로 유력한 정동영 의원을 비롯해 장영달 국방위원장, 정동채 의원(우리당 홍보위원장), 박병석 의원(우리당 신행정수도특위 위원장)과 이호일 중부대 총장, 강용식 전 한밭대 총장 등 다수 의원과 지역 중견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안 위원장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여당쪽에서는 노 대통령의 또다른 386 핵심 측근인 이광재 전 실장이 썬앤문그룹 사건에 연루돼 낙마할 경우 안 위원장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권력 핵심부에 박힌 '이광재 맨'

노 대통령의 ‘오른팔’ 이광재 전 실장은 썬앤문그룹 사건과 관련, 특검 및 검찰의 소환 대상에 올라 있지만 여전히 ‘실세’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전 실장이 10년 이상 노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온 데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시절 폭넓게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힘을 비축해둔 것이 ‘실세 평가’의 바탕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전 실장은 참여정부 출범 초기에 각종 ‘인사’에 영향을 미쳐 법조계에서는 연세대 출신이 약진했고, 청와대와 정부 각 부처에 이른바 ‘이광재 맨’이 포진됐다는 게 정설이다.

지난 7월 굿모닝시티 사건 때 치명타를 입은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가 “굿모닝 시티 사건이 이 전 실장과 법조계 연세대 인맥의 합작품”이라고 주장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 전 실장은 10월18일 청와대를 떠났지만 그의 인맥과 정보력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정가에서는 이 전 실장이 청와대를 떠난 뒤 별도의 태스크 포스(TF)팀을 구성, 자신의 총선 출마는 물론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관련한 리포트를 수시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전실장의 이런 인적 네트워크가 살아 움직이는 한 그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 전 실장을 노 대통령이 특검 정국의 ‘희생양’으로 내줄 경우,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마디로 정가에 ‘사정(司正)’태풍이 몰아닥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나라당 중진 S의원이 썬앤문그룹으로부터 수억원을 받은 혐의가 드러난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나라종금 사건에 연루된 안희정 위원장이 불구속 기소된 사례에서 보듯 이 전 실장도 같은 길을 갈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있다.


대통령을 움직이는 이강철

이강철 열린우리당 중앙위원은 신당 창당과정에서 막후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가 최근 노 대통령과 수시로 만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살아 있는 실세’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역할은 노심을 당에 전하고, 당 사정을 노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메신저 역이라고 한다.

열린우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해찬, 이재정 의원의 힘이 떨어진 지 오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위원을 의식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TK(대구ㆍ경북) 인맥 대부이기도 한 이 위원은 지난 8월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때 기금 마련을 위해 대구시장, 경북지사 등이 나서도 꿈쩍거리지 않던 기업들을 전화 한 통으로 움직여 ‘실세’의 진면목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위원은 내년 1월11일로 예정된 열린우리당 창당대회와 관련, 주변에서 당 의장 선거에 출마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지만 고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위원과 가까운 청와대의 한 인사는 “이 위원이 당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는데 너무 전면(당 의장)에 나서면 일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해 노 대통령과 이 위원 간에 이미 모종의 ‘묵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3-12-10 10:46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