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차별주의와 육체자본화는 21세기 한국의 슬픈 자화상"

[한국 초대석] 고려대 사회학과 임인숙 교수
"외모 차별주의와 육체자본화는 21세기 한국의 슬픈 자화상"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닫혀 있는가를 입증하는 계기죠. 언뜻 보기에는 자기 만족이나 개성 연출을 위한 것 같지만, 결국은 획일적 통념속으로 스스로 편입되는 데 지나지 않아요.” 고려대 사회학과 임인숙(43) 교수가 짚은 최근의 얼짱 열풍이다.

학교 부설 한국사회연구소 연구 교수이기도 한 그가 12월 15일 덕성여대에서 열리는 한국여성학회 후기 대회에서 발표할 논문에 진작부터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논문의 핵심 개념인 ‘육체 자본’과 ‘외모차별주의’라는 말 앞에서 현재의 한국은 발가 벗겨질 각오를 해야 한다. 2003년의 새 유행 코드처럼 번지는 얼짱 열풍의 속내도 읽어낼 수 있다.

외모를 근거로 한 차별(‘외모차별주의’)과 그에 따른 보상(‘육체 자본’)은 좋든 싫든 21세기 초입, 한국의 풍경을 장악하는 진실이다. ‘왕눈이가 되기 위한 필수 수술’, ‘볼 처짐 없는 맞춤형 광대 축소술’, ‘흉터 걱정 없는 몽고 제거술’….

한국인의 얼굴을 서구의 기준에 맞게 깎고 붙이는 데 최고의 재주를 가졌다는 성형외과들이 경쟁적으로 도배한 선전 문구는 오늘도 안달이다.


신데렐라의 꿈에 젖은 세상

그 진원지, 압구정동 신사동 청담동 논현동 등 강남땅이 펼치는 세상은 환상의 힘으로 지탱된다. 그것은 밖으로는 명품이, 안으로는 성형 수술이 공고하게 결합돼 이루는 부활의 꿈이다. 급속한 감염력으로 한반도를 장악하고 말았다.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신체발부는 감히 건드리지 말고 보존함이 마땅하다는 ‘예기(禮記)’의 가르침은 이 시대, 강남 어딘가의 오물 종말 처리장에 쳐 박혀 있다. 한껏 멋을 낸 20대의 머리 위로 줄잡아 80여개의 성형외과 간판이 거리 풍경을 압도하고 있는 강남의 하드코어, 압구정동. 그곳에서는 오늘도 하루에 줄잡아 3,000명이 신데렐라의 꿈을 꾸고 얼굴에 칼을 댄다.

인터넷 공간을 달구고 있는 얼짱이란 그 꿈의 하나다. 인터넷상의 네이버 사전에 의하면 ‘얼굴이 아주 잘 생긴 사람, 즉 짱나게 잘 생긴 사람’으로 정의되는 이 말은 외모에 대한 집착을 훌륭하게 웅변해 준다. 큰눈에 쌍거풀은 기본이다.

그들이 눈을 부라린 채 디카로 찍어 올린 사진은 인기 투표에 올라, 그 결과가 곧 바로 공개된다. 잘 하면 모바일, 노트북, 게임 캐릭터로 재창출 돼 오프 라인의 세계까지 주름잡게 되는 세상이다. 용모가 인간적 우열과 성패의 기준으로 떠 오른 21세기 한국의 정황이 압축돼 있다. 2003년 여성민우회가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펼친 조사에서는 11.4%가 성형 수술을 한 경험이, 34.2%가 성형을 받을 의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이 같은 현상은 오늘날 한국의 것만은 아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새파이어는 인종, 성, 종교, 이념에 이은 새로운 차별 기제로 ‘외모’를 지목한 바 있다. 루키즘(lookismㆍ외모차별주의)이란 말이 그렇게 나왔다. 그렇듯 아무리 세계적 추세라지만 이땅은 유독 별난 구석이 있다.

“성형 광고가 이렇게 ‘떡칠’ 한 나라는 한국뿐이예요. 한국서 2년 남짓 산 일본 여성이 가장 궁금해하는 게 성형 외과를 미장원 드나들 듯 하는 한국 아가씨들 이라더군요.” 그렇게 된 데에는 병원들이 여성지와 스포츠지 등에서 목숨을 걸고 펼치는 홍보전에 여성들이 세뇌 당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보험 대상에서 제외되므로 사실상 탈세의 온상인 데도, 성형 수술과 관련해 신빙성 있는 통계조차 내 놓을 생각을 않고 있는 당국의 무관심도 톡瀁?기여하고 있다.


용모가 인간적 우열과 성패의 기준

“과거는 용서해도, 못 생긴 것은 용서 못 한다는 말이 당연시 되는 사회가 한국이예요.” 10월 10~24일 경인지역 여대생 479명을 대상으로 실사를 마친 임 교수가 한국 사회에 대해 내리는 진단의 요체다.

“기업체의 9할이 남녀 공히 외모를 중시한다고 했는데, 거기서 말하는 외모란 게 좋고 부드러운 인상과는 다르다는 거죠.” 여성의 경우, 키가 165㎝는 넘어야 한다. 취업을 앞둔 남성이 주름살을 없애는 등 손질을 하는 것 역시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것이란 사실은 거의 상식이다. 문제는 그것이 암묵적 관행처럼 돼 버렸다는 점이다. ‘성과 사회’, ‘여성학 개론’ 등 강의중인 과목의 수강생들로부터도 확인할 수 있는 바다. 교묘한 억압 장치다.

1994년 여성민우회 등 여성 단체가 서울지방경찰청에 그에 대해 집단 소송을 제기해 명시적으로는 사라졌다. 그러나 임 교수는 “인력 채용 대행 회사 등 비공식 라인을 통해 집요하게 요구되고 있다”며 “면접의 비중이 갈수록 커져 간다는 사실은 그 같은 현실을 더욱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어쨌든 일단 예쁘고 볼일이다. 이 시대, 동가홍상(同價紅裳)론은 더 더욱 진리다. 못생기고 뚱뚱한 친구에 대해서는 왕따까지 마다 않는 현실임에랴.

현실의 압력은 매우 구체적이다. 200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왜 살을 빼려 하는 지를 20대 남녀에게 물었다. 남성은 건강(60%)-외모(21%)로 이유가 나온 데 반해, 여성은 외모(44%)-건강(38%)로 정반대의 상황으로 조사됐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는 말에서의 인간은 곧 남성이었고, 여성은 육체로 규정되는 감성적 존재에 지나지 않았죠. 희한한 게, 남성의 이상적 몸매 사이즈란 없다는 거예요.”

그럼에도 한국의 성형 광고는 여성의 비하와 교묘하게 맞물려 있다. ‘36-24-36’이란 규격은 여성 체형의 KS 마크로 한국인의 뇌리에 각인돼 있다. 이상적인 몸무게는 48㎏로 수렴된다. 한국에서 몸 관리라고 하면 무조건 살빼기, 작고 갸름한 얼굴 만들기와 직결되는 가장 큰 이유다.

성형 수술의 필요성을 펼쳐 보이기 위해 가장 많이 쓰이는 광고 전략이 낙인찍기(stigma)라고 그는 2001년 한국사회학회지 36호에 실렸던 논문 ‘한국 사회의 몸 프로젝트’에서 갈파한 바 있다. “다이어트 하는 사람이 70%에 달한다면 이게 개인적 선택의 문제인가요?”

수술의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 수술전의 모습과 이후의 모습을 나란히 비교하는 기법이 그 프로젝트의 좋은 예다. 오늘도 시내에서 너댓건은 보고 왔을 터다. 다이어트 식품, 건강보조 식품, 비만/체형/피부 과리실 및 헬스 센터 등 각종 몸 관리 산업의 광고가 나란히 도열돼 있다.

버스를 나오면 지방제거술, 피부박피술, 유방성형, 얼굴윤곽술, 보조개 성형, 배꼽 성형, 입술을 도톰하게 만들어 주는 기술 등의 광고가 어지럽다. 2001년 2월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이 한국의 눈부신 성형 열풍을 기사화하면서 ‘슈퍼 모델처럼 날씬한 다리를 갖겠다는 생각에서 굵은 종아리를 타깃으로 극단적인 성형 수술이 행해지고 있는 유일한 국가’로 비아냥댔건만, 상황은 더욱 가열차다.


한국적 페미니즘의 잘못된 방향성

임 교수는 이에 앞서 2002년, 서울의 여자 실업계 고등학교에 2년 동안 접수된 기업 추천의뢰서를 대상으로 외모차별과 경제와의 상관 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경제적 상황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즉, 외모차별적 요구가 가장 심각했던 1988년은 대량 실업 사태가 발생해 실업계 고졸 여성의 취업률이 가장 낮았던 때였다는 사실이다. 취업난이 극심할수록 용모 차별에 관한 기업체의 관행이 더욱 극성을 부린다는 분석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여성지는 유방 수술이 잘 못 돼 가슴이 썩어 사는 사진, 파라핀을 잘 못 넣어 코가 뭉개지는 사진 등 부정적 시각으로 성형 수술을 다뤘다. 그러나 그 같은 경향은 감소되다 1995년을 기점으로 역전된다고 임 교수는 지적한다. 환자들의 신뢰가 높은 성형외과 병원 순례 등의 기사로 독자를 세뇌하기 시작했다.

성형외과의 광고 마케팅이 공격적으로 변한 것은 1인당 GNP가 1만 달러대로 진입한 1995년과 일치한다는 것. 당시 임 교수가 국내 여성 월간지 127부를 대상으로 미용 성형 광고의 변천에 대해 조사한 결과, 1995년 이전까지 한 호당 평균 1~2개에 불과했던 것이 2000년에 들어서는 30개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

몸이란 문제는 여전히 한국 사회학의 오지 분야다. 철저히 자연적인 현상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국내 사회 과학계에 육체라는 새로운 문제틀을 선구적으로 소개한 학자다. 1970년대 이후 미국 사회학계의 중심 테마로 부상한 몸이라는 문제를 본격 제기한 것이다.

1999년의 ‘몸의 사맨鬼?나남 刊)과 2002년의 ‘몸과 사회’(몸과 마음 刊) 등 영국에서 나온 일련의 사회학 저서를 번역, 이후 국내 인문사회과학계에서 비슷한 연구의 길을 텄다. 특히 국내 여성학계에서는 기념비적 역서로 남아 있다.

임 교수가 제기한 문제는 한국 사회학계로 봤을 때는 새로운 차원에로의 진입을 알리는 커다란 신호이기도 하다. 여성들만의 행위 양식으로 치부하기 십상인 문화사회학이 주류의 사회학 강단으로 옮아가는 지표로 받아 들여진다.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 사회에 경제적 여유가 창출되면서 레저나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증폭된 결과 중 하나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능력본위의 사회돼야

“10대 얼짱, 20~30대 외모지상주의가 여성만을 억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같은 고정관념이 오히려 남성을 구속한다는 점을 망각하고 있어요. 진정한 능력을 본위로 경쟁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여정이겠죠.” 최근 발표한 논문과 관련, 얼짱 현상이나 누드 열풍 등에 대해 인터뷰 제의가 심심찮게 오지만 일에 치여 일일이 응해 주지 못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남성은 다음과 같은 임 교수의 고찰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외모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은 분명 한국 사회라는 데서 여자가 서바이벌하기란 얼마나 힘든가를 반영하는 대목이죠. 동시에 남자들의 예쁜 여자 타령이 늘어 가고 있는 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위기 의식이 표출된 결과라는 생각입니다.” 여자와 경쟁해야 한다는 현실이 위기 상황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강하고 드센 여자는 배제시키려는 바람이 그런 식으로 드러난 결과라는 것.

그렇다면 그가 제시하는 현실적 돌파구는? “여자들이 본인의 경험과 목소리를 표출할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해요. 고위 공무원이나 기업체의 의사 결정 기구에서 말이죠.” 결국, 능력에 따른 고용이 실현되는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병욱차장


입력시간 : 2003-12-10 14:05


장병욱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