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과 지옥 오가는 머니게이머외환시장 상대로 1대99의 치열한 승부 펼쳐

[직업의 세계-19] 외환딜러 이성희
천당과 지옥 오가는 머니게이머
외환시장 상대로 1대99의 치열한 승부 펼쳐


아직 오후 4시반이 안 됐다면 그에게 전화하지 말라. 해봐야 자존심만 상한다. 용케 연결되더라도 십중팔구 이런 ‘변’을 당한다. 그의 탓이 아니다.

“한번은 친구에게 전화가 왔는데 ‘잠깐만!’하고 통화대기를 시켜놓고는 깜빡 잊어버려 30분 뒤에야 부랴부랴 다시 받았어요. 친구가 ‘오기가 나서 일부러 안 끊고 기다렸다’고 하더라구요.(웃음)”

이성희(37)씨는 매일 7시간씩 바깥세상과 불통이다. 10년째 같은 생활이다. 이씨는 외국계 금융사인 제이피모건 체이스은행 서울지점에 근무하는 외환딜러다. 자사에서 상무 직위를 갖고 있다.

알려져있다시피, 달러와 엔화 등 외국의 화폐를 그 환율 변동을 이용해 사고 파는 과정에서 차익을 벌어들이는 것이 외환 딜러들의 주 업무다. 그 중에서도 이씨는 은행간 트레이더(Interbank Dealer)다. ‘환전’ 차원에서 기업들의 외화를 대신 사거나 팔아주는 일을 포함해 자사의 수익을 위한 머니게임을 벌인다. 싼 값에 사들여 비싼 값에 파는 간단한 원리다.


하루 판돈 100억달러의 게임

말은 게임이지만 도와줄 지원병 하나 없는 냉혹한 전쟁이다. 이 전쟁은 매일 오전 9시반에 개전해 4시반이면 휴전을 맞는다. 국내 외환시장이 문을 열고 닫는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약 100개의 국내 은행들이 집결한 외환시장을 상대로 1대 99의 치열한 승부전을 치른다.

‘전투’장비라고는 비좁은 책상 위에 병풍처럼 줄지어 놓여있는 모니터 7대, 그리고 외환 전담 중개사와 연결된 전자식 주문입력장치와 전화. 이것이 전부다. 종일토록 모니터들을 들여다 보노라면 눈이 핑핑 돌 지경이다. 여기에서 흘러나오는 환율 정보를 바탕으로 수시로 거래 주문을 외쳐댄다. 주문 횟수만 하루 평균 약 400회. 거의 1분에 한번 꼴로 패를 던지는 셈이다. 이 정신없는 판국에 친구의 안부전화가 귀에 들릴 리 없다.

“쉽게 말해 100명이 모여서 치는 포커 게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문제는 판돈이 아주 크다는 거지요. 거래하는 최소 단위가 100만불, 전체로 보면 하루에 100억불이 왔다갔다 하는, 도박으로 치면 엄청난 도박입니다.”

잠깐의 점심시간을 빼고는 거의 자리를 뜨지 못한다. 잠깐 사이 환율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 담배 필 시간은 물론 화장실을 다녀올 시간조차 찾기 힘들다. 환율이 움직일 때마다 머릿속에선 불꽃이 튄다. 돈이 어디로 어떻게 움직일지 미리 예측해 앞질러 달려야 한다. 시장을 움직이는 변수가 도처에 매복돼 있다.

세계 경제의 동향은 물론, 국내외 정치, 사회, 심지어 문화계 뉴스까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미 새벽부터 일어나 CNN 뉴스 등 주식, 채권, 외환 시장 동향을 확인하고 온 터다. 출근한 뒤에도 팀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그날의 ‘작전 회의’까지 거친 뒤다.

하지만 예측은 예측일 뿐,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더욱이 전장에 나서면 오로지 스스로의 판단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철저한 자기와의 싸움이다. 느긋이 생각할 여유도 없다. 한번 던진 주문을 물릴 수도 없다. 판단도 어렵지만, 속도전의 부담까지 붙는다.

주문이 단 0.1초만 늦어도 상황이 역전될 수 있다. 환율이 바뀌는 것도 찰나, 주문과정에서 간발의 차이로 경쟁사에 선수를 빼앗기는 것도 찰나의 일이다. 이같은 긴장과 집중의 시간이 하루 7시간씩, 매일마다 되풀이된다. 수명을 단축하기 딱 좋다. 현역 외환 딜러들중 ‘최고령’이 40대 중반 정도다. 굳이 정년을 정하지 않아도 극심한 체력 소모 때문에 오래 머무르기 힘들다.


환율 요동치는날엔 묘한 흥분감

환율 변동이 심한 날은 딜러들의 축제 아니면 ‘초상’날이다. 환율의 요동만큼 ‘먹을 것’과 ‘잃는 것’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때는 딜러들에게 묘한 흥분감까지 갖게 한다.

“어떨 땐 메이저 은행끼리 정면으로 맞붙을 때가 있어요. 똑같은 환율에서 한쪽은 갑자기 대량으로 외화를 사들이는 주문을 내고, 다른 쪽에선 반대로 외화를 팔려고 내놓은 겁니다. 다시 말해 사들인 쪽은 앞으로 환율이 올라갈 거라는 해석으로 베팅한 것이고, 팔겠다고 한 쪽은 정반대로 환율이 떨어질 거라고 예측한 거지요. 이쯤 되면 주위 딜러들까지도 아주 흥미진진하게 결과를 지켜보곤 합니다. 둘 중 과연 누가 깨질까, 누구의 예측이 맞았을까, 딜러들의 세계는 역전승, 역전패, 판정승 등이 수시로 교차하는 아주 역동적인 곳입니다.”

싸움이 더 치열해지면 고도의 심리전에 심지어 ‘더티 플레이어’까지 등장하기도 한다. 워낙 시장이 빤하다 보니 딜러들 대부분이 서로를 아는 처지. 각 딜러의 베팅스타일이며 약점까지 간파하고 있다.

이를 이용해 필요이상 대담한 베팅으로 상대가 스스로 겁을 먹고 물러나게 만드는 밀어내기 작전이 나오는가 하면, 대박을 노린 베팅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기업들에게서 부탁받은 단순 매매인 것처럼 슬쩍 경쟁사 딜러에게 정보를 흘려 상대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치사한 방법을 쓰다가 다른 딜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딜러들의 밀고 당기는 팽팽한 신경전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씨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 89년 산업은행 국제영업부 근무를 시작으로 이 길에 들어섰다. 입사 후 선배 딜러들을 위해 자료를 찾고 복사하는 일로만 6개월을 보냈다. 현장 투입을 대비한 필수적인 기초 훈련이었다. 근무중 군에 입대, 제대후 재경부 파견업무까지 거친 뒤 93년 비로소 본격적인 외환딜러 업무를 맡았다.

맨처음 포지션 300만 달러에서부터 출발했다. 포지션이란 딜러 자신의 권한으로 외환을 사고 팔 수 있는 금액의 차이 범위를 말하는 개념이다. 경력이 쌓일수록 포지션이 5,000만달러, 1억달러 식으로 올라간다. 포지션은 그 딜러의 경륜과 능력을 말해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딜러로 투입된 초창기, 그 역시 적지 않은 실패를 경험했다.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겪었다.

“창피한 얘기지만, ‘아무래도 내 천직이 아닌 것 같다’고 집사람 앞에서 운 날도 있습니다. 가장 힘든 건 딜이란 게 ‘열심히 한다고 돈을 벌 수 있는’일이 아니더라는 거지요.”

고비를 넘긴 뒤 서서히 안정, 승률 상위의 딜러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97년, 현재의 회사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아 자리를 옮겼다. 대우도 대우지만, 좀 더 넓은 프로페셔널의 무대에서 자신의 능력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환율 폭등이 일어났던 IMF 시기, 경력 최악의 참패를 만났다. 달러 환율이 900원대를 찍고 1,990원대까지 치솟던 시장의 격변기, 자고 나면 100원씩 뛰어 올라 있었다. 딜러에게 100원의 차이는 엄청나게 무서운 것이다. 1,000만 달러만 갖고 있어도 앉아서 100억원을 벌 수 있다.

그런데 한 순간의 오판으로 이씨는 하루만에 수십억원을 잃고 말았다. 자책감을 견디기 어려워 술을 마셨다. 그날 퇴근길부터 다음날 요행히 전날의 손실을 깨끗이 만회하는 실력을 발휘하기 전까지 그 같은 지옥의 시간이 없었다. 딜러에게 중요한 수칙 하나는 손절매에 대한 결단력이다. 95년, 닉 리슨이라는 28세의 청년 딜러 한 사람의 판단 잘못이 230년 역사의 영국 베어링 금융그룹을 무너뜨린 일은 딜러의 중요성과 책임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최악의 기록을 맞은 것도 IMF 때지만, 최고의 성적을 낸 것도 역시 IMF 때의 일이다. 98년 1,700원대이던 달러 환율이 이틀만에 1,500원대로 떨어진 어느날, 이씨의 최고 기록이 터졌다. 현재까지 통틀어 가장 많은 액수였다.


20%의 승률에 건다

“딜링의 철칙이 있습니다. 확률상 10전2승8패, 즉 10번 싸우면 8번은 지고 2번은 이깁니다. 하지만 이건 횟수가 그렇다는 얘기이지, 바꿔 말하면 8번 동안 잃은 액수를 나머지 2번으로 다 만회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적어도 2번은 아주 크게 욕심을 내 과감한 베팅을 던져야 되는 거죠. 그 2번을 언제 어떻게 던지느냐가 어렵고도 중요한 겁니다.”

딜러가 된 뒤 알게 모르게 변한 것들이 많다. 고향이 경남 함양, 그렇지 않아도 속사포같은 경상도 특유의 말 속도가 더 빨라졌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딜러가 되고 나면 대부분 나타나는 현상이다. 판단과 주문 과정에서의 속도 싸움 때문이다. 그래도 전화에다 전자거래 시스템까지 활용되는 요즘은 일일이 타이핑을 해야 했던 90년대 초 텔렉스 시절에 비하면 상당히 진보된 셈이다.

가끔은 잠결에 환율이 보일 때가 있다. 꿈속에서도 시장의 동향을 쫓아다니기도 한다. 남모르는 징크스도 생겼다. 무참히 깨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던 IMF 무렵엔 일이 꼬일 때마다 가장 성적이 좋았던 날 매었던 넥타이를 행운의 부적처럼 찾아 매곤 했다. 우연인지 어떤지 그런 날은 성적이 좋았다.

최근에는 넥타이가 구두로 바뀌었다. 베팅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새 구두를 사 신는다. 작년만 해도 새로 산 구두가 여러 켤레다. 올해는 단 한 켤레도 사지 않았다. 올 성적이 좋았다는 뜻이다. 본인조차 미신처럼 느껴지는 엉뚱한 징크스지만, 그렇게라도 어딘가에 마음을 의지하고 싶은 것이 딜러의 심정이다.

더 이상한 것이 있다. 딜을 하지 않고 있으면 멀쩡하던 머리도 괜히 지끈거리고 몸도 욱씬거린다. 이 증세는 ‘전투’가 시작된 뒤에야 사라진다. 딜 중독자 이씨의 금단현상이 틀림없다.

“후배들에게 얘기하는 게 있습니다. 딜러는 상어다. 계속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구요. 힘들기는 하지만, 태어나서 한번은 해 볼만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의 희열이 있습니다. 내 손으로 그 거액을 벌었다는 것, 게임의 승부에서 이겼다는 것, 내 예측이 맞았다는 짜릿함이 아주 큽니다.”

내년은 더 혹독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오전 9시반에 문을 열던 외환시장 개장시간이 내년부터 9시로 앞당겨진다. 게다가 그나마 유일하게 한 숨을 돌리던 점심시간마저 공식적으로 폐지된다.

외부인 출입이 원천봉쇄된 딜링 룸안에서 몇 년째 마주하는 상대라고는 빽빽한 모니터와 같은 팀 동료들 얼굴 뿐이었던 이씨. 내년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긴장된다’는 이씨의 표정이, 그러나 어쩐지 포커페이스같다.

정영주


입력시간 : 2003-12-10 14:15


정영주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