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 美] 정체성의 반란


“만약 예술이 인간의 삶과 관계된 것들을 말하는 것이라면 예술은 그때까지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인식을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미국 작가 주디 시카고가 언급한 그녀의 예술철학은 여성 미술가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의 편애에 대한 저항 의식이 그녀를 확고한 페미니즘 작가로 탄생시키는 데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지만 미술 세계, 더 나아가 사회와 역사 속에 존재하는 여성성의 부조리한 시각에 대한 깨달음이 보다 더 근본적인 힘이 되었다.

시카고의 가장 역량 있는 작품 ‘디너 파티’는 역사 속에서 인정 받지 못했던 999명의 위대한 여성들의 이름을 새겨 넣고 삼각형으로 둘러싸인 테이블 위에 정찬을 차려 그들을 초대한 설치작이다. 과거 미술 속에 등장하는 여성 이미지는 마녀와 뮤즈를 오가며 남성들에게는 보여지는 대상으로서, 여성들에게는 대상화 된 그녀 자신들의 모습을 관조하는 매조키즘적인 성향을 띠는 것이었다.

‘디너 파티’ 식탁 위에 드러난 여성의 버지나는 여성들의 억눌린 성에 대해서 자각시키고 그간 금기시 되어 온 성기 묘사, 단순한 포르노그라피로 폄하됐던 컨트 아트(Cunt Art)를 통하여 여성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의미를 지닌다.

시카고는 ‘디너 파티’에서 여성들만의 것으로 생각되는 수공예적인 기법과 장식적 묘사로 팝 아트의 키치적인 성격을 의도적으로 표출하여 사회적으로는 여성의 주체의식을 살리고 고급 미술과 저급 미술의 선을 지우려는 정치적인 속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주디 시카고는 그녀의 디너 파티에 999명의 여성들만이 아닌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을 기쁜 마음으로 초대하고 있다.

장지선 미술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3-12-17 17:13


장지선 미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