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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마지막 승부수
"책임지고 감옥 가겠다" 검찰 자진출두, 盧 압박 등 '다양한 포석' 분석



“우리가 쓴 불법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걸고 정계를 은퇴할 용의가 있다.” “제가 모든 책임을 지고 감옥으로 가겠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둘러싸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여온 노무현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가 서로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사실상 노-창 간의 마지막 승부수로 전혀 예기치 못한 폭탄발언을 내놓은 셈이다.

불법 대선자금 문제와 관련해 노 대통령이 ‘정계은퇴’를 거론하고, 이 전 총재가 ‘감옥행’을 자처했다는 점에서 총선을 4개월 여 앞둔 향후 정국에 메가톤급 후폭풍이 불어닥칠 전망이다.


昌, "나를 감옥에 넣어라"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는 15일 불법 대선자금 문제와 관련, 지난 10월30일에 이어 두번째 대국민 사과를 하고 곧바로 대검 중수부로 향했다. 지난번 회견 때는 “모든 책임이 내게 있다”며 눈물까지 보였던 이 전 총재는 그러나 이날은 의외로 담담했다.

이 전 총재는 ‘마지막’ 회견에서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은 대선 후보였던 제가 시켜서 한 일이며 전적으로 저의 책임으로, 제가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면서 “제가 이 모든 짐을 짊어지고 감옥에 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5분 여 동안 회견문을 낭독한 뒤 “국법의 심판을 받기 위해” 대검 중수부로 자진 출두했다.

이 전 총재는 “대선 승리만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는 심정이 아무리 절박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불법적인 방법을 택한 것은 결코 옳지 않은 일이었다고 깊이 뉘우치고 있다”며 “앞으로 어떤 추가적인 불법자금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그 또한 모두 저의 책임임을 분명히 말씀 드린다”고 말했다.


검찰 공정수사 촉구 의미도



이 전 총재가 이날 전격적으로 감옥행을 자처하고 나선 것은 ‘보스’로서의 책임 구현과 노 대통령에 대한 압박, 한나라당에 대한 마지막 충정 등 여러 가지 포석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전 총재는 지난 9월 귀국 이후 불법 대선자금 문제가 정국의 현안으로 부상해 온 데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

지난 대선 당시 당 재정위원장을 맡았던 최돈웅 의원은 물론 김영일 전 사무총장이 검찰 수사를 받은 데 이어, 최측근인 서정우 변호사가 구속됨으로써 ‘보스’로서의 책임과 대선후보로서의 국정혼란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전 총재가 이날 회견에서 “불법 대선자금은 대선 후보였던 내가 시켜서 한 일이며 전적으로 저의 책임”이라고 거듭 강조하며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린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는 특히 “기업들이 이 사람들에게 그 큰 돈을 준 것은 당연히 대선 후보였던 저를 보고 준 것이며 그러니 대선후보이자 최종책임자인 제가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는 안대희 중수부장과의 독대에서도 “본인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 관련자들에 대해 선처를 바란다”고 거듭 당부했다.

스스로 감옥에 가겠다는 이 전 총재의 결심은 한편으로는 불법 대선자금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노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아울러 검찰에 대해서는 공정한 수사를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 불법 대선자금 수수와 관련, 검찰에 자진 출두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이 전 총재측은 당초 입장 표명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도 “이 전 총재가 (감옥에) 들어가서 ‘노 대통령 당신은 정말 깨끗한 선거를 했는가’라고 단도직입적으로 각을 세우는 것이 맞는 것인지, 모든 것을 감내하며 죽는 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왔다.

이와 관련, 이 전총재는 이날 회견에서 “대리인들만 처벌을 받고 최종 책임자는 뒤에 숨는 풍토에서는 결코 대선자금의 어두운 과거가 청산될 수 없蔑굅?승자인 노 대통령의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그는 이어 “저의 결심이 작금의 국가적 혼돈을 끝내고 우리 모두 새 시대를 향하여 역사를 한걸음 진보시키는 진정한 정치개혁의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의 대선 자금 문제와 관련, 이 전 총재는 ‘직접 거론’ 대신 ‘우회적 언급’으로 가닥을 잡았다. 행간에 숨어있는 의미를 여론이 충분히 읽어낼 것이며, 이것만으로도 노 대통령과 검찰 수사를 충분히 압박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듯 하다. 패자인 이 전 총재가 검찰 자진출두를 통해 대선자금 수사에 적극 응하고 감옥행을 자처한 만큼, 승자인 노 대통령에게도 상당한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아울러 노 대통령이 전날 4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불법 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은퇴를 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을 계기로 검찰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수사를 촉구한 측면도 있다. 이는 검찰의 수사가 한나라당 불법자금에 대해선 대체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반면, 노 캠프측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이 전 총재의 이날 회견은 한나라당에 대한 마지막 충정이자 최상의 ‘결초보은’ 카드를 던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이 전 총재가 감옥행을 자처하고 나섬으로써, 지난 대선 패배 이후 사분오열된 한나라당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는 등 내년 총선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그는 회견에서 “한나라당은 저 이회창을 밟고 지나가서라도 부디 나라를 위하여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정당으로 거듭 태어나 달라”고 거듭 애정을 표시했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불법 대선자금 문제를 둘러싸고 심각한 내홍을 겪어왔다. 이런 와중에서 이 전 총재가 모든 책임을 자처함으로써, 한나라당으로서는 일단 대선자금 정국의 악몽을 털어내고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 측의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등 강공으로 국면 전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대선자금 파문으로 지연됐던 총선준비위 발족도 서둘러 가면서 정치개혁과 공천작업 착수 등 총선 행보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노 대통령, 승부수를 먼저 던지다



노 대통령도 불법 대선자금 문제와 관련해 이 전 총재의 회견에 하루 앞서 폭탄발언을 했다. 14일 4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내가 모르는 선거자금을 포함해 우리가 쓴 불법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걸고 정계 은퇴할 용의가 있다”고 선언한 것.

노 대통령으로서는 지난번 대통령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에 이은 제2의 ‘파격적인 승부수’인 셈이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한나라당 등이 제기하고 있는 불공정 수사 공세를 차단하면서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해 적어도 한나라당 보다는 도덕적 우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금까지 500억원 가량의 불법 대선자금이 드러나면서 궁지에 몰려있는 한나라당과 수억원의 불법 대선자금만이 규명된 ‘노무현 선대위’를 대비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대통령직 사퇴여부를 ‘10분의 1’로 스스로 못박은 것은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다. 노 대통령 입장에서는 불법 대선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에 훨씬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 하지만 야당과 시민단체는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위험한 발언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경실련 고계현 정책실장은 “대통령이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해 내놓은 정계 은퇴 발언은 현재 진행중인 검찰 수사에 부담을 줄 수 있다”며 “대선자금 수사의 형평성과 공정성에 시비를 불러올 수 있는 만큼 부적절한 발언이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이 승부수는, 섣부른 전망일지는 모르나, 이전에 있었던 노 대통령의 승부수와는 그 결과가 사뭇 다를 것으로 보인다.


검찰, "오신다고 하니 난감하군"



이 전 총재가 “불법 대선자금 모금을 주도했다”고 시인하며 검찰에 자진 출석함에 따라 검찰 수사도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물론 지금껏 불법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의 최대 쟁점 중 하나는 불법 대선자금 모금이 누구의 기획과 지시로 이뤄졌느냐는 문제였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정점에 서있던 이 전 총재가 검찰의 본격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덜컥 모금사실을 시인하며 검찰에 스스로 출석하자 검찰도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특히 이 전 총재 조사에 들어간 검찰은 이 전 총재의 개입 여부에 대해 별다른 단서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총재의 법률 특보인 서정우 변호사와 최돈웅 의원 등은 대선자금 모금의 기획과 지시 부極?대한 검찰 조사에서 이 전 총재의 지시 또는 기획 등과 관련한 별다른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수사 방식이라면 소환에 앞서 충분한 증거와 단서를 확보, 추궁할 소재를 찾아야 하는 데 별다른 준비가 없었던 검찰로선 이 전 총재의 자진출석으로 허를 찔린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도 이날 이 전 총재를 면담한 자리에서 “이 전 총재가 어떻게 내용을 다 알았겠느냐. 조사할 것이 없는데 막상 오신다고 하니 난감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쨌든 이 전 총재가 불법 대선자금 모금을 주도했음을 자인하고 감옥까지 가겠다면서 검찰에 자진 출두한 만큼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 지 주목된다.

아울러 검찰은 수개월째 끌던 대선자금 수사를 조기에 종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지만, 대선자금 문제를 둘러싼 노 대통령과 이 전 총재의 벼랑 끝 싸움은 앞으로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입력시간 : 2003-12-1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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