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차종별 요율 차등화, 소비자·자동차업계 이해 엇갈려

자동차보험료 제도개선 논란
지역별·차종별 요율 차등화, 소비자·자동차업계 이해 엇갈려

다른 조건은 모두 같다. 단지 살고 있는 지역만 다를 뿐이다. 헌데 전북에 사는 A씨는 자동차 보험료가 70만원이고, 부산의 B씨는 50만원이다. 이유는 하나다. 전북은 사고 다발 지역인 반면, 부산은 사고율이 현저히 낮은 곳이기 때문이다. 과연 B씨가 수긍할 수 있을까. 혹시 새로운 지역 차별은 아닐까.

금융감독원은 12월 10일 ‘자동차보험 요율 제도 개선 추진 방향’이라는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형평에 어긋나는 보험 요율 제도의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합리적인 개선 방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골자는 세가지다. △지역별 요율 차등화, △차량 모델별 요율 차등화, △최고 할인율 도달 기간 연장. 하나 하나가 손해보험 업계의 오랜 숙원으로 그간 수차에 걸쳐 추진했지만 이런 저런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사안들이었다. 그만큼 녹록치 않은 사안들이라는 의미다.

갑작스런 금감원 발표에 여기저기서 의혹의 시선이 꽂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결론부터 말해, 전북 혹은 강원 지역에서 1,300㏄급 뉴엑센트 수동 차량을 보유한 5~6년 무사고자가 이 제도의 최대 피해자가 될 전망이다.


지역별 보험료 제주 서울 ↓, 전북 강원 ↑

지역별 요율 차등화에 따른 최대 수혜지는 제주다. 2000년(회계연도 기준) 이후 올해까지 2001년을 제외하고는 전국에서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가장 낮았다.

손해율이란 보험료 납부액에서 보험금 지급액이 차지하는 비율. 제주는 2000년 49.4%, 2001년 59.4%, 2002년 55.6%, 그리고 2003 회계연도 상반기(4~9월) 58.4% 등 손해율이 단 한번도 60%를 넘지 않았다. 70%를 넘나 드는 전국 평균치에 비해 크게 낮은 수치다.

그만큼 자동차 사고가 적었다는 얘기다. 관광 지역으로 도로망이 잘 발달한 데다 유동 차량이 그리 많지 않은 탓이다. 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진 서울, 부산, 대구 등도 전국 평균보다 월등히 낮은 손해율을 보여 왔다. 그간 사고가 많은 다른 지역 보험 가입자들 때문에 높은 보험료를 내왔지만 지역 차등화가 시행될 경우 보험료 인하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전남ㆍ북, 강원, 충남 등은 상대적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한 때 100%에 육박하던 손해율이 최근 많이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전국 평균보다 높은 77~79%에 달한다. 그간 손해율이 타 지역보다 워낙 높아 보험사들이 보험 인수를 기피해 온 지역들이다.

금감원은 “단순한 손해율 뿐 아니라 개선 정도를 감안해 보험료를 책정할 것이기 때문에 지역간 보험료 격차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형평성 제고와 함께 지자체 간 경쟁 체제가 형성되면서 전체적으로는 자동차 사고율을 낮출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것도 금감원이 기대하는 효과 중 하나다.

금감원 보험감독국 최용욱 선임은 “무인 단속 카메라를 몇 개만 설치해도 사고율이 크게 줄어 드는 것이 현실”이라며 “지자체들이 지역 주민들의 민심을 고려해 손해율 제고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차종별 보험료는 체어맨 뉴리오 ↓, SM525 뉴엑센트 ↑

차종별 요율 차등화에 대한 금감원의 구상은 사고 시 차량의 손상 정도와 수리 비용에 따라 차량 등급을 매겨 자기 차량 손해 담보 보험료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차량 용도, 배기량 및 차량 연식에 따라서만 차등 적용하는 보험료를 앞으로는 차량 모델 별로도 차등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시행만 된다면 언제라도 준용할 수 있는 기준은 이미 마련돼 있다. 보험개발원 산하 자동차기술연구소가 올 3분기 실시한 주요 차종 등급 평가가 그것이다. ‘1+’에서부터 ‘11’까지 총 22개 등급 분류에서 최고 등급인 ‘1+’ 등급을 받은 차량은 3,500㏄급 ‘에쿠스’(현대)와 ‘체어맨3.2’(쌍용), 그리고 3,000㏄급 ‘다이너스티’(현대) 등 3종이었다. 사고 시 손상이 가장 적을 뿐 아니라 수리 비용도 적게 드는 차종들인 셈이다.

그렇다고 등급이 좋게 나온 대형차가 등급이 떨어지는 중ㆍ소형차에 비해 보험료 인하 혜택이 큰 것은 아니다. 형평성을 위해 등급 비교는 동급 배기량 차량들 내에서만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번 평가에서 배기량별 1위 차종은 오토 차량을 기준으로 2,500㏄에 ‘체어맨2.3’(쌍용) ‘리갈 ’(기아), 2,000㏄에 ‘리갈’, 1,800㏄에 ‘뉴EF소나타’(현대) ‘뉴옵티마’(기아), 1,500㏄에 ‘뉴리오’(기아) ‘아반떼XD’(현대), 1,300㏄에 ‘뉴리오’, 800㏄에 ‘마티즈’(GM대우) 등이었다. 차종별 차등화가 실시된다면 보험료 하락 1순위 차종들이다.

반면 ‘그랜저XG’(3,000㏄ 현대), ‘SM525’(2,500㏄ 르노삼성), ‘크레도스Ⅱ(1,800㏄ 기아), ‘뉴엑센트’(1,300㏄, 현대), ‘티코’(800㏄ GM대우) 등은 동급 차량 중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

특히 수동 차량의 경우 전반적으로 같은 차종이라도 오토 차량에 비해 1~2등급 낮게 평가돼, 1,300㏄급에서 최고 등급 차종인 ‘뉴리오 오토’(5+등급)와 최하위 등급인 ‘뉴엑센트 수동’(9+등급) 사이에는 무려 8등급의 격차를 보이기도 했다.


이해관계자 반발, 없었으면 될 수도

금감원은 △내년 1~2월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한 공청회와 인터넷 게시를 통한 사전 의견 청취, △1~4월 자동차기술 연구소 및 업체와의 간담회 통한 차량 모델별 등급 평가에 대한 객관성 검증 등의 절차를 거쳐 내년 5월께 개선 내용을 확정한다는 일정을 잡아 놓고 있다.

하지만 순탄하게 제도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제도 시행에 따른 수혜자와 피해자가 극명한 만큼 이해 관계자들의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는 탓이다.

지역별 차등화의 경우 보험 업계의 요구에 따라 이미 수차례 검토 대상에 올랐던 사안이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번번이 제대로 논의조차 해보지 못하고 수포로 돌아갔다. 한 손보업체 임원은 “정치적인 이해 관계가 얽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반대론자의 주장도 쉽게 묵살하기 어렵다. 전통적으로 손해율이 높은 호남이나 강원 지역의 경우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낙후된 환경에서 사는 것도 불만인데 보험료까지 많이 내야 한다는 것은 이중 차별에 다름 없다”고 항변한다. 해당 지역 시민단체들은 만약 제도가 시행되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겠다고 벼르고 있을 정도다.

차종별 보험료 차등화 역시 업계의 반발에 부딪힐 것은 뻔하다. 자사의 주력 차종이 하위 등급으로 평가돼 보험료가 높아질 경우 고객 이탈이 불 본 듯한데다 자칫 등급 평가가 차량 안전도 평가로 확대 해석될 수도 있다. 현재 7년으로 돼 있는 무사고 최고 할인율(60%) 도달 기간을 12년으로 늦춰 적용하는 방안도 계약자들의 권익을 무시한 처사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당국은 제도 개선 이후 전체적으로 보험료 총계가 같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보험사들의 경영난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갑자기 자동차보험 제도 개선에 나선 것에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낸다. 최근 1개월 사이에 무려 세차례에 걸쳐 자동차 보험료를 올렸다 내리고 다시 올린 손보사들의 촌극에 금감원의 강압이 작용했다는 곱지않은 시선을 피해 보자는 취지라는 것이다.

이해 관계가 극명히 대립한 사안의 경우, 당국의 강력한 의지가 없으면 절충점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벌써 십수년째 끌어 온 생명보험사 상장 문제가 대표적이다. 결국 무의미한 공방만 벌이다 슬그머니 다시 없었던 일로 돼버릴 가능성이 벌써부터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영태기자


입력시간 : 2003-12-18 11:34


이영태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