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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후세인 영욕의 24년


걸프 지역의 패자를 꿈꾸며 아랍권의 철권 통치자로 군림해 온 사담 후세인(66) 전 이라크 대통령이 마침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이란 전쟁과 쿠웨이트 침공 등 현대사에서 보기 드문 전쟁을 잇달아 일으켰던 후세인이 1979년 아메드 하산 알-바크르 대통령의 뒤를 이어 이라크 권자에 오른 지 24년 만이다.

후세인은 1937년 4월 28일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150㎞ 떨어진 소도시 티크리트 외곽에 있는 알-오자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사담’은 아랍어로 ‘맞서는(충돌하는) 자’라는 뜻. 가난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후세인은 57년 범 아랍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바트당에 입당하면서 핵심 분자로 성장했다.

59년 왕정 붕괴 후 집권한 압델-카림 카셈 대통령 암살 모의에 개입했던 그는 국외로 도피해 이집트와 시리아를 전전하다, 63년 바트당이 쿠데타로 집권한 후 바그다드로 돌아왔다.

그러나 불과 9개월 뒤 다시 정권이 바뀌면서 체포돼 66년까지 수감 생활을 해야 했다. 후세인은 68년 바트당의 무혈 쿠데타 성공을 통해 혁명평의회 부의장으로 부상했고, 79년 아메드 하산 알-바크르 대통령의 뒤를 이어 이라크 지도자의 권좌에 올랐다. 후세인의 일생을 지배해 온 과제는 이라크의 선진화와 ‘아랍권의 대부’로서의 지위 확보였다.

후세인은 문맹 퇴치에 나선 이후 막대한 석유 재원을 통해 이라크를 70년대 후반까지 보건 교육 등 사회기반 면에서 중동에서 가장 발달한 국가로 이끌었다.

후세인은 ‘아랍의 지도자’로서의 야망에 치중하면서 1980~88년 이란과의 전쟁, 90년 쿠웨이트 침공 등을 주도했다. 대량살상 무기 개발 프로젝트에 열을 올렸던 것은 이미 70년대 후반부터였다. 미국은 이란ㆍ이라크 전쟁에서 이란의 이슬람 혁명 확산을 우려해 후세인을 지원했으나, 이라크가 1990년 8월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원수가 됐다.

후세인은 이후 유엔의 경제 제재 등 국제적인 고립, 미국과 영국의 끊임없는 군사적 압박 등 대립적 정세속에서도 탄탄한 국제정치기반을 바탕으로 권력을 유지했다.

그러나 9ㆍ11 테러 이후 강경파와 함께 득세한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가 내건 사상 유례없는 예방 전쟁의 희생자로 올해 초 권좌에서 쫓겨났으며, 결국 부시 대통령의 가장 큰 전리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입력시간 : 2003-12-1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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