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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어 본 세상 "고소~합니다"
패러디 열풍…인터넷 통한 막강한 전파력, 문화 아이콘으로 등장
정치권이 단골 메뉴, 부도덕한 기업·명품열기 비튼 풍자도 '상큼'






“어차피 죽으러 왔소이다. 나 같은 사람 5명은 더 죽어야 이 땅에서 검은 돈이 사라지지 않겠소. 내가 그 처음이오” (송광수 검찰 총수)-“사람을 베는 게 아니라 죄를 베는 것이다. 내 검 앞에 예외는 없다” (강금실 여성 법무 장군)- “노무현, 당신의 계획이란 것을 다 안다. 특검 폭탄 갖구 와”(최병렬 딴나라 총수). 최근 사이버 공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패러디 무협만화 ‘대선자객(大選刺客)’의 일부다.

강금실ㆍ송광수ㆍ안대희 장수들이 ‘딴나라당’ 장수를 잇따라 쓰러뜨리다 특검 폭탄이 등장해 전열이 무너지자 노무현 대장군이 직접 칼을 든다는 내용.

11월 10일 ‘시사놀이터’를 표방한 시사 정치 사이트 ‘라이브이즈닷컴(www.liveis.com)’이 1편을 게재한 이래 12월 10일 현재 5편까지 연재되고 있다. 평균 조회수가 3만 여건을 훌쩍 넘어설 정도로 큰 인기다.


어두운 현실 해학적으로 풍자



2003년 12월 한국 사회의 단면에는 패러디라는 칼이 번득이다. 과거 패러디가 신문 만평이나 노래 등의 개작으로 현실을 비꼬는 정도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인터넷이란 무한 공간을 발판 삼아 가장 대중적인 문화 코드로 부각되고 있다.

예술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정치, 경제, 사회를 막론해 비틀고 흉내내고 야유함으로써 빚어 내는 웃음이 넘쳐 난다. 인터넷이라는 날개에다 합성사진ㆍ동영상ㆍ플래시(flash) 등 다양한 메뉴에 힘입어 막강한 전파력을 자랑하고 있다.

최근 패러디에서 큰 화제를 뿌리는 분야는 합성 사진.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이미지를 구하는 것이 수월해지면서 글보다 명료하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패러디 사진이 한창 유행 중이다. 영화 포스터 패러디가 대표적이다.



‘위대한 삥땅’은 정치 비리 문제로 상처 받은 국민들의 분노를 담은 합성 사진. 지난 10월 개봉한 임창정ㆍ김선아 주연의 영화 ‘위대한 유산‘을 패러디한 이 작품은 두 주연 배우의 얼굴 대신 노무현ㆍ이회창의 사진을 넣고, “대한민국 최고의 백수들이 떴다”는 광고 문구를 “대한민국 최고의 ‘구라’들이 떴다”로 바꿨다.

영화 ‘영어 완전 정복’에서 나온 ‘국회 완전 정복’(공동주연 노무현, 강금실)은 특검을 둘러싸고 정부와 국회가 벌이고 있는 대립을 소재로 다뤘다. 노무현 대통령과 강금실 장관이 ‘특검만 아는 딴나라’를 정복하기 위해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모습에서 웃지 않을 자는 없다.

극심한 경기 침체를 반영하듯 어려운 경제 상황을 비꼬는 패러디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사이버 세계를 강타한 짝퉁(모조품) ‘디디바오’는 유명 브랜드의 모조 상품이 네티즌에 의해 초고가 명품으로 둔갑한 경우다. 독일 브랜드 ‘아디다스’를 모방한 상품.

누가 봐도 모조품 냄새가 물씬 풍기는 조잡한 수준이지만, 일부 네티즌들이 장난 삼아 올린 “전 세계 상위 0.1%를 위한 명품 중의 명품”이라는 문구 한마디에 일약 유명세를 탔다. 거짓 정보에, 그 구입처를 묻는 전화가 쇄도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올 유행 인터넷 검색어 순위 6위에 그 말을 올리며 당당한 유행어 대열에 합류했다.


부조리한 사회 꼬집기



이러한 패러디 합성 사진 열풍의 진원지는 300만명의 네티즌이 이용하는 인터넷 디지털 카메라 사이트 ‘DC인사이드’(www.dcinside.com)가 첫손에 꼽힌다. 박주돈 이사는 “연예인이나 만화 캐릭터 등의 합성 사진을 올려 놓던 데서 정치ㆍ경제에 대한 풍자로 옮겨가고 있다”며 “패러디가 사회 정화의 차원으로 격상중”이라고 말했다.

정가와 방송계는 패러디 열풍을 즐기고 있다. 11월 9일 MBC TV ‘주말 뉴?데스크’ 최일구 앵커의 뉴스 말미 ‘데스크 생각’을 보자. MBC 인기드라마 ‘대장금(연출 이병훈)’의 장금이 과욕을 부리다가 첫 번째 경합에서 진 사례를 들어 “남을 이기기 위한 음식을 만들다가 진 장금의 예를 교훈 삼아 정치인도 반성해야 한다”는 앵커의 말이었다. 같은 달 27일 민주당 장전형 부대변인은 한술 더 떴다. ‘대장금’ 주제가를 패러디한 구두 논평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잘 하라 잘 하라 잘 하겠나. (최병렬 대표) 관두라 관두라 관두겠나. (국민은) 한없이 기다려도 못 하나니. 아니리 아니리 (양쪽) 모두 아니로세.” 두 사람을 동시에 꼬집는 절묘한 표현에 당시 취재진은 박장대소로 답했다.

시민단체 ‘함께 하는 시민행동’(www.ww.or.kr)이 12월 1일 발표한 제 1회 ‘패러디 광고 대회’의 결과는 패러디 바람의 미래를 가늠케 한다. 최우수작인 ‘SK 기업 광고’ 패러디를 보자. “선거 치르시기 힘드시죠? 부탁하신 선거 자금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문구다.

SK의 불법 대선 자금을 비웃었다는 사실을 누구든 알 수 있는 이 광고의 주체는 ‘대한민국을 더럽게 만든 힘 SK’.

우수상은 “BC로 사세요”라는 광고 문구를 “빚지고 사세요”로 비튼 작품에게, “인생 역전, 로또”를 “인생 여전, 로또”로 바꾼 작품에게 돌아 갔다. ‘함께 하는 시민행동’의 회원 신태중 씨는 “패러디는 기업 문화의 허상을 벗기는 데 조사나 폭로 등의 방법으로 접근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고, 시민들의 관심을 폭 넓게 끌어낼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했다.


고차원적 스트레스 해소법



지금, 왜 패러디 열풍인가?

밝은마음클리닉 (신경정신과) 배종훈 원장은 “어둡고 암담한 현실에서 마음 속에 갈등을 갖고 있을 때 이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무의식의 방어(defense) 기제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요즘의 패러디 열풍은 경기 침체, 정치권 비리 등에 따른 현실의 불만 심리를 ‘유머’로 극복하는 일종의 고차원적 스트레스 해소법”이라고 밝혔다. 각박하고 어두운 사회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패러디 문화의 성숙한 발전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문화평론가 김동식 씨는 “모르고 있던 사실을 새롭게 제시하며 세태를 날카롭게 꿰뚫거나, 사회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자기 반성의 문제를 짚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기술적ㆍ양적인 발전에 비해 내용적 성장이 미흡한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패러디 열풍은 대립과 투쟁의 종언을 알리는 신호다. 웃음에의 욕구 앞에 성하게 살아 남을 자, 지금으로선 아무도 없다. 웃음이 갖는 일회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패러디의 미래가 달려 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입력시간 : 2003-12-1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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