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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LP] 패티김(下)




용산 미 8군 무대에 작곡가 박춘석이 찾아왔다. 그는 '사랑의 맹세', '파드레' 등 팝송을 개사해 패티김의 데뷔 음반(10인치 LP) 발표를 주선했다. 음반 발표 후 김치캐츠, 이해련 등과 함께 일본에 초청 받았다. 초청자는 당시 일본의 인기 테너 색소폰 연주가로 재즈 캄보 '쿨 캐츠'의 리더였던 길옥윤이었다.

패티김은 일본과 동남아 공연을 마치고 1962년 5월에 새롭게 개관한 서울시민회관 무대에서 또 다시 귀국 쇼를 성공리에 마쳤다. 그 해 말 김시스터즈를 픽업했던 맥 매킨의 주선으로 꿈의 무대인 미국 라스베가스 공연이 성사되었다.

63년 3월, 부푼 꿈을 안고 미국 땅을 밟아 신인임에도 선더버드 호텔 등에서 뮤지컬 '훌라워 드럼 송'의 주연 배우로 출연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는 새벽 4시가 되야 하루 일과가 끝나던 고된 시절이었지만 꿈에 부풀어 피곤할 줄도 몰랐다." 가수로 성공하고 싶어 술 담배도 멀리 했지만 매니저 해약 갈등으로 4달간 활동을 못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65년 가을, 유명 TV쇼인 '자니 카슨 쇼'와 NBC TV '투나잇 쇼'에 8회나 출연하며 제법 유명세를 탔다.

66년 1월, 서울로부터 어머니의 위독함을 알리는 전화 한 통이 왔다. 3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이때부터 패티김은 국제적인 가수로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TV 쇼에서는 특집 쇼를 마련해 주었다. 이 무렵, 자신과 똑같이 어머니의 병 문안 때문에 일본에서 귀국한 길옥균과 재회를 했다.

일시 귀국한 공통점 때문에 같은 프로들에 함께 출연을 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친해져 신보LP음반 제작까지 하게 되었다. 길옥윤이 그녀를 위해 처음으로 작곡해 준 노래는 '4월이 가면'. 이후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12월 10일 워커힐호텔에서 3,000여 하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보통 개런티의 10배가 넘는 36만원의 거액을 받고 발표한 <크리스마스 앨범-신세기.66년 12월>은 결혼 기념 음반으로 화제가 되었다.

일본에서 신접 살림을 시작한 이들 부부는 67년 5월 월남 장병 위문 공연을 떠나기도 했다. 결혼과 함께 국내 가요계에 정착한 패티김은 국내환경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부부의 활약은 대단했다. 길옥윤은 DBS 전속 악단장을 맡아 부부가 함께 '패티와 이밤을'을 진행하며 더욱 대중과 친숙해 졌다.

결혼 직전에 예그린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에 출연하며 뮤지컬 배우로도 데뷔했었던 패티김은 68년 2월, 시민회관에서 예그린 악단 뮤지컬 3회 공연인 '대춘향전'의 주연을 맡아 한껏 재능도 뽐냈다.

11월 첫 딸 정아를 얻었다. 12월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열린 길옥윤의 첫 리사이틀에서 '사랑하는 마리아'를 처음으로 불렀다. 이 노래는 일본에서도 대히트를 기록했다. 이때 패티김의 일본 대중 잡지 '주간대중'에 게재된 살색 수영복 누드 사진 사건으로 곤혹을 겪었다.

'잉꼬부부'로 불렸던 이들의 갈등이 시작된 것은 이 무렵부터. 마침내 길옥윤의 3차례의 사업 실패로 71년 9월 하와이에서 결별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패티김은 '이민설'에 이어 '유태계 사업가 W씨가 새 애인', '주한 고위 미군 장성 모씨와 동거중' 등 온갖 스캔들의 초점이 되었다.

72년 5월 길옥윤은 새 노래 '이별', '서울의 모정', '사랑의 기도'를 들고 돌아왔다. 장충동 스튜디오에서 녹음해 빅 히트가 터졌지만 73년 9월 두 사람은 이혼을 발표해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이별'은 신상옥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 했다. 이혼 후 모든 출연 스케줄을 취소하며 2개월 간 두문불출했다.

하지만 74년 새해가 되면서도 '패티가 이태리인과 결혼하고 이민 간다. 이혼은 그 남자 때문이다'는 스캔들은 계속 터져 나왔다. 그 와중에도 앙드레김과 패션쇼를 펼치고 이형표감독의 '속 이별'영화에 딸과 함께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74년 6월 패티김은 4회 동경국제가요제에 길옥윤과 함께 '사랑은 영원히'로 출전해 14개국 450곡 중에서 3위에 입상했다. 야심 찬 포부를 가졌던 그녀는 3위 입상에 충격을 받고 일본 활동을 취소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76년 3월엔 오랫동안 열애 설이 돌았던 이태리계 미국인 아바라도 게디니와 뉴욕에서 재혼을 했다.

또한 캐나다 토론토에서 리사이틀을 개최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80년 3월, 강남구 서초동에 이태리 식당 '마마潔?를 오픈하며 사업가로 거듭났다. 가수 활동은 대형 디너쇼에만 치중, 지나친 거물 가수 행세로 눈총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83년에는 25주년 기념 신보 '가을을 남기고 간사랑'으로 팬들의 변치 않는 사랑을 확인했다.

또한 가수 생활 30년과 서울올림픽 1주년 기념공연으로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세종문화회관무대에 올랐다. 93년에는 예술의 전당 야외무대에서 노래인생 35년을 결산했고 94년에는 '서울의 찬가'로 '자랑스러운 서울시민 6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95년에는 영원한 콤비 길옥윤의 영결식에 참가해 '서울의 찬가'를 떨리는 음성으로 불러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이 노래는 결국 95년 10월 26일 서울 세종로공원에 노래비로 탄생되었다. 또한 고 길옥윤씨가 암투병중에 만든 곡 '인형의 눈물' 등을 모아 유작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96년 패티김은 대한민국연예예술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한국 여성단체연합후원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그녀는 왕성한 사회 활동과 더불어 여전히 전국 투어에 나서며 가요계의 여성 거목으로 우뚝 서 있다.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kschoi@hk.co.kr


입력시간 : 2003-12-18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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