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압력과 저항'에 정면대결, 대선자금 개인유용 등으로 수사 확대

검찰 대반격 "다 벗겨주마"
정치권 '압력과 저항'에 정면대결, 대선자금 개인유용 등으로 수사 확대

“대선자금 수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모든 수사팀은 자신의 직(職)을 걸고 끝까지 불법 대선자금을 추적할 것이다.”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12월17일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대선 자금에 대한 특검 도입 입장을 밝힌지 약 4시간 뒤에 기자간담회를 자청, 철저한 대선자금 수사를 거듭 강조했다.

입이 무겁고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안 부장이 강도 높은 수사를 예고한 것은 정치권의 ‘압력’과 ‘저항’에 정면대결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로, 사실상 정치권을 향해 ‘대반격’에 나선 것이다.

정치권의 태도에 조심스럽게 대응해온 검찰이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꾼 것은 한나라당 등 야당측이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 재의결에 이어 대선자금 특검 등 검찰의 수사권을 제한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직접적인 도화선은 최 대표의 기자회견으로, 검찰은 정치권이 각종 기자회견이나 특검 도입 등을 통해 사정 칼날을 무력화하고 나아가 법무부장관 탄핵 시도 등 ‘검찰 흔들기’에 나설 것으로 파악한 것이다.

또한 만의 하나 특별검사에 의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경우 지금까지 높여놓은 검찰의 위상이 크게 손상될 수 있다는 우려도 ‘대반격’의 단초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정계와 재계는 ‘크리스마스쯤에는 반드시 휴가를 가겠다’고 한 검찰이 돌연 재무장을 선언하자 아연 긴장한 채 차후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특히 정치권은 검찰 공세의 빌미를 제공한 데다 총선을 앞둔 상황이어서 당은 물론 의원 개개인의 생사도 좌우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젖어 검찰의 ‘대반격’ 카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와 관련, 안 부장은 지난 17일 “(한나라당과 노무현 대선 캠프 공히) 대선자금을 부정축재에 유용한 정치인이 있어 용처에 대한 수사를 반드시 할 것이며, 당비나 특별당비 명목으로 불법대선자금이 유입된 단서도 포착했다”고 말해 ‘대반격’의 방식을 흘렸다.

그러나 “용처 수사 부분에서는 대선자금 규모 수사를 마무리 한 후 본격적으로 시행할 것”이라고 밝혀 검찰수사가 당분간 불법 대선자금 규모를 밝히는데 집중될 것임을 예고했다.


새 변수로 떠오른 특별당비

안 부장의 발언에 비춰볼 때 정치권을 향한 검찰 대반격 카드의 핵심은 수사중인 정치권과 기업간의 불법 대선자금 커넥션을 철저하게 밝힌 뒤 개인이 유용한 대선자금의 ‘용처’, 불법적인 당비와 특별당비의 실체를 밝히는 것으로 요약된다.

기업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 주목되는 것은 검찰의 수사가 확대일로에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5대 기업을 중심으로 한 불법자금과는 다른 형태로 이뤄진 불법 후원금을 밝히는데 중점을 두고 수사범위도 금융권과 공기업,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불법 자금은 불법적인 당비와 특별당비란 이름으로 이뤄졌으며 궁극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정계은퇴 기준 발언인 ‘10분의 1’대목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특히 노무현 대선캠프 지원 관련 부분에 대해 함구하거나 비협조적인 기업들에 대해서는 ‘총수 소환’, ‘비자금 추적’ 등 아킬레스건을 압박하며 정확한 자금 내역을 추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 수사와는 별개로 진행되고 있는 일부 대형 공기업과 공적 자금이 투입된 일부 기업, 금융권 등에 대한 수사도 본궤도에 올랐다.

중수부의 한 관계자는 “모금 액수가 4대 그룹에 비해 현저히 적어 일단 수사 우선 순위에서 뒤로 처지고 있지만 공적 자금이 투입된 기업이나 공기업 중에 민영화 과정을 밟고 있는 일부 기업들이 불법 대선자금을 제공했다면 이 돈은 당연히 회사의 비자금일 가능성이 높아 돈의 조성 경위를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 안대희 중수부장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검찰과 금감위 주변에서는 워크아웃 기업인 D사의 경우 사장의 임기 연장을 위해 여야 대선 캠프에 각각 5억원, 50억원의 정치자금을 전달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또 민영화된 공기업인 P사는 회장 연임을 위해, K사는 K고 인맥의 장기 집권 및 장관 영전을 위해 각각 50억원을 한나라당에 로비했다는 拈??있다. 모두 10여개 기업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고 한다.


여야 핵심정치인 10여명 수사선상에

검찰이 정치권을 바짝 죄는 카드는 안 부장이 언급한 대선자금 용처와 당비·특별당비 부분이다. 만일 개인 용도로 대선자금을 유용하거나 부정축재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해당 정치인은 물론 당까지도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한나라당과 노무현 후보 캠프 핵심 정치인 10여명이 기업에서 모금한 불법 대선자금을 개인적으로 사용하거나 부정 축재한 구체적인 단서가 포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가에서는 한나라당 중진 H씨가 S기업 등으로부터 30억원을 받아 부정 축재했고, 또다른 중진 S씨는 대선자금 중 수십억을 개인용도로 활용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사조직의 S씨와 L씨도 대선자금을 당을 거치지 않고 사사롭게 선거에 사용한 의혹을 받고 있다.

민주당 중진 H씨는 S기업으로부터 20억원을 받았고, Y씨는 대선자금 중 수억원을 유용했다는 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여권에서는 중진 L·J·씨가 대선자금 일부를 유용했다는 소문에 펄쩍 뛰고 있다. 검찰은 이미 개인 유용 단서가 나온 개별 의원들의 관련 계좌에 대해 계좌추적중인데, 1월 중순께 이들에 대한 소환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대선자금 수사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한 당비와 특별당비는 지금까지 불법자금으로 계산되지 않았던 부분이어서, 그 규모가 드러날 경우 불법자금의 규모는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다.

검찰은 이미 각 캠프의 ‘특별 당비’ 의혹을 밝히기 위해 민주당 재정국 백모 부국장을 소환, 특별당비의 모금 경위와 사용 내역 등을 추궁했는가 하면 대선 당시 한나라당 선대본부장이던 김영일 의원을 재소환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검찰의 ‘대반격’ 카드는 일단 정치권을 압박하며 순항을 하고 있다는 평이다. 그러나 사정 칼날을 마주하고 있는 기업이나 관련 당사자들이 침묵을 지키다 특검에서 ‘폭탄 선언’을 할 경우 검찰의 위상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어 검찰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대선자금을 둘러싼 여야와 검찰의 대립이 ‘윈-윈’이 아닌 ‘All or Nothing’ 게임이란 점에서 관련 당사자 모두 수싸움을 벌이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3-12-23 16:30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