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혁림·장리석·정점식·장두건·이규호 화백 예술열정·독창적 세계 화폭에임정희·하정민 등 26명 초대작가전 포함 총 320여 작품 선보여

1971년 프랑스 파리에서는 피카소 탄생 90주년을 기념하는 대회고전을 개최, 20세기 천재화가의 예술을 추앙했다. 그 순간에도 피카소는 고전 대작들에 대한 재해석 작업을 하면서 자화상을 그리거나 도자기를 만들며 미술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피카소가 90여 생애에 긍극적으로 사랑한 것은 ‘미술’이었고, 이에 대한 열정이 그를 ‘위대한 예술가’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그 같은 예술적 열정을 한평생 담아 온 한국 화단의 대표적 어른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다. 월간미술세계가 창간 24주년을 맞아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 특별히 마련한 ‘KOAS(KOREA ART SPECIAL FESTIVAL)展’에서다. KOAS 특별전 <정년은 없다> 전에는 90의 성상을 헤아리는 우리나라 미술계의 대표적 원로 작가 다섯 분이 참여한다. 전혁림ㆍ장리석ㆍ정점식ㆍ장두건ㆍ이규호 화백이다.

이들 원로 작가들은 평생을 예술에 헌신한 분들로 여전히 현장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랜 삶의 연륜과 더불어 농축되고 숙성되어진 이들의 예술세계는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삶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우리 현대미술의 전개과정에 대한 진솔한 기록의 한 부분이기도하다.

아울러 이들의 작품 세계에선 중국 명말청초의 위대한 화가이자 이론가인 석도(石濤)가 그의 유명한 ‘일획론(一劃論)’ 에서 거론한 회화의 요체, 즉 보편성에 기반한 개성의 창조라는소중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색체화가’로 불리는 전혁림(93) 화백은 이번 특별전에서 특유의 색체 미학을 선보인다. 20대 초반 미술 입문 시절부터 색체의식을 높게 평가받은 그는 70~80년대를 거치며 단조롭고 갇힌 색체에서 벗어나 자유자재로 선과 색체를 구사하는 단계로 발전한다.

화면에서 형상이 사라진 때 그의 색체의식은 더욱 빛을 발했다. 그에게 색은 고유한 자립성이며 독창성의 기반이다. 여기에 고향(경남 통영)의 빛깔이 더해져 ‘물빛화가’로도 불리는 전 화백은 이번 전시에서 그만의 다양하고 고유한 색체를 선보인다.

장리석(92) 화백은 그의 일관된 삶과 병행한 시류에 흔들리지 않은 미학의 힘이 고스란히 작품에 담겨 있다. 가난하지만 진실에 찬 생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건강성, 해학과 재치, 낙천성 등.

한국인의 보편적 서정성에 천착한 그에겐 ‘서민의 애환을 쫓는 시대적 증인’이란 말도 따른다. 무엇보다 격변의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밀려드는 서구의 미술사조 속에서도 리얼리즘에 근거한 한국의 구상미술 세계를 새롭게 개척한 점이 높게 평가받는다.

이는 한국 화단의 마지막 리얼리스트로 불리는 장 화백이 친구들이었던 박수근, 이중섭, 최영림과 더불어 한국 구상회화의 거장으로 추앙받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선 토속적인 서민의 건강한 삶을 그린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정점식(91) 화백은 부단한 자기부정을 통해 자신의 예술세계를 개척해 왔다. “자기의 틀을 깨지 않고는 자기를 쇄신할 수 없다”는 그의 예술관은 그를 끊임없이 창조의 길을 걷게 했다.

1940~50년대 ‘바위 시리즈’, 60년대 흰색이 주류를 이루는 작품, 70년대 이후 다양한 추상 작업들이 그렇다. 정 화백은 아방가르드나 컨템포러리 같은 시대 조류에 편승하기보다 자기 내부에 귀기울여 왔다. 그가 우리의 ‘원형’을 찾아 이를 작품에 반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 스스로 제시하고 조명하며 탐구적인 비판을 내린 그만의 예술세계를 볼 수 있다.

장두건(90) 화백의 작품적 특징은 견고한 구상성을 양식기조로 삼고 있으나 기존의 자연 묘사적 리얼리즘과는 구별되는 독자적 개성성에 있다. 특히 사물의 윤곽적 형상에 철저하다는 점에서 지극히 선적이다. 그의 작품은 한국적 정취를 가득 담고 있지만 표현 양식은 한국인의 통상적 관념(정서)에 익숙치 않다.

외부의 평판에 초연하며 자신의 내밀한 이미지를 표상화하는 외??작업을 지속적으로 끌어온 결과다. 장 화백은 인상파가 추구한 여러 가지 현상의 순간적인 인상 포착보다 사물의 존재와 본질을 파악하는 것을 주된 임무로 삼아오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왔다.

이규호(88) 화백은 30년 이상 ‘달맞이꽃’을 그리며 화단 한쪽에서 향토적 자연애를 소재로 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지켜왔다. 야생화를 주제로 했지만 그 형상과 화면구성은 자율적인 창작으로 전개시켰다.

단순한 자연주의적 재현이나 사실주의 시각의 묘사에서 벗어난 심의(心意)의 표현이 자유롭게 빚어진 작품행위로 독자적 창작성을 실현시킨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달맞이꽃의 이미지’를 순수하게 변용 내지 단순화시킨 화면전개와 구성으로 현대적인 조형작품으로 귀결시킨 창의성을 엿볼 수 있다.

<정년은 없다> 전은 모든 것을 연소시켜 온갖 불순물 들을 걸러낸 원로들의 작업으로 젊은작가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기세나 분방한 재치 대신 한없이 그윽하고 은근하며 정화된 예술의 혼을 전해줄 것이다

한편, ‘KOAS展’은 건강한 미술문화의 발전과 육성이라는 기본 정신을 바탕으로 5명의 원로작가 외에 확고한 작가의식으로 창작활동을 펼치는 중진작가와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작업에만 열중해 온 지역작가 등 모두 31명 작가들을 초대한다.

작년 KOAS전에서 인기작가로 선정된 임장희 작가와 올해 특별 초대작가인 하정민 작가를 비롯해 강신영ㆍ고찬용ㆍ공옥희ㆍ김영호ㆍ김충식ㆍ박광택ㆍ박기수ㆍ손일삼ㆍ송혜숙ㆍ안정균ㆍ연영애ㆍ옥현희ㆍ유영순ㆍ유영옥ㆍ윤길영ㆍ이율배ㆍ이일구ㆍ이재옥ㆍ이혜경Aㆍ이혜경Bㆍ이환범ㆍ임형준ㆍ차대영ㆍ최태훈 작가들이다.

원로 작가 작품 50여점을 비롯 총 320여점이 전시되는 ‘KOAS展’은 12월 2일까지 이어진다. 02)2278-8388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