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여행·북살롱·북콘서트 등 다양한 이벤트로 공감대 형성

사과 농장 주인 : 사과는 돌려따는 게 아니고 위로 들면 따져유. 하나는 그 자리에서 시식해도 되니께 드셔보시고 그거 비슷한 거 따세유.

관광객 : 사과나무에 농약 쳤어요?

농장 주인 : 농약은 친지 오래됐구유, 사과는 바로 닦어서 드셔두 돼유.

진행요원 : 사과따기 체험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하시겠답니다.

농장 주인 : 오시는 길은 남의 밭이니 거기는 밟지 마세유. 이말 하려고 올라왔슈.

‘주말 농장 체험’이 아니다. 정호승 시인과 함께 한 가을문학여행(충남 예산)의 한 장면이다. 지난 8일 정호승 시인은 독자와 함께 사과를 따고, 사진을 찍으며 정 시인의 작품 배경이 된 수덕사를 답사했다. 동행한 기자의 인터뷰를 반기지 않는 정 시인이지만, 독자에게는 한 없이 너그러웠다. 그는 이날 여행을 함께 한 200여명의 독자에게 모두 시집을 나눠준 뒤 일일이 사인을 해주었다. 아침 8시에 시작한 문학 투어는 밤 10시가 넘어 끝났지만, 정 시인은 독자의 사인과 사진촬영 요구를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 이렇게 작가와 독자들이 함께하는 체험 행사가 늘어나고 있다. 작가의 유년 시절과 작품 배경이 된 명소를 중심으로 한 ‘문학투어’를 비롯해 작가의 집을 직접 찾아가 강연을 듣는 ‘집들이’형 이벤트, 책과 음악이 함께하는 북 콘서트 등 다양한 문학 행사들이 선보이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에 갇힌 문학현장에 대한 반성이자 날로 진화하는 ‘21세기형 독자’를 붙들기 위한 노력이다.

■ 문학, 테마여행으로 거듭나다

문학 체험 행사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작가와 함께 떠나는 문학여행이다. 대표적인 것이 문학과 문화를 사랑하는 모임(이하 문학사랑)에서 펼치는 문학기행. 2002년부터 시작한 문학기행은 작고한 고 이문구 작가를 비롯해 황동규 시인, 이윤기 작가, 김주영 작가 등 많은 문인들이 참여한 바 있다. 김주영 작가의 <객주> 첫무대인 문경새재, 김명인 시인의 울진 불영사, 안도현의 예천, 문태준의 김천, 성석제의 상주 등 작가들의 문학적 공간을 찾아 독자와 감성을 공유한다.

성석제 작가는 지난 15일100여명의 독자와 함께 떠난 경북 상주 여행에서 “열 다섯 살 때 상주를 떠났는데 그때는 이미 상주가 내 몸과 마음, 운명을 결정지은 다음이었다”고 말해 그의 문학 세계에서 고향이 끼친 영향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지금까지 내가 썼던 소설의 절반 이상이 상주와 관련된 것들이고 우리 소설에서는 보기 힘든 상주의 귀한 사투리와 말투를 푹푹 가져다 쓰기도 했다. 상주라는 샘은 마르는 법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문학작품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 배경이 된 공간과 그곳에 담긴 작가의 경험을 살펴 문학이 ‘테마 여행’의 소재가 된 셈이다.

문학 기행은 온-오프라인 대형 서점의 마케팅에서도 활용된다. 온라인 서점 ‘예스24’는 올해 여름 박경리 선생의 문학을 돌아보는 ‘통영-하남 문학캠프’를 2박 3일간 열었고, <제주걷기여행>의 저자 서명숙 씨와 함께 실제 책 속의 여행 코스를 함께 가는 행사를 1박 2일 동안 진행했다. 통영-하남 문학 캠프에서는 토지의 주 무대가 된 최참판댁을 방문하고, 토지 속의 한 장면을 재연하는 상황극도 펼쳤다.

교보문고 역시 박범신 작가와 함께 강경문학 기행을 진행했는데, 작가의 생가인 두화마을과 작가의 학창시절, 신혼시절, 등단한 집을 돌아보았다. 교보문고는 올해 해외문학기행도 진행했는데 올해 1월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 <설국>의 배경이 된 니가타현을 방문했고, 6월에는 톨스토이의 문학 세계를 찾아 러시아문학기행을 진행했다.

작가는 독자를 직접 만나 반응을 듣고, 자신의 문학세계를 알릴 수 있으며 독자는 좋아하는 작가를 실제로 만날 수 있다. 문학을 주제로 ‘공감의 장’이 형성되는 셈이다.

‘정호승 작가와의 문학여행’에서 만난 김보영(31) 씨는 “친구 셋과 함께 신청해 오게 됐다. 도종환 시인을 비롯해 이전에도 문학투어를 몇 번 가본적이 있다. 작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듯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초등학생 아들과 중학교 2학년 친구 아들을 데리고 온 김숙경(42) 씨는 자녀 교육을 위해 문학기행에 온 열혈 엄마다. 김 씨는 “요즘에는 엄마들이 아이 교육에 신경을 써서 이런 테마 여행을 자주 온다. 특히 ‘놀토’가 있는 날이면 학교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알려주기도 한다. 교과서에서 보던 문인들을 직접 만나고 체험하는 게 교육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5- 이외수 작가 감성마을투어
6- 이외수 작가 감성마을투어
7- 서명숙 저자와 함께 하는 제주 걷기 여행
8- 러시아 문학기행

■ 강연회도 소수정예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신간이 나오면 수백 명의 독자로 북적이던 저자 사인회와 강연회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강연회는 30~50명으로 규모를 줄여 독자와의 대화 시간을 늘리는 추세다. 저자가 작품의 의도와 줄거리를 설명하는 일방향적인 소통이 아니라 독자의 질문을 듣고 대답을 해주는 쌍방향적 대화로 강연회가 바뀌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소수정예 강연회를 두고 ‘북 살롱’이란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근대 유럽의 지성인이 모여 토론을 나누는 살롱분위기를 본떠 만든 신조어다.

소수 정예 강연회를 아예 작가의 집에서 여는 경우도 있는데, 이외수 작가의 ‘감성마을 투어’가 대표적인 예다. 이외수 작가는 종종 대형서점과 문화 재단 등과 함께 20~30명의 독자를 초청해 담소를 나누고 탁구대회나 바비큐 파티를 연다. 이 달 초에는 강원도 인재개발원에서 직원 교육의 일환으로 신규 임용후보자 89명을 대상으로 이외수 작가의 감성마을로 여행을 보내기도 했다.

문인의 작품과 음악,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가 만나 ‘북 콘서트’ 형식의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이때 작가들은 단순히 작품을 낭독하고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음악이나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를 준비한다.

최근 장편 <밤을 노래한다>를 펴낸 김연수 작가는 출간을 기념해, 이 책을 집필하며 들었던 음악과 취재여행을 다니며 찍은 사진을 함께 보여주는 낭독회를 홍대에서 열었다. 지난 6월 북콘서트를 가진 김중혁 작가는 작품을 낭독하는 동안 직접 캠코더로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고 노래해 분위기를 돋우기도 했다. 지난 10월 작가회의가 주최한 인문학 콘서트에서는 김미월 작가가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김민정 시인이 ‘고비라는 이름의 고비’, 박범신 작가의 ‘주름’‘흰소가 끄는 수레’의 일부를 낭독한 뒤 인형극과 음악밴드의 공연, 미디어 퍼포먼스를 함께 진행했다.

북 콘서트를 진행한 작가들은 “전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독자들이 미리 책을 읽어오고 작가도 독자도 적극적이어서 현장 분위기가 훨씬 좋다”고 입을 모은다.

■문학이벤트, 문학 콘텐츠 될까?

문학 이벤트 행사에 대한 독자와 작가들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문학사랑’의 이종주 상임이사는 “작가들의 반응이 대단히 좋다. 작가가 가장 신경 쓰고 애정이 가는 대상이 바로 독자인데 문학투어는 독자에게 자신의 문학 세계와 생활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 문학투어를 하고 싶어 하는 작가들이 많아 대중성, 작품성을 기준으로 선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6년째 접어든 문학투어는 최근 독자 참여 행사들이 부쩍 늘어났다.

이 상임이사는 “이번 투어는 활자매체에 익숙한 문학을 음악이나 미술, 혹은 여행과 접목해 독자에게 문학을 널리 알리자는 뜻에서 출발했다. 여행에서 ‘독자 참여’부분이 늘어날수록 반응이 컸다. 정호승 시인의 투어에서 ‘사과따기 체험’ 도종환 시인의 문학 투어에서 문학 콘서트를 병행해 큰 호응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함께하는 문학행사로 문학이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는 반응도 많다. 성석제 작가의 상주 여행에서 만난 송판심 (46) 씨는 “문학 행사를 통해 학창시절 꿈에 다시 도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학창시절 중학교 국어 선생님과 시인을 꿈꾸었지만, 은행원으로 20년을 근무했다. 2006년 직장을 그만두고 현재 직장인 교육업체를 운영하며 주말마다 문학 여행 등 문학행사를 찾는다. 그는 “교육업체를 운영하면서도 시로 등단하는 날을 꿈꾸고 있다. 문인들과 함께 여러 행사를 찾는 것은 창작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는다. 작가와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작품 배경지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시상을 떠올리는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문학 행사장에서 만난 중고등학생들은 “책에서 본 선생님들을 직접 만나보게 되어 신기하다”, “집에 가서 책을 다시 읽어 보겠다”며 관심을 보였다.

이런 문학 행사들과 작가들의 문학적 배경이 만나면 문화관광사업의 아이템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이외수 작가의 화천의 ‘감성마을’은 강원도의 관광 상품이 됐고, 현재 박범신 작가의 생가인 두화마을 등에서는 관광 마을을 조성하려는 계획이 진행중이다. 캐나다에서 빨강머리 앤의 푸른 색 지붕 집을 보기 위해 수십만의 관광객이 오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문학과 문학을 배경으로 한 행사가 문화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잠재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