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史의 대부 '사진 촬영 멀고도 먼 길' 展중국 연행사 노정따라 최초의 사진과의 만남을 재연

“사진에도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어요. 사진 속 인물이나 배경에 모두 시간의 흐름과 세월의 흔적이 진하게 녹아있으니까요. 여태까지 저는 우리나라 역사에 담긴 사실들을 근거로 한국 고유의 사진사(史)를 연구해왔습니다.

하지만 <사진 촬영 멀고도 먼 길> 전람회는 사진의 역사를 통해 한국의 역사를 새로이 조명해보게 된 첫번째 시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국내 사진 역사를 논하기 위해서는 이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사진사(史)의 대부라고 불리는 최인진(67) 선생이다. 최인진 선생은 전직 사진 기자 출신으로 사진 작가에 사진 역사 연구가까지 다양한 명함을 가지고 있다.

그가 이번에는 18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한양을 출발해 중국 북경으로 향하는 동지사 수행원들의 여정을 되짚었다. 지난달 21일부터 경기 양평 ‘갤러리瓦WA’에 마련된 <사진 촬영 멀고도 먼 길> 전은 동지사 수행원으로 1863년 중국 북경에서 사진을 촬영했다고 알려진 이항억의 <연행초록(燕行秒錄)>을 바탕으로 최초의 사진과의 만남을 재연한 것이다.

연행사의 노정을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최인진 선생은 사진의 역사뿐만 아니라 잊혀졌던 우리나라의 역사와 더불어 새로운 역사적 사실까지도 발견하는 수확을 얻는다.

“실제로 이번 전시는 사신들이 이동한 여정을 따라가면서 사진의 발자취를 조명하고자 한 전시입니다. 역사책을 바탕으로 한 여정에서 우연하게 새로운 여정 길도 찾게 됐고 또 역사학자들이 찾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도 발견하게 된 거죠. 우리 사신들이 북경에서 숙소로 이용했던 사역해동관 옛터를 북경시공안국이나 북경캐피털 호텔이 있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답사에서 천안문 광장 바로 옆, 옛 미국공사관 자리였음을 재확인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 접촉은 1863년 중국 북경으로 파견된 연행사 일행들에 의해서 였다고 설명하는 최인진 선생은 이어 자신과 사진과의 인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원래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는데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국어사회학을 공부하려고 했어요. 그러던 중 사진에 빠지게 됐고, 사진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진 찍는 일을 업으로 하게 된 거죠. 사진을 찍으면서도 저는 사진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이 열정이 지금의 ‘사진사연구소’로까지 이어진 거예요.”

최인진 선생은 1978년 광화문에 한국 사진의 역사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고자 하는 취지로 ‘한국사진사연구소’를 개설한다. 당시만해도 재정적인 뒷받침 없이는 사진을 연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 였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사(史)에 대한 열의 하나로 연구소를 만든 최인진 선생은 80년대 초반에는 ‘사진사 연구’라는 개간지까지 창간한다.

“오로지 한국 사진의 역사 정립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사정이 어려웠는데 연구소에 조그만 암실도 마련해 사진 작업을 해나갔죠. 당시 기자 일만으로도 눈 코 뜰새 없이 바빴던 저는 연구소 운영에 사진 작가까지 세가지 일을 병행하려다 보니 힘에 부치 더라고요. 어려운 사정에 연구원을 둘 생각은 고사하고 가까스로 연구소를 운영했습니다. ‘사진사 연구’ 개간지가 어려움 속에서 핀 꽃이라고 할까요. 오늘날까지도 사진사(史) 연구에 중요한 밑바탕이 돼주고 있습니다.”

올해로 개관 30주년을 맞는 연구소는 현재 명지대학교 부설기관으로 옮겨져 계속해서 한국 사진사 연구의 중심 추 역할을 다하고 있다.

“광화문에 있을 때는 연구소에 찾는 분들이 많았어요. 사진계 아지트이자 사랑방처럼 오가곤 하셨죠. 특히 3월 13일은 1884년에 지운영 선생이 고종 황제를 찍은 날이어서 저희들끼리 사진의 날로 정해 자축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어요. 김승곤(전 순천대 석좌교수/사진이론가) 선생 부부도 그렇고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사진작가협회 백영기 사무국장도 많이 후원해주셨던 게 생각이 납니다.”

그밖에 한국사진사연구소는 1998년에 ‘사진영상의 해’ 행사를 주최하며 <한국사진역사전>이라는 대규모 전시를 개최했다.

“1,300점의 작품들을 예술의 전당 3층 전관에 전시했었죠. 카메라 오브스쿠라 시대 작품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사진의 전체 역사를 아우르는 전시였습니다. 아쉬운 게 있다면 너무 많은 작품들을 한꺼번에 소개한 진수성찬 같은 전시 여서 보시는 분들이 소화를 시키지 못했다고 해요. 관람객들이 어떻게 봐야 할지 또 무엇을 봐야 할지 부담을 느꼈던 거죠. 너무 큰 전시였고, 욕심을 부린 전시였습니다.”

<한국사진역사전>을 개최한 지 10년, 한국사진사연구소를 설립한 지 30년째가 되는 올해도 최인진 선생은 계속해서 사진의 역사를 향한 열정을 피워나가고 있다. 연구소에서 수집한 자료들과 기증 받은 자료들을 가지고 최초의 한국사진사박물관 건립을 준비 중이다.

“사실 박물관은 사진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참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박물관에서 사진이 새로 살아날 수 있죠. 어떤 방법으로 살아나느냐 하는 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은 훌륭한 사진가들의 사진들도 박물관에서는 죽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박물관을 통해 어떻게 사진을 살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계획하고 있는 사진 박물관은 단순히 전시나 소장만을 하는 곳이 아니라 역사성을 띠는 공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역사박물관이 완성돼 자리를 잡기까지는 적어도 1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말하는 최인진 선생은 박물관을 통해 진귀한 사진 자료들이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또 어떤 공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살아 숨쉬는 사진의 역사를 이어나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전시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인물 사진들만을 한 자리에 모아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얼굴 역사를 펼쳐보이고 싶습니다. 직접 발로 뛰어 인물 사진들을 발굴하고 모든 작품들로만 전시를 열고 싶어요. <한국사진역사전> 다음으로 큰 전시가 되지 않을까요. 결국 대규모 <인물사진역사전>인 셈이죠.”

그림이나 다른 장르에 비해 역사가 오래지 않은 사진이 지금부터라도 토대와 기반을 마련해 충분한 역사성을 지닌 장르로 거듭나고 또 발전해야 한다는 최인진 선생에게서 사진계의 미래가 밝게 느껴졌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