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호두까기 인형'처럼 레퍼토리화… 연말 공연 정착 희망

조선시대 풍속화의 양대산맥이 잇따라 대중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먼저 소설, 드라마, 영화, 뮤지컬까지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는 신윤복 신드롬은 올해 문화가를 장악했다고 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에 뒤질세라 김홍도가 무대에서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서당 풍경을 그린 풍속화로 유명한 김홍도의 작품이 국내 최초로 창작무용극으로 옮겨진 것이다. 지난 5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이뤄진 이 공연은 <옛 그림 속 춤과 음악>(Family Concert ‘Dance and Music in the Old Painting’)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며 궁중 그림에 담겨진 장면들도 함께 무대로 옮겼다.

하지만 이번 공연이 최근 불고 있는 신윤복 신드롬의 시류에 편승한 산물은 아니다. <옛 그림 속 춤과 음악>의 기획을 한 국립국악원 기획홍보팀의 박옥진 팀장은 1년 전 이맘 때 2008년도 공연 계획을 짜며 이미 이러한 공연의 틀을 구상했었다고 말한다.

“반 고흐 미술전을 보러갔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못보고 돌아온 적도 있어요. 그런데 왜 우리 전통그림에는 왜 이리도 관심이 없을까 생각하다 그림에 춤과 음악을 더해 총체극으로 만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궁중 기록화와 김홍도의 풍속화를 미디어 아트로 담는다

크게 2부로 구성된 공연은 다양한 춤과 음악, 그리고 현대예술의 테크놀로지까지 가미해 전통공연이 가지고 있던 지루한 이미지를 벗겨냈다.

1부에서는 먼저 궁중 기록화를 바탕으로 나라의 잔치나 귀빈을 맞이할 때 추었던 처용무, 포구락, 선유락, 취타 · 길군악 등의 화려한 춤과 음악들이 선을 보였다.

사극을 통해 익숙해진 처용을 소재로 한 처용무는 청, 홍, 황, 백, 흑색의 옷을 입은 다섯 명의 무용수가 중앙을 포함한 네 방향에서 춤을 추며 잡귀를 물리치는 상징적인 춤을 선보였다. 포구락은 화동정재예술단 어린이 단원 10명이 출연해 동기 정재무(대궐 안의 잔치에서 춤과 노래로 하는 연희 중 어린이 공연)를 재현했다.

2부에는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 부분이 담겼다. 서당에서 글 읽는 소리를 재현한 성독 <동몽선습>과 함께, 김홍도의 풍속화를 바탕으로 과거 서당의 책거리 풍습을 네 가지 장으로 구성한 창작 무용극 <오늘은 책거리 하는 날>이 공연의 정점을 이룬다.

잔치춤, 학동들의 책거리 춤, 훈장의 책거리 춤, 축원의 춤이 각 장의 주를 이뤄 스승에 대한 존경과 감사, 훈훈한 정 등의 우리의 옛 책거리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조선시대의 소박하지만 정감있는 서당 풍경은 학교와 학원에 익숙한 현재를 사는 아이들에게 색다른 경험이 된다.

공연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전통문화를 관통하는 현대적 감각이다.

‘국악’과 ‘민화’와 같은 전통문화는 아쉽게도 여전히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그래서 첨단 영상기법을 활용해 기존 전통 공연의 이미지를 탈피하는 실험도 이번 공연을 통해 함께 이루어졌다. ‘광화문 아트 쇼’, ‘백남준 특별전’ 등 미디어 퍼포먼스로 명성을 쌓은 김형수 연세대학교 교수의 미디어 아트는 이날 공연이 단지 전통의 복원과 답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전통문화의 등장임을 환기시켰다.

박옥진 국악원 기획팀장은 미디어 아트의 차용은 시대환경을 감안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화려한 공연 퍼포먼스를 위해서는 전통문화에 대한 아날로그적 인식에 머물러 있는 관객들의 눈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통미술의 무대화에 디지로그적 감성을 적용함으로써 새로운 공연 콘텐츠를 창출한다는 복안인 셈이다.

4- '선유락'
5- 김홍도의 '서당'

■ 우리 문화 속 '다 빈치 코드' 발견해 완성도 높일 터

박옥진 팀장은 이번 공연을 기점으로 서양 공연상품들이 장악하고 있는 연말 공연시장에 전통공연으로 출사표를 던진다는 생각이다.

“해마다 연말이면 서양의 대형 뮤지컬이나 발레들이 정기적으로 공연하고 있고, 또 그만큼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급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많은 문화콘텐츠가 담겨 있는 우리 전통문화에도 ‘다 빈치 코드’는 있거든요. 이런 점들을 공연으로 부각시켜 연말마다 정기공연을 올린다는 바람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 같은 계획이 구체화되기까지는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우선 김홍도 등 민화, 풍속화의 대중적 코드 개발 문제가 있다. 지금의 신윤복 혹은 사극 신드롬이 식었을 때도 여전히 전통문화 콘텐츠가 그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관객층의 기호 파악과 전통문화에의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는 한계가 있다.

또 이번 공연의 경우 시기적으로 연말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시기에 진행되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이는 아직 전통문화 공연 콘텐츠에 대한 내부적 인식도 확신을 갖지 못한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공연의 호응도 조사와 함께 적극적인 의견 수렴과 내부적 고민의 시간을 통해 해마다 더 높은 수준의 공연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전통공연 그 자체로 그칠 것이 아니라 숨겨져 있는 코드들을 문화적으로 새롭게 발굴해내는 시도도 중요하다. 이번 <옛 그림 속 춤과 음악>에서는 불교회화인 ‘감로탱화’에 담겨 있는 남사당 놀이 그림을 남사당 놀이패의 판굿으로 옮긴 시도는 그래서 문화콘텐츠로서도 유의미하다.

박옥진 팀장은 내년에는 이 공연을 더욱 완성도있게 발전시켜서 해마다 <호두까기 인형>처럼 정례화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날짜도 연말에 가깝게 늦추고, 기간도 단발성이 아니라 더 연장될 계획이다. 어쩌면 몇 년 후에는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과 국립국악원의 <꼭두각시 인형>이 100m 거리에서 동시에 공연을 벌이는 현장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