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마술'위한 넓은 공간 필요, 3곳에서 동시 진행 새트렌드 눈길

'빛의 작가' '빛의 예술사'로도 불리는 세계적인 거장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요즘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작품들을 감상하려면 세 군데를 가봐야만 한다. 오룸갤러리-토탈미술관-쉼박물관 등 3곳. 한 작가의 작품들을 이들 장소에 나눠 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갤러리-미술관-박물관이 함께 작품들을 전시하는 '공간 연합 전시'가 미술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한 명의 작가가 하나의 주제로 자신의 작품들을 여러 공간에서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는 특수성 때문. 미술 전시의 3대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갤러리와 미술관, 박물관 등이 함께 '공간을 합쳤다'는 점에서 특히 눈길을 끈다.

사실 해외는 물론, 국내 전시회에서 갤러리나 미술관 등이 서로 '보조를 맞추는' 모습은 반드시 낯선 풍경만은 아니다. 갤러리들이 함께 모여 하나의 주제로 공동 전시 이벤트를 갖거나 갤러리와 미술관이 공동으로 펼치는 전시회가 더러 진행돼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처럼 갤러리-미술관-박물관 3자가 함께 한 경우는 무척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 받는다.

오룸 갤러리가 유치, 기획한 터렐 전시회가 3곳의 장소에 나눠 열리는 가장 큰 이유는 '짐작대로' 넓은 공간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일정 공간을 확보하고 그 안에 여러 장비들을 비치함으로써 빛을 이용한 연출과 나아가 관객의 반응까지 이끌어내는 그의 작품들은 설치 작품으로 분류된다.

실제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복합 미술 공간인 오룸갤러리는 일반 갤러리로서 꽤 널찍한 대형 공간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터렐의 '대형(?)' 작품 몇 개를 수용하는 것만으로도 꽉 채워졌다. 때문에 미술관과 박물관의 공간도 함께 활용하게 된 것.

'공간 속에서 빛이 어떻게 작용하고 관객의 눈이 이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시(詩)적인 설치작품으로 보여준다'는 평에서처럼 터렐의 작품들은 관람객들에게 그리 간단치(?) 않다. 잠깐 보고 스쳐 지나??쉬운 여느 작품들과 달리 작품마다 관람객들의 발길을 오랜 시간 붙들어 놓기 일쑤.

토탈 미술관에 전시된 그의 첫 작품 경우 '어둠을 헤집고' 좁은 통로를 지나쳐 최소 5분 여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리고 관람객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즈음에야 비로소 앞 벽면에 비쳐지는 희미한 4각형 모양의 불빛을 확인하는 것이 포인트.

쉼박물관에 설치된 스카이 스페이스

전후좌우 사방은 물론 천장과 바닥까지도 일체화돼 작용하는 그의 '빛의 마술'은 작품마다 개성을 발휘한다. 눈앞에 펼쳐진 커다란 벽면의 가장 자리 틈새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의 향연, 벽면에 네모꼴로 파여진 조그만 공간에서 흘러나오는 TV 브라운관의 작동 조명 등…. 작가 터렐은 희미한 그 조명만을 보고서도 그것이 어떤 프로그램인지조차 구분해 낼 줄 안다고 한다.

특히 그의 초기작에 속하는 홀로그램 작품들은 한편 이해가 쉽다. 벽에 걸린 검은 색 판넬 안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의 문양들은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을 달리한다. 어떤 홀로그램은 판넬 안쪽으로 숨어들고 또 다른 것들은 바깥쪽으로 빛이 튀어 나온다.

터렐의 이번 서울 전시회는 40여년에 걸친 그의 전 작품 회고전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각별하다. 터렐은 이번 전시회에 전시된 작품들을 그대로 2011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같은 주제의 회고전을 개최할 예정. 서울의 관람객들은 이 보다 3년여 앞서 '예술적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처럼 규모와 비중이 결코 작지 않지만 터렐의 서울 전시회는 김수경 오룸갤러리 회장과 작가 제임스 터렐의 '예술적 공감'이 크게 작용한 덕분에 이뤄졌다. 제임스 터렐은 자신의 작품을 경험하고 그 감동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어하는 김수경회장에게 스스로도 감동받아 이뤄진 'Heart to Heart 전시회'라고 강조한다.

한국전을 유치한 김수경 회장 또한 "터렐의 작품은 단 5분간의 만남을 통해서도 몇시간 동안의 스파를 하고 나온 것 이상의 휴식과 정화 작용을 하게 한다"며 "개인적으로 느낀 특별한 감동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말한다. 김 회장의 이 같은 취지를 십분 이해한 미술관과 박물관도 흔쾌히 장소 제공에 나섰다는 후문.

원래 터렐 전시회는 12월18일까지가 시한. 하지만 관람객들의 성원에 오룸 갤러리(02-518-6861)는 1월말까지, 쉼박물관(02-396-9277)은 1월5일까지 연장 전시한다. 김 회장은 "예술과 문화가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누구나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차원에서 터렐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