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위원회, 심포지엄·세미나 통해 700여 단어 선정 편찬

분단 이후 남북한 문학 용어를 통합 설명한 문학사전이 최초로 발간된다.

아시아출판사에서 펴낸 ‘100년의 문학 용어 사전’이 그 주인공. 학계에서 북한문학 용어를 설명한 사전이 비평가용으로 발간된 적은 있지만 남한과 북한의 문학을 통합 설명한 사전 발간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예술위원회가 지난 2006년부터 작업한 이 사전은 900 페이지 내외의 두께로 700 여 개의 문학 용어를 설명하고 있다.

■ 남북한 문학 이렇게 달라

사전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기획해 2006년 4월부터 3년간 연구한 결과다. 한국 근대 문학 100년을 기념해 문학 현장의 용어의 표준을 삼고, 근대 이후 우리 문학계를 쉽게 설명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사전에 싣는 용어의 사용 범위는 한국이란 지역적 범위에서 ‘한국어권’으로 넓혔다. 북한 문학과 해외 한국어 문학도 용어에 포함시키게 됐다.

가나다순으로 문학 이론과 문학 현장에서 쓰이는 말을 정리한 이 사전은 남북한 문학 용어를 동시에 담았다는 점에서 기존 문학 사전과 차별화된다. 사전은 남한에서만 쓰이는 말과 북한에서만 쓰이는 말, 같은 용어라도 남북이 어떻게 다르게 쓰고 있는지 등을 수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의 ‘말 다듬기 사업’은 1966년 5월 김일성 교시에 의해 문화어가 제정된 후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실시한 우리말 다듬기 사업이다. 사전에서 ‘이 사업은 정무원 산하인 국어 사전위원회에서 주관하였는데 사회과학원 산하 18개 분과위원회에서 전개하였다’고 설명한다. 이전 발간됐던 비평용 문학 용어 사전에는 등장하지 않는 개념이다.

한편 ‘매절’은 원고를 출판사 등에 팔아넘기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로 ‘일정한 원고료를 받고 저작재산권을 상대방에게 완전히 넘겨주는 것’이다. 남한의 자본주의 현실을 보여주는 용어로 사회주의 북한에서는 당연히 통용되지 않는 단어다.

‘모더니즘’은 남북한 문인이 모두 쓰는 용어이지만, 그 뜻이 다르다. 남한에서는 ‘현대적 감각을 중시하는 예술사조’의 의미지만, 북한에서는 ‘현대 부르주아 퇴폐주의 문학예술 사조’라 일컫는다. 이 밖에 ‘리얼리즘’ ‘민족문학’ ‘담시’등 포괄적 개념의 용어는 4~5페이지 이상 긴 설명이 덧붙여졌다.

책임 편집위원인 김형수 작가는 “기존 북한 문학 용어 사전이 있었지만, 남북한 문학 용어를 비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문학용어사전을 다 수집했고 북한 예술연구가인 전영선 씨에게 감수를 받았다”며 과정과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통일문학사전이라고 하지만, 북한 작가와 문단의 교류 없이, 남한 작가의 관점에서 용어를 맞추고 있다. 국립국어원의 ‘겨레말 큰 사전’ 작업 이후에나 가능할 듯하다”고 덧붙였다.

■ 문창과 1학년이 대상

기존 문학 사전이 기존 서구 문학 용어를 번역, 번안하거나, 서구 문예이론을 소개하는데 머물렀다면 새 사전은 근현대사 과정에서 한국의 자생적 문학 용어를 소개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근대문학을 선보인 이후 지난 100년 동안 문학 양식과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국내 문학 용어에서 사용상의 혼란이 빚어지거나 번역 단어와 번안 단어 사이의 의미가 모호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 왔다. 예를 들어 ‘순수문학’과 서양의 ‘순문학’, 우리의 ‘담시’와 서양의 ‘이야기 시’는 그 어원이 같다고 해도 전혀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우리 예술 활동을 통해 생산된 미학적 개념들을 정돈, 관리, 전수할 필요가 제기되고, 관련 종사자와 학습자에게 용어 사용의 혼란을 피할 수 있는 개념상의 표준이 요구됐다. 남북의 왕래와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남북해외를 포괄할 필요성도 재기됐다”고 사전의 특징을 설명했다.

한국문단에서 출현한 용어를 찾기 위해서 편집위원회는 근대이후 발간된 문예지를 다 찾아 단어를 점검했다. 심포지엄과 세미나를 거쳐 모두 700여개 단어를 선정했다.

문학사전 독자를 ‘석박사 수준의 전문가’에서 낮춰 ‘문예창작과 1학년’에 맞췄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전 문학사전은 비평을 공부하는 학습 용어 사전의 성격이 강한데 반해, 새 사전은 문단에 진입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백일장에 참석한 학생들과 대학 문예창작과 학생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읽히는 사전’이 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김형수 책임편집위원은 “설문조사 결과를 보니, 문학 사전을 가장 많이 봐야할 문창과 학생들은 사전에 대한 기대치가 없었다. 사전의 도움 없이 창작을 공부해 온 셈”이라며 “새 사전은 연구자용이 아니라 문학 현장에 접근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고 개념을 익힐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 3년간 작업

사전 편찬 작업은 2006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화예술위원회(당시 문예진흥원)에서는남북한 문화예술 용어가 난립된 상태에서 개념상의 표준을 만들자는 취지로 문화 사전 편찬을 논의했고, 제일 먼저 문학 용어 사전을 편찬키로 했다.

당시 출판사 창비에서 주관하는 ‘만해문학상’을 북한 작가 홍석중이 수상하게 되고 북한의 여러 문학작품의 판권 계약이 성사되는 등 남북 문학의 교류가 물고를 트던 시기였다.

염무웅 6.15민족문학인협회 회장과 이상규 국립국어원장이 고문을 맡았고 편찬위원에는 김형수(시인, 소설가) 김이구(창작과비평사 이사), 박상률(극작가, 아동문학가), 방민호(서울대 교수, 문학평론가), 홍기돈(가톨릭대 교수, 문학평론가)가 선정됐다. 연구와 집필 작업은 일제하 용어, 근현대 용어, 문학논쟁 용어, 현대 용어, 북한문학 용어 등 5개 파트로 나눠 진행했고, 박수연, 고인환, 정은경, 오창은, 정도상 등 젊은 평론가들이 이 과정에 참여했다.

김정헌 전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은 “이 사전이 내외의 모범으로 공연예술, 시각예술, 전통예술, 다원예술 용어 사전에도 이어질 것을 바란다”고 밝혔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