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지 동물 신명 회화틀 넘어 신세계로문신예술 고양하며 작가로 거듭나, 미술·음악 융합미학 추구

“앞으로 여유가 생기면 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내 그림을….”

지난해 말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KOAS 특별전 ‘화가의 아내전(11월29일~12월4일)에 모처럼 작품을 선보인 화가 최성숙(숙명여대 문신미술관 관장ㆍ62)은 어느 때보다 그림을 향한 ‘열정’을 보였다.

그동안 최성숙은 ‘화가의 아내전’이 말해주듯 남편인 세계적 조각가 문신(1923~95)을 뒷바라지하느라 좀처럼 자신의 역량을 펼칠 기회가 적었다. 문신이 살아생전에는 물론 사후에도 문신미술관의 시립화, 숙명여대 문신미술관 개관, 10주기, 독일 바덴바덴 초대전, 문신미술연구소 개소 등 문신예술을 둘러싼 급격한 흐름속에 줄곧 시간의 울타리에 갇혀 지냈다.

사실 최성숙은 젊은 시절 장래가 촉망되는 미술계 유망주였다. 경기여고, 서울대 미대를 나와 운보 김기창, 일랑 이종상에게 사사받고 심산 노수현, 남정 박노수 등의 미술지도, 일중 김충현, 여초 김응현 등에게 서예지도를 받는 등 당대 내로라 하는 대가들로부터 예술을 연마하였다.

그리고 대학원(서울대) 재학중이던 1968년 ‘5ㆍ16 민족신인예술상 동양화 부문 수석상’을 받는 등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다. 1986년 한국화 100년전에는 미술계를 대표하는 유명작가 85인에 포함돼 초대전을 갖기도 했다.

그런데 1978년 파리에서 운명처럼 문신을 만나면서 최성숙의 미술 열정은 안으로 응축되었다. 문신의 예술세계를 위해 자신의 작업을 한 켠으로 미뤄둔 것.

그런 중에도 1978~1994년 사이 마음 졸인 10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러나 문신이 타계(1995년)한 이후에는 좀처럼 붓을 들지 못했다. 2000년이 되어서야 둥지로 돌아가는 삶을 그리워하면서 캔버스 앞에 다시 섰다.

시간의 울타리 속에서 새벽별 하나에 꿈을 싣는 자신의 세계에 대한 열망을 비로소 쏟아내기 시작한 것.

“오랜 세월 동안 나를 옥죄었던 갖가지 현상들이 정리가 되면서 사랑이 들려오고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십이지(十二支) 동물들이 악기를 타고 천상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선율이 가슴에 밀려오고, 커다란 숲속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쥐의 요정이 저절로 그려지고 검정 피아노에 용이 노래를 하고 도도하게 플룻을 부는 묘령의 뱀의 아가씨가 나타났어요. 그런 동물의 정겨운 모습이 화폭에 담겨지기 시작하면서 새벽별 하나의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그러한 꿈은 2003년 금호갤러리 초대 <최성숙 음악그림전>을 통해 현실이 됐다. 이 전시에서 최성숙은 바이올린ㆍ첼로ㆍ피아노ㆍ클라리넷의 주자로 사람 대신 용ㆍ뱀ㆍ닭ㆍ쥐 같은 십이지 동물들을 등장시켰다.

우리 민족의 ‘상징동물(symbol animal)’을 작가의 대리 주체로 내세운 것. 그리고 2005년 제13회 작품전 <새벽별 하나에 비친 세계>에 이어 오는 12월 26일부터 인사동 공화랑에서 열리는 제14회 작품전 <신의 요정-카프리치오>를 통해 작가의 꿈의 완결성에 다가간다.

“‘십이지 상징동물’을 신의 요정으로 등장시켜 카프리치오 제전을 벌이는 신명난 한마당 잔치를 고심하면서 미술 속에서 클래식 음악연주라는 혼성회화 추구란 융합의 미학을 위해 <신의 요정 – 카프리치오>를 창작하기 시작했어요.”

카프리치오(capriccio)는 자유충동의 표정을 일컫는 말로 회화에서는 자유분방한 서정(lyric)을 뜻한다. 최성숙의 이번 전시는 십이지 동물들을 가장한 신의 요정들을 불러들여 카프리치오의 무대를 열겠다는 것으로 이들이 벌이는 신명의 장면을 그림으로 형상화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또한 액자 전체를 회화영역으로 확장한 것이나 건강한 예술문화풍토를 위해 캔버스 등에 지문을 삽입한 것도 주목할만하다.

정목일 평론가는 “작가는 한국미의 추구와 탐구에 있어서 전통적인 구조나 형식을 깨뜨리고 자유로움의 활력을 불어넣는다”며 “관념이나 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대상이 가진 생명 자체의 색체와 감성을 찾아내 미의 본질, 영혼을 보여준다”고 평한다.

김복영 미술평론가(전 홍익대 교수)는 최성숙의 작품들이 전통 한국화를 뛰어넘어 서양화에서 사용하는 액자와 캔버스를 접속한 2~3차원을 넘나드는 화면에다 아크릴릭과 철선을 구사한 것을 주목하면서

“카프리치오를 카오스에서 건져 캔버스 안에 복속시키려는 의지야말로 최성숙의 예술세계를 더 빛내주는 요인”이라고 말한다. 작가에게서 격식의 파괴는 곧 신의 요정을 불러들이기 위한 수순의 하나이지만, 그 다음의 안식을 위한 절제의 몸짓이야 말로 보다 아름다운 메아리를 관객에게 선사하는 원천일 수 있다는 메시지도 전한다. 최성숙 작품전의 진수는 내년 1월 12일까지 만날 수 있다. (02)735-9938

1- 한국미술의 거장인 문신과 운보 김기창이 1986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한국화 100년’전에서 만나 대화를 하고 있다. 가운데는 문신 부인인 최성숙 숙명여대 문신미술관 관장. 최성숙은 운보에게 한국화를 사사했다.
2- 용신의 노래 Acrylic on Canvas, 60x68cm
3- 황금말 Acrylic on Canvas, 60x52.5cm
4- 새해의 아침 Acrylic on Canvas, 55.3x46.7cm
5- 외출 Acrylic on Canvas, 52.5x60cm
1- 한국미술의 거장인 문신과 운보 김기창이 1986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한국화 100년'전에서 만나 대화를 하고 있다. 가운데는 문신 부인인 최성숙 숙명여대 문신미술관 관장. 최성숙은 운보에게 한국화를 사사했다.
2- 용신의 노래 Acrylic on Canvas, 60x68cm
3- 황금말 Acrylic on Canvas, 60x52.5cm
4- 새해의 아침 Acrylic on Canvas, 55.3x46.7cm
5- 외출 Acrylic on Canvas, 52.5x60cm

■ 문신예술 학술로 뿌리내리다
'문신예술의 신화·융합미학' 평론집
첫 친필원고 책으로 나와


거장 조각가 문신의 예술이 평론집과 친필 원고 등을 통해 학술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제1회 문신저술상을 수상한 중견 미술사가 김영호 중앙대 교수는 각 장르의 경계를 넘어 융합미학의 새로운 장을 개척하고 있는 문신예술의 신화를 주제를 한 역저를 출간한다.

오는 26일 선보일 <문신예술의 신화 – 융합미학>이 그것. 이 책은 명작 감상에서부터 종합예술로 변주해 가는 문신예술을 융합미학의 차원에서 다각적으로 고찰한 게 특징이다.

2007년 김 교수가 문신학술심포지엄에서 조각과 음악의 융합이란 주제의 논문을 발표한 이래 1년여에 걸쳐 종합예술로 확산하여 가는 문신예술을 다층적으로 심도있게 연구한 저서로 미술사학과 예술 연구분야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그간 베일에 가려있던 문신의 육필원고가 책으로 출간, 문신의 인생철학과 작업과정 등이 전면 공개됨으로써 문신예술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문신 육필원고 중 첫 번째로 발간되는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만 평가 된다> 저술은 특히 1970년 발카레스의 작업현장에서 ‘태양의 인간’으로 세계적인 조각가로 부상되는 전 과정이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아울러 1970년대 세계화단의 흐름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도 상당하다. 또한 화단에서 설(說)로만 떠들던 비화들이 육필원고를 통해 공개됨으로써 적지않은 파장도 예상된다.

1만여 페이지에 이르는 문신 육필원고는 향후 연속적으로 출간돼 문신예술에 대한 획기적인 기반구축과 함께 한국 예술사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문신 평론집과 육필원고는 12월 26일 인사동 공화랑에서 열리는 문신저술 출판기념회를 통해 공개된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