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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음악가의 재발견, 2009년 부활한 4人의 작곡가
퍼셀·헨델·하이든·멘델스존 탄생·서거 기념 재조명




이인선 기자 kelly@hk.co.kr

엠마 커크비와 런던 바로크(위)
에스토니아 필하모닉 체임버 콰이어(아래)




2009년은 퍼셀 탄생 350주기, 헨델 서거 250주기, 하이든 서거 200주기, 멘델스존 탄생 200주기를 맞는 해다.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음악가, 지휘자, 연주자들의 서거 혹은 탄생 주기는 이제 클래식계에서 빠질 수 없는 마케팅 기법이 되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의미가 변질되기 보다는 다시금 그들의 삶과 작품을 재조명하고 그 축제를 즐기는데 무게 중심이 실리고 있다. 이 축제의 분위기를 제대로 즐기려면 그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는 필수.

이번 기회를 통해 가깝게는 200년, 멀게는 350년 전에 유럽에서 살다간 네 명의 위대한 작곡가들의 삶과 대표작을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와 가까운 시대부터 역순으로 만나본다.

■ 여행을 즐겼던,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9~1847)

독일 라이프치히에 있는 성 토마스 교회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두 명의 음악가 얼굴이 그려져 있다.

바로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올해 200주기를 맞은 멘델스존이다. 라이프치히를 대표하는 음악가인 그들은 동시에 각별한 관계로도 얽혀 있는데, 잊혀져가던 바흐를 다시금 세상에 알린 이가 바로 멘델스존이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연습곡에서 연주곡으로 격상시키는데 기여했다면 멘델스존은 먼지에 쌓여 있던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바흐 사후 처음으로 연주하며 그를 ‘음악의 아버지’의 자리로 되돌려놓는 과업을 달성했다.

세련되고 낭만적인 음악의 작곡가이자 지휘자, 교육자, 그리고 누구보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멘델스존. 명문가에서 태어나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곱게 자란 때문인지, 그의 음악에선 그늘이 보이지 않는다. 이따금씩 작품의 깊이감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대신 그에게선 세상을 향한 밝고 자신감 있는 시선이 느껴진다.

15년간 작곡해온 49개의 피아노 소품 모음집 <무언가>와 하이네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의 날개 위에>, ‘결혼행진곡’이 속한 <한여름 밤의 꿈>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 하지만 그의 작품 세계가 집약된 장르는 교향곡이었다. 그가 남긴 5곡의 교향곡에는 여행을 즐겼던 그의 취미를 ‘스코틀랜드’, ‘이탈리아’ 등의 표제를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 걸작이 아닌 작품이 없는,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

77년 인생동안 하이든은 100곡이 넘는 교향곡을 남겼다. 그가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다. 그가 최초로 교향곡을 작곡한 해가 1759년인 것을 감안하면 일 년에 최소한 두 작품 정도 작업한 셈이다.

그 사이 74곡의 현악4중주곡을 비롯해 미사곡, 오라토리오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의 음악을 남긴 것을 보면 얼마나 예술에 헌신적인 사람이었나를 짐작케 한다. 더 놀라운 것은 ‘걸작’이라고 부르지 못할 작품이 없을 정도로 한결같이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또한 4악장이라는 교향곡의 양식을 정립하고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그 뒤를 이어 교향곡의 절정을 이뤄낸 점이나, 음악평론가 알프레드 아인슈타인(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친척)이 ‘하이든의 현악 4중주곡은 그의 생애뿐 아니라 음악사적으로도 뛰어난 업적’이라는 평을 남겼을 정도로 현악 4중주에도 하이든의 위업이 서려있다.

현악4중주, <고별> <놀람> <기적> <군대> <교장선생님> 등의 표제로 듣는 재미가 배가되는 교향곡과 함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와 <사계>도 여전히 무대 위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레퍼토리이다.

1- 멘델스존
2- 헨델
3- 하이든
4- 헨리 퍼셀


■ 바로크 시대의 코즈모폴리탄,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

바흐와 같은 해에 태어나 ‘음악의 어머니’로 불리게 된 작곡가 헨델. 어째서 그가 ‘어머니’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의사도 포기한 병환을 이겨낸 ‘불굴의 의지’와 넓은 활동반경을 가진 ‘코즈모폴리탄’의 삶을 살다간 음악가였다.

독일에서 태어나 성년 이후 영국에서 활동했던 그는 41세에 아예 영국에 정착했다. 활달하고 자유로운 의식을 가졌던 그는 여러 나라의 양식을 받아들여 다양한 색채의 음악으로 표출해냈다.

주로 교회음악에 주력했던 바흐와 달리 극장음악에 힘을 쏟았던 헨델은 이탈리아 유학경험을 기반으로 40여곡의 오페라를 작곡하고 직접 가극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극장경영 실패로 반신불수가 되었던 그는 기적적으로 회복한 후, 오라토리오라는 양식을 써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한번 작곡을 시작하면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는 그는 354페이지나 되는 메시아의 총보를 불과 24일에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음악회에도 적극적이었던 헨델은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도 한 자선음악회에서 <메시아>를 지휘하고 있었다.

1759년 4월 6일 코벤트가든 로얄 오페라하우스에서 <메시아>를 지휘하다가 쓰러져 병상에 누었는데, 일주일 뒤인 성 금요일 밤에 세상을 떴다. 이름까지 영어이름으로 고쳐 부를 정도로 영국을 좋아했던 그는 생전 소원대로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묻혔다.

■ 영국 음악계의 별, 헨리 퍼셀(Henry Purcell, 1659~1695)

헨델이 그리도 사랑했던 영국은 정작 유럽 음악계에서 오랜 시간동안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다.

비록 서른여섯의 짧은 생을 살다갔지만, 퍼셀의 등장으로 영국의 음악계는 잠시라도 빛을 발할 수 있었다. 궁정작곡가이자 왕실예배당 오르가니스트였던 그는 다수의 교회음악과 기악곡을 남겼다.

무엇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양식을 통합한 자유분방한 양식으로 바로크 음악의 스타일을 완성해갔다. <디도와 아네아스> <아서왕> <인도의 여왕>과 같은 오페라와 연극에 쓰이는 ‘부수음악’으로 이름을 알렸다. 요즘도 자주 연주되는 부수음악 <요정의 여왕>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에서 쓰였던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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