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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 미술', 갤러리 일상속으로
길거리·지하철역·쇼핑매장·모델하우스 이용… 전시문화 확대로 대중과 소통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

1- 일원동에 위치한 삼성 래미안 갤러리는 시민들의 친숙한 전시공간으로 갤러리 공간의 일상화를 추구하고 있다. 사진은 삼성 래미안 갤러리의 외부 윈도우갤러리다.
2- 진선 윈도우 갤러리에서 박민규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늦은 시간까지 윈도우 갤러리의 조명은 꺼지지 않는다. / 갤러리 진선 제공
3- 래미안 갤러리




미술품 전시장의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굳이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더라도 오고 가는 길거리나 지하철역에서, 또 일상적인 쇼핑 매장이나 모델하우스에서도 쉽게 미술 작품을 접할 수 있다.

미술 애호가들은 물론 전시회라고 하면 거리감을 먼저 느끼고 화랑 입구에 들어서는 것조차 어색해 하는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작가들도 반색을 한다. 자신들의 작품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짐에 따라 활동에 탄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역은 사람들의 이동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최근 들어 분주하고 삭막하던 지하철역 안에서 문화의 향기가 퍼져 나오고 있다. 특히 역사 내 창문이나 벽, 기둥 등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공간에 설치된 미술 작품들이 오가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이른바 ‘한뼘 갤러리’라고 하는 지하철역 내 갤러리가 대표적이다. 경기도미술관에서 2007년부터 진행해온 지하철역 갤러리 프로젝트는 ‘대중과 함께 살아 숨쉬는 미술’을 모토로 일상 공간을 특별한 시점으로 시각화한다.

최초의 한뼘 갤러리는 경기도미술관과 가장 근접한 지하철 4호선 공단역에 자리를 잡았고 뒤이어 중앙역과 안산역에 차례로 갤러리가 만들어졌다.

경기도미술관 김홍희 관장은 “미술관이나 갤러리 등 전문 문화공간이 아닌 다중집합장소인 지하철역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함으로써 미술 애호가의 저변이 불특정 다수의 일반인들에게까지 확장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며 “한뼘 갤러리는 관람객과 지역사회와의 거리감을 좁히는 데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한뼘 갤러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또한 제각각이다. 중앙역에서 오는 9월까지 열리는 이윤정 작가의 <지하철 역 동물원> 테마전을 관람한 한 시민은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예전에는 휑했던 지하철역 안이 재미난 미술 작품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서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며 “미술에는 문외한인데다 전시회를 보러 다닐 여유도 없었는데 한뼘 갤러리를 통해 편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중앙역 근처의 한 고등학교 학생은 “공부를 하다가 밤 늦게 귀가할 때 지하철 안이 무서운 적이 많았는데 곳곳에 전시된 미술품 덕분에 사람들도 많아진 것 같고 늦은 시간에도 안심이 된다”며 “시간이 되면 더 많은 작품을 보러 직접 미술관에 찾아가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경기도미술관의 한뼘 갤러리뿐 아니라 서울 지하철 명동, 시청, 홍대역 등에서도 간헐적으로 다양한 작품 전시가 이어지면서 지하철 역사는 일상 속의 색다른 전시공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지하철역 갤러리와 더불어 최근 화랑가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은 ‘윈도우 갤러리’ 역시 미술이나 전시회가 가진 거리감을 크게 줄이며 대중 친화적으로 미술 저변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어두운 밤이면 그 진가를 발휘하는 ‘갤러리 진선’의 윈도우 갤러리는 2005년 갤러리 개관과 더불어 선보인 전시 시스템이다. 갤러리 건물의 한쪽 벽을 유리로 제작해 작품을 전시하고 갤러리 밖에서도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내부 전시장이 문을 닫은 후에도 윈도우의 조명은 꺼지지 않고 작품을 밝히며 관람객들의 밤을 즐겁게 해준다.

갤러리 진선의 허선 대표는 “윈도우 갤러리에서는 매달 윈도우전을 개최해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전시를 지원하고 있다”며 “전시 관람객은 물론 삼청동을 찾는 여러 사람들이 윈도우 갤러리를 보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문의해오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허 대표는 또 “미술에 관심도 없고 그림을 처음 접했다는 한 고객이 윈도우 갤러리 전시를 보고 작품을 처음으로 구매한 경우가 있었다”며 “내부 전시장 작품이었다면 구입이 어려웠을 텐데 윈도우 갤러리를 통해 편하게 작품을 관람했고 구매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는 고객의 얘기에 윈도우 갤러리의 위력을 실감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진선 윈도우 갤러리는 처음 선을 보인 후 인근 주민과 오가는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삼청동 일대에서 꽤나 이름이 나 있다. 지난 2005년 겨울에는 윈도우 갤러리를 통해 전시된 김현화 작가의 ‘모피 위에 누운 미소년의 누드화’가 삼청동을 찾은 일반인들에게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4- 래미안 갤러리
5- 중앙역 한뼘 갤러리에서는 오는 6월까지 이윤정 작가의 <지하철역 안 동물원> 테마전이 열린다. / 경기도미술관 제공
6- 임수식 작가의 작품을 전시 중인 갤러리 진선의 윈도우 갤러리 전경 모습. / 갤러리 진선 제공
7- 힐스테이트 갤러리는 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위한 열린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 힐스테이트 갤러리 제공
8- 안산역 한뼘 갤러리에 소개되고 있는 이정민 작가의 작품. / 경기도미술관 제공


갤러리 진선의 윈도우전 23기 출신으로 현재 <2008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전>에 참여하고 있는 이진준 작가는 “젊은 작가들은 잦은 작품 전시를 통해 미술계뿐 아니라 애호가들에게 이름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쉽고 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윈도우 갤러리는 매우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갤러리 진선의 시도에서 비롯된 윈도우 갤러리 바람은 삼청동을 벗어나 인사동, 강남 일대 화랑가에까지 불고 있다. 이 지역의 대다수 갤러리들이 건물 전면의 쇼윈도를 독립된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며 적극적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 공간인 갤러리와 일상생활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가운데 주택건설업계에서 시도하고 나선 ‘모델하우스 갤러리’도 눈길을 끌고 있다. 모델하우스 갤러리는 장소의 특성상 인테리어를 타깃으로 한 작품 전시가 활발하다.

래미안 아파트 모델하우스 내부에 위치한 ‘래미안 갤러리’는 2005년 개관 당시부터 한젬마 작가의 아트 디렉팅으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메인 전시는 가족 단위 관람객들을 위한 작품 위주로 진행되지만 윈도우 갤러리처럼 꾸민 갤러리 외부에서는 블로그에서 활동하는 아마추어 주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래미안 갤러리의 임은미 매니저는 “모델하우스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인 만큼 갤러리를 통해 인근 지역 주민들의 문화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며 “주거에 관심이 많은 주부 고객들을 비롯해 어린아이들과 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래미안 갤러리를 이용한다”고 밝혔다.

모델하우스 갤러리는 대관을 비롯한 전시에 드는 비용을 업체측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형편이 넉넉지 않은 작가들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덜어주기도 한다. 결국 업체와 작가들이 서로 상생하는 전시 형태인 셈이다.

1월말까지 래미안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갖는 이재윤 작가는 “래미안이라는 브랜드 이미지와 작품의 이미지가 맞아떨어져 전시 작가로 초대됐다”며 “초대전이어서 전시나 대관 비용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고 상업 화랑과는 달리 모델하우스 갤러리에는 작품을 아는 사람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찾기 때문에 작가로서 홍보 효과도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술 경기가 어려운 만큼 작가들도 작업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기업과의 연계가 필요하다”며 “건축과 인테리어, 회화는 기업과의 공동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모델하우스 갤러리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래미안 갤러리 외에도 힐스테이트 갤러리, 자이 갤러리 등 유명 아파트 브랜드를 보유한 다른 주택업체들의 모델하우스 갤러리도 서서히 입지를 굳히면서 ‘생활 속의 미술’을 구현해 나가는 교두보가 되고 있다.

이처럼 일상 속으로 성큼 다가선 새로운 형태의 전시 문화에 대해 미술계 안팎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중이 보다 쉽고 편하게 미술을 이해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작가들의 다양한 활동이 가능해지고, 나아가 일부 대형 화랑이나 경매사가 좌지우지하던 미술 시장의 주도권도 미술을 소비하는 대중의 손으로 옮겨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하계훈 미술평론가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술과 전시장, 대중의 수월한 소통이 부재했는데, 이제 전시 문화가 일상 속의 열린 공간, 다변화된 공간으로 뿌리내려감에 따라 일반 대중이 손쉽게 다가설 수 있는 친근한 미술 문화가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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