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표현주의 대표작가, 참신한 화풍과 실험적 작품 선보여

전·현직 국세청장 사이의 뇌물 의혹을 사고 있는 최욱경(1940-1985) 화백 작 ‘학동마을’이 두 청장 간 진실게임의 핵심으로 부각되면서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자연스레 최 화백의 예술세계가 재조명되는 양상이다.

최욱경 화백은 현대 추상미술 유파 가운데 추상표현주의를 처음으로 도입한 작가이면서 대표적인 여성 현대미술 화가로 이름이 높다. 1940년 서울에서 태어난 최 화백은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으며 김기창, 김흥수 등 유명화가를 사사했다. 1959년 서울예고, 1963년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미국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에서 수학했다.

최 화백은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 양식을 받아들였으며 1971년 잠시 귀국 한 뒤 서예와 민화 등을 공부하며 한국적 조형에 눈뜨면서 장판지와 골판지 등 새로운 재료를 시험하기도 했다.

1965년부터 1984년까지는 한국, 미국, 타이완, 노르웨이, 캐나다 등지에서 16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1792년 제 8회 파리비엔날레, 1981년 제 16회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출품하기도 했다.

최 화백은 영남대 미술대 교수, 덕성여대 미술대 부교수 등을 지냈으며 미국 애틀랜타 주립대학교와 위스콘신주립대 등에서 교수 및 강사로 활동했다. 재기 넘치는 교수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그는 1985년 45세의 나이로 음주상태에서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한 채 숨졌다.

그의 미술사적 위치는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작가로 정의할 수 있다.

추상미술이라는 그림형식 자체가 낯설었던 화단에서 그는 풍부한 색감과 환상적인 구도로 작품을 표현했다. 원색을 많이 썼으며 필치가 강해 감성적인 작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추상표현주의는 형태의 왜곡에 그치지 않고 형태를 완전히 해체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추상주의 미술과 차이가 있다.

최 화백과 덕성여대에서 함께 재직했던 김영라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최욱경은 당시 색채를 가장 화려하고 강렬하게 쓰는 화가 였다”며 “당시 추상미술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한국화단에서 특별한 역할을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서성록 미술평론가는 “최욱경은 나혜석 이후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로 볼 수 있다”며 “참신한 화풍을 들고와 실험적인 작품으로 한국화단의 계몽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화제가 된 ‘학동마을’은 이런 최욱경 그림의 전형이다. ‘학동마을’은 실사를 주제로 했지만 마을에서 느낀 분위기를 완전히 새로운 색채와 구도로 표현했으며 강렬한 붉은 색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이 그림을 두고 서성록 미술평론가는 “거친 붓놀림과 강한 필치로 인한 역동성이 느껴지는 작품”이라며 “원색과 자유분방한 구도가 최욱경 작품의 전형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욱경은 <풀밭위의 점심식사>(104ⅹ139cm) 등의 큰 작품을 주로 그렸으며 <학동마을>은 작은(38×45.5㎝) 크기의 소품이다.

염세주의, 비관주의 작가라는 기존의 평가에 대한 전문가 의견은 엇갈린다.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최 화백을 두고 “지나치게 자기 집중적인 그녀의 생활철학과 태도는 자기 이외의 외부세계와 좀처럼 화해롭지 못한데 이유가 있었다”며 “그의 작품세계는 비범하고 고독한 성격의 소산”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영라 교수는 “그는 원래 굉장히 힘있고 강렬한 대형화면을 그렸다”며 “서울에 오고 40대에 접어들면서 차분하고 성숙해진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오광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대행은 “<풀밭위의 점심식사>를 비롯한 그의 작품은 활달하고 환상적이며 색감이 풍부하다”며 “생의 즐거움을 노래한 작가”로 평가했다. 단색을 주로 쓰며 심각한 분위기를 내는 당시의 추상미술 분위를 탈피하는 활달하고 화려한 색감으로 대담한 구성을 했다는 것이다.

한 미술전문가는 “그는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작품세계마저 독특했다”며 “‘쏠림현상’이 심한 화단에서 작품 발표의 기회 등이 적었고, 화풍을 공유할 수 있는 화가가 적어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K옥션에 따르면 그의 1975년 작품 <풀밭 위의 점심식사>(104×139cm)는 2007년 8,000만원에 팔렸으며 <무제>(72×90cm)는 2005년 3,600만원에 거래됐다. <학동마을>은 (38×45.5㎝)은 추정가 2~3천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K옥션 관계자는 15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최욱경의 작품 <생의 환희>(140×177cm)가 지난 2006년 9,500만원에서 1억 2,000만원 선에 경매에 부쳐졌으나 유찰됐다고 밝혔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