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엔 머스크향, 모피엔 자스민향, 모직엔 스파이시 향이 안성맞춤

그와 헤어진 후 오래도록 나를 괴롭힌 것은 자상했던 미소도 아니고 노처녀로 늙어죽을 두려움도 아닌, 늦은 겨울 밤 그의 품에 안겨 가죽 재킷에 코를 묻고 맡았던 그 향기였다.

1-던힐 가죽 장갑
2-겐조 아무르
3-구찌 바이 구찌
4-나르시소 로드리게즈 포 힘



여름이 생동감 넘치는 확산의 계절이라면 겨울은 만물이 움츠러드는 고독한 계절이다. 꽝꽝 얼어 붙은 공기는 아무 것도 전달해주지 않아 서로의 체온과 체취를 느끼기 위해서는 아주 가깝게 다가서야 한다. 가까이서 맡는 겨울의 향기는 체취와 섞이는 바람에 더 매혹적이다.

사실 겨울은 향수를 사용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다. 매력적이지만 너무 강렬해 쓸 수 없었던 향수, 가벼운 여름 옷과 어울리지 않아 처박아 둔 섹시한 향수를 꺼낼 시점이다. 차가운 공기는 향수가 마구 퍼지는 것을 막아 웬만큼 강한 향수를 뿌리더라도 코를 찌르지 않기 때문이다.

건조한 공기 역시 향을 느끼는 감각을 한층 둔화시킨다. 그렇다고 겨울을 안 쓰던 향수를 대방출하는 기간으로만 보아서는 곤란하다. 진짜 현명하게 향수를 사용하는 방법은 지금 뿌리고 있는 향수가 당신의 코 뿐 아니라 입고 있는 옷까지 만족시키는지 살펴 보는 것이다.

가죽× 모피와 어울리는 향수는 따로 있다

향수에 대해 말하면서 엉뚱하게 옷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뭐냐고? 이는 겨울이 사랑하는 소재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옷장에서 잠들어 있던 부드러운 가죽 재킷을 꺼낼 때 나는 향기는 단숨에 겨울을 불러낼 정도로 강력하다. 부피감 있는 모피 목도리와 매끈한 캐시미어 코트도 마찬가지.

가죽이나 퍼에서 나는 특유의 향기를 애니멀 노트라고 부르는데, 겨울 소재에서 느껴지는 이 고유의 동물 향은 관능적이면서도 은근히 낯을 가리는 편이라 궁합이 잘 맞는 향과는 훌륭한 하모니를 만들어 내지만 반대의 경우 서로 밀어내 버리고 만다. 오늘 아침, 모피 코트나 가죽 재킷 또는 울 니트를 골랐는가? 그렇다면 이 향수들을 주목하라.

살 냄새 ‘폴폴’ 나는 머스크 MUSK

가죽 재킷을 걸친 당신을 그녀가 뒤에서 안았다고 생각해보자. 그때 당신에게서 풍기는 향이 시원한 아쿠아 향이었어도 그리 나쁘지 않겠지만 만약 그것이 머스크 향이었다면, 체취와 구별이 힘든 그 관능적인 향에 그녀는 당신이 약속 시간에 20분이나 늦었다는 사실 따윈 까맣게 잊어버릴 것이다. 머스크는 동물의 분비물에서 얻은 향이라 가죽, 퍼 등과 훌륭하게 어울릴 뿐 아니라 살 냄새 같은 친근함으로 편안하고 오래 가는 매력이 있다.

나르시소 로드리게즈 포 힘(for him)에는 가공되지 않은 천연 머스크 향이 들어가 있는데 이는 이성을 유혹하는 페로몬처럼 섹스 어필에 효과적이다. 여성용(for her)에도 마찬가지로 머스크 향이 풍부하게 들어가 있다. 겐조 아무르는 우디 머스키 향에 플로럴 향을 배합해 좀더 로맨틱하고 여성스러운 느낌. 구찌 바이 구찌는 은근한 섹시함을 표현하고 싶을 때 사용하면 좋다. 머스크 향에 꿀이 더해져 독특하면서도 따뜻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1-겐조 윈터 플라워
2-샤넬 No. 5
3-미스 디
4-아뇨나 밍크숄
5-로로피아나 캐시미어 케이프
6-샤넬 알뤼르 옴므 에디씨옹 블랑슈
7-씨케이원 유포리아 맨



우아한 그녀의 향기 쟈스민 JASMINE

애니멀 노트는 매력적이지만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 향수 입문자들의 경우 코를 막아 쥐기도 한다. 역시나 코에 익은 플로럴 향이 좋다면 쟈스민 향을 추천한다. 쟈스민은 일반적인 꽃 향기 중에서도 가장 애니멀 노트에 가깝다. 그만큼 중후하고 무거운 느낌이 들기 때문에 모피 코트를 걸친 중년 여성의 마지막 단장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샤넬 NO.5는 쟈스민 향의 고전으로, 끝은 달콤한 바닐라 향으로 마무리 돼 겨울 날씨의 차가움과도 잘 어울린다. 미스 디올도 쟈스민 계열. 젖은 떡갈나무 냄새인 시프레 향이 더해졌기 때문에 흔한 향에 싫증난 이라면 시도해볼 만 하다. 좀더 젊게 보이고 싶다면 로즈 향도 괜찮다. 겐조가 겨울을 겨냥해 내놓은 향수, 윈터 플라워는 장미 향과 그밖에 다른 플로럴 향들이 어우러져 누구에게나 잘 어울린다.

몸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진저 & 페퍼 GiNGER & PEPPER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 뚱뚱한 파카가 싫어 모직 코트를 입었다면 여기에 더해야 할 것은 훤히 드러난 목을 가려줄 머플러, 그리고 톡 쏘는 스파이시 계열의 향수다. 시나몬, 페퍼, 진저처럼 강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을 스파이시 노트라고 하는데 이들은 뿌리는 즉시 향을 느끼게 해줄 뿐 아니라 몸을 덥게 하는 효과가 있어 겨울에 제격이다.

샤넬의 남성 향수, 알뤼르 옴므 에디씨옹 블랑슈는 부드러운 머스크 향 속에 강렬한 진저 향과 화이트 페퍼 향을 가지고 있어, 따뜻하면서도 한편으로 남성적인 느낌이 난다.

씨케이원의 유포리아 맨 역시 진저와 페퍼를 칵테일 해 상쾌하지만 자극적이지 않다. 착한 남자보다는 강하고 세련된 남자라는 이미지를 원할 때 적합하다. 바닐라 노트는 스파이시 향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따뜻함을 준다. 씨케이원의 시크릿 옵세션은 묵직한 우디 향에 마다가스카르 바닐라 향이 조화돼 있는 훌륭한 겨울 향수다.

도움말: 조향사 정미순, 갈리마드퍼퓸 원장



황수현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