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속 영화관] 일민미술관 다큐멘터리 아카이브 정기상영회총7편의 '이반의 성' 다룬 작품들 미술전시 감상하듯 볼 수 있어

1-영화 'why not community'
2-영화 '동백꽃'


<서양골동양과자점 : 앤티크>, <미인도>, <쌍화점>…. 지난해 말부터 극장가를 지배하고 있는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성(性)'이다. 이전과 달라진 점은 더 이상 이성간의 성애사에만 집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 속 '새로운 연인'들은 생물학적 성차를 뛰어넘어 동성의, 양성의, 때로는 성적 정체성이 모호한 자의 '이상한' 사랑을 다양하게 그리고 있다.

물론 이들 영화들이 다루는 성에서 정치적 공정함까지 기대하기란 어렵다. 일반적이 아닌 '이반적' 성들은 여전히 어떤 일반 관객들에게는 단순한 흥미의 대상이며 일종의 스펙터클(구경거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랑이란 '젊고' '아름다운' 두 '남녀'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성 문화의 편식성을 해갈하기라도 하듯, 현실의 다양한 성을 만날 수 있는 장이 광화문 네거리에 마련돼 눈길을 끈다. 지난 3일부터 시작된 일민미술관의 다큐멘터리 아카이브 정기상영회는 실제로 현실에 존재하는, 젊지도 않고 그리 아름답지도 않은 남자와 여자들의 성을 다루고 있다. 대형극장에 걸리는 상업영화의 성은 꽃미남이라는 판타지가 낯섦을 상쇄해준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서 보여지는 이반의 성은 일반 관객에겐 낯설다. 심지어 무섭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 정기상영회가 선정한 작품들은 대체로 기발하고 발칙한 상상력으로 '낯선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관객을 친절하게 맞아준다. 그래서 상영회의 부제도 아예 'Sexuality + Identity = Imagination'이다.

이번 행사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총 일곱 편. 하루에 보기에는 다소 많은 편수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마음만 먹으면 네 시간 안에 모두 볼 수 있다. 93분 짜리 <동백꽃> 한 편을 제외하곤 8분에서 35분까지 단편 중심의 필름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영작 중 가장 짧은(8분) (2004)는 만화적 상상력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다. 등장인물은 마초의 상징인 카우보이와 턱시도 1, 2, 3. 여자가 아닌 남자에 관심을 보이는 카우보이에게 턱시도들은 남성성의 상징인 카우보이 모자를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호모 섹슈얼리티와 젠더에 관한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필름이다.

1-영화 '올드랭 사인'
2-영화 '올드랭 사인'
3-영화 '이반검열1'
4-영화 '탐폰설명서'


<올드랭 사인>(2007)은 동성 노인들의 애잔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그간 늙은 남녀의 재회는 종종 다루어져 왔지만 늙은 '남남'의 재회는 찾아보기 어려웠기에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젊은 시절 헤어진 두 사람이 우연히 공원에서 만나 허름한 모텔로 자리를 옮겨 러닝셔츠 차림으로 블루스를 추는 장면은 일견 추레해보인다.

하지만 이 화면에서 성별(sex)을 제외한다면 이들의 모습은 단지 늙은 연인의 재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영화는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라는 명제에 유독 섹슈얼리티의 잣대만 엄격히 들이대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생각해보게 한다.

성새론 감독의 <탐폰설명서>(2001)는 이미 여성주의 텍스트로 유명한 필름이다. '탐폰 콤마'라는 제품의 사용설명서를 영상으로 제작한 형식으로 세 가지 탐폰 사용 용도를 설명하고 있는 점이 이색적이다.

원래의 생리대로서의 용도뿐만 아니라 마스터베이션이나 레즈비언의 섹스 도구로서의 사용 방법을 강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늘 음지에 머물렀던 여성의 성적 욕망을 당당하게 주체적으로 밝히면서도 뮤지컬 형식을 차용해 키치적인 재미를 주는 감독의 역량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반검열1>(2005)은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부당함을 교육해야 할 학교가 오히려 동성애자에 대한 폭력이나 차별을 행하고 있는 현실을 꼬집고 있다. '학교'라는 사회는 동성애자들을 문제아나 정신병자로 취급하며 감시하고 벌점을 먹이는 '이반검열'을 한다.

카메라는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성적 정체성을 폭로당하고 억압받으며 심각한 인권 침해를 받고 있는 모습들을 담아낸다. 특히 그 카메라를 든 손이 10대 레즈비언들 자신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4년 전부터 이 행사의 프로그래머를 맡고 있는 김소혜 독립영화협회 코디네이터는 "성은 인간의 삶에 가장 밀접한 사안이지만 획일화된 성의식이 만연한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이번 테마를 정했다"고 이번 상영회의 의도를 밝혔다.

그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부정하도록 강요하는 사회에서 새로운 상상력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영화들을 위주로 프로그램을 짰다"며, 성 정체성이 한국사회에 맞닿는 부분에 대해 관객들이 한 번쯤 생각해주기를 주문했다.

이번 상영회는 일민미술관 1층 전시실에서 진행되고 있다.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프런트 데스크의 옆으로 자연스레 걸어들어가 반복 상영되는 모니터 앞에 자리를 잡고 관람하면 된다.

그래서 처음 이곳을 찾는 관람객은 영화 상영회라기보다는 비디오아트 전시장과 흡사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말하자면 이 공간은 미술관과 영화관의 중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다큐멘터리 아카이브의 최초 입안자인 김희령 기획실장은 "미술관에서 이루어지는 상영회이기 때문에 미술 전시를 감상하듯 스쳐 지나가며 볼 수 있는 것이 이 상영회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상영회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의미있는 다큐멘터리영화를 '스쳐 지나가듯'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기회다. 22일까지 진행되며 관람료는 무료다.



일민미술관 다큐멘터리 아카이브는…



일민미술관 4층에 자리잡은 다큐멘터리 전용 영상관. 2002년에 신설된 후, 200여 편의 국내외 주요 다큐멘터리와 100여 편의 비디오 아트를 소장, 관리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소장 작품 편수를 늘려가고 있다.

일반인들이 평소에 접하기 힘든 작품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상영기회가 제한된 비상업적 다큐멘터리 감독과 제작자들에게는 많은 사람들에게 작품을 알리는 기회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