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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광고박물관 탐방] 광고로 떠나는 역사여행 맛이 새로워요
근현대 광고 도입기부터 현재까지 희귀 자료 통해 시대 조명
한국 광고역사 벌써123년… 사회 변천 따라 광고도 진화 거듭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사진=임재범 기자



광고는 고백(告白)이다?

웬 생뚱맞은 소리냐고? 그럴 만도 하다. 제품이나 기업 이미지를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알리는 광고와 개인적인 소회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고백이 어찌 같은 뜻이겠는가.

하지만 19세기 후반 무렵만 하더라도 고백은 분명히 광고로 통했다. 한자 문화권인 한국, 중국, 일본 등 3국에서는 광고의 뜻으로 고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것. 언어의 변천이라는 속성을 감안하더라도 적이 뜨악한 셈이다.

어쨌든 1886년 한성주보(漢城週報)에는 한국 최초의 상업광고가 고백이라는 제목을 달고 실린 바 있다. 독일인 자본으로 만들어진 '세창양행'이라는 상사가 한성주보에 '덕상세창양행고백'을 게재한 것. 그 내용은 독일에서 수입된 각종 물품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한성주보는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漢城旬報ㆍ1883년 창간)의 후신 격으로 1886년 창간된 신문. 이전 한성순보가 열흘에 한번씩 발간된 데 비해 한성주보는 일주일에 한번씩 발행됐다. 요즘의 주간지인 셈. 특히 국한문(國漢文) 혼용의 한성주보는 때때로 한글 기사를 게재하는가 하면 사상 최초로 상업광고를 싣는 등 매우 진보적인 신문이었다.

이 같은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 땅에 광고가 등장한 지도 벌써 123년이나 지난 셈이다. 그렇다면 한 세기도 훨씬 전에 닻을 올린 한국의 광고는 어떤 단계를 거치며 발전해 왔을까.

광고는 숙명적으로 생명이 짧다. 항상 새로운 내용을 담아야 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거니와 당초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면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짧게는 몇 일에서 길게는 한두 달 동안 대중을 찾아가는 한 편의 광고에는 당대의 가치관, 라이프스타일, 시대상이 함축돼 있다. 그런 점에서 광고는 단순한 상업적 도구의 성격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승화된다.

1-광고박물관의 첫번째 코너인 '광고의 유래'관에서 관람객들이 서클비전 영상을 보고 있다.
2-1994. 프로스펙스. '정복당할 것인가 정복할 것인가'
3-1901. 전차광고
4-1938. 수송기기. 시보레 승용차
5-1957. 태평양, ABC크림, 최초컬러 잡지광고
6-우리나라 최초의 전면광고. 황성신문
7-1914. 담배광고
지난해 11월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 문을 연 한국광고박물관(이하 광고박물관)은 광고라는 하나의 테마로만 이뤄진 특별한 박물관이다. 나아가 이곳은 광고를 매개체로 하여 시대와 역사를 읽을 수 있는 '문화체험' 공간이기도 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각종 인쇄, 영상 자료를 통해 한국 광고 120년사를 시대별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광고로 보는 한국사회문화사' 코너다. 특히 1880년대 한국 광고 태동기에서부터 일제 강점기, 1950~60년대 근대화 초기에 이르는 '옛날옛적' 희귀 광고물들은 역사 교재로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한국 근대 광고는 개화기에 발아했다. 당시 광고들은 대부분 <독립신문>,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 신문에 게재됐으며, <소년> 같은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개화기 무렵 광고 중에는 서울 시내를 오가는 전차에 상품명을 표기한 사례도 있어 눈길을 끈다. 오늘날로 치면 버스 혹은 지하철 광고인 셈이다. 이 광고 제작 연도는 1901년이다.

또 고혹적인 표정과 포즈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여성의 그림을 도안으로 활용한 담배광고도 무척 이채롭다. 이 광고는 1914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신(新)문물 유입의 영향으로 전통적 여성관이 바뀌어가는 시대상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제 강점기 시절은 역설적이지만 근대 광고의 본격적인 발달기다. 일제가 3ㆍ1운동 이후 한국인의 들불 같은 저항을 무마하려 펼친 이른바 '문화정책'은 신문시장의 성장을 가져왔고, 이는 결과적으로 광고수주 증가로 이어졌다. 당시 신문들은 대부분 4면 체제였지만 광고가 늘어나면서 12면 체제로 증면하게 됐다.

그 시절 광고물 가운데 극장 광고나 자동차 광고도 눈에 확 띈다. 1928년 9월21일자로 발행된 단성사의 홍보주보(弘報週報)는 그 주의 개봉 영화를 세세히 안내하고 있다. 또 1938년 어느 미확인 매체에 대문짝만하게(요즘으로 치면 전면광고) 게재됐던 미국 GM사의 '시보레' 자동차 판촉 광고도 흥미로운 자료다. 이런 광고로 미뤄 식민지 시대에도 일부 계층은 영화관람을 즐기거나 자가용을 굴렸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개화기에는 거의 전적으로 글자로만 이뤄진 광고가 주류였다면, 일제 강점기에는 각종 도안과 그림 등 예술적 요소를 가미한 광고가 점차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광고시장뿐 아니라 광고의 형식미에서도 크게 성장한 시대였던 것이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지나 50년대 후반에 이르면 컬러인쇄 광고와 라디오 광고가 등장한다. 당시 가장 광고 물량이 많았던 품목은 식품과 의약품. 많은 국민들이 굶주리고 아팠던 시대적 환경이 배어난다.

박정희 군사정부의 강력한 산업화 정책 덕분에 경제가 급성장하던 60년대 후반에서 80년까지는 '한강의 기적'과 맞물려 국내 광고산업도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TV광고가 보편화되고 현대적 기법의 광고가 서서히 정착한 것도 이 무렵이다. 하지만 광고의 내용이나 형식으로 보면 여전히 유치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컬러TV가 등장한 81년은 국내 광고사에 한 획을 긋는 해다. 광고의 표현기법이 다양해지면서 TV가 라디오, 인쇄매체에 비해 광고채널로서 우위를 점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게다가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 등 국제적 이벤트의 후광을 톡톡히 보면서 80년대는 한국 광고의 초(超)고도성장기로 기록됐다. 물론 지속적인 경제성장 덕택에 일정한 구매력을 갖춘 중산층이 두터워졌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문민정부가 탄생한 90년대 초반 이후 한국 광고를 이끈 핵심 트렌드는 '표현의 자유' 신장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권위적이고 경직된 사회 분위기기가 크게 완화되면서 참신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담은 광고물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정복당할 것인가? 정복할 것인가?'라는 저 유명한 카피와 함께 정신대 여성의 이미지를 채택한 제품광고(1994년ㆍ프로스펙스), 남과 북의 어린이가 어깨동무를 하고 활짝 웃는 모습을 담은 기업광고(1998년ㆍ현대오일뱅크) 등의 사례는 광고인들의 머릿속에도 완연한 해빙기가 왔음을 알린 작품들이다.

요즘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광고 역시 21세기적 최신 트렌드를 적극 반영하고 있다. 디자인이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거나 건강 및 웰빙을 추구하는 크리에이티브(Creativeㆍ광고창작) 경향이 그런 사례다.

광고는 시대와의 창조적 소통이자 교감이다. 광고라는 창(窓)을 통해 읽는 역사는 그래서 참 풍성하고 세련되게 다가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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