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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미술이야기] 영화<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와 베르메르
정물화 같은 인물
빛을 순화시킨 눈부심 플라토닉 사랑 떠올려





정준모(미술비평, 문화정책)



미술은 언어이다. 하지만 너무나 개인적이고 독창적인 까닭에 우리는 그들의 언어의 독해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미술작품이 지닌 뜻을 헤아리고 그 작품을 통해 영화를 이끌어 가는 계기로 삼거나 영화의 반전을 암시하는 장치로 사용해 왔다. 이렇게 영화 속에 미술은 영화의 또 다른 은유나 비유로 활용되면서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왔다. 영화 속의 미술이야기를 통해 영화와 미술의 통섭의 세계를 만나보았으면 한다.

6. <아멜리에>(2001)/르누아르(Pierre A Renoir) 그림

7. <믈랑루즈>(2001)/로트렉(Henri de-Lautrec)

8. 만화영화 <플란더스의 개>(1975)/루벤스(Peter Paul Rubens) <십자가에 오르심, 내리심>

9. <모나리자 미소>(2003)/현대미술의 역사

10.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2004)/화가 베르메르(Jan Vermeer)

11. <열정과 냉정 사이>(2003)/피렌체화파 그림이야기

12. <올드보이>(2003)/ 앙소르(James Sydeny Ensor)

대학시절 '교양미술'이나 '미술의 이해' 같은 과목을 수강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곰브리치(Ernst H. J. Gombrich, 1909~2001)가 쓴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 1950)를 기억할 것이다. 그 곰브리치가 미술사상 렘브란트 다음으로 위대한 화가라고 지칭한 화가는 다름 아닌 바로크시대에 네덜란드의 델프트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얀 베르메르 반 델프트 (Jan Vermeer van Delft, 1623~75)이다.

그는 40여점에 불과한 작품을 남기지 않았던 과작의 작가로 의미심장한 주제나 종교적 소재를 다루지 않고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삶을 묘사한 단순한 주제를 다루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언제나 온화하고 빛으로 충만하며 신비로운 느낌까지 자아낸다. 게다가 화면의 정적을 유지하면서 빨강, 파랑, 노랑 등의 원색이 조화를 이루는 고요하고 그윽한 화면이 베르메르의 특징이다. 하지만 그가 세상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0여년이 지난 19세기경에 이르러서이다. 이런 때문에 베르메르에 대한 자료나 작가에 대한 연구가 매우 미흡해서 그의 인생과 작가로서의 삶 자체도 자신의 그림처럼 미묘하게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그의 신비로운 삶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 영화가 있다. 바로 피터 웨버(Peter Weber, 1968~ )가 감독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2003년 작>이다. 베르메르의 동명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트레이시 슈발리에(Tracy Chevalier)가 쓴 소설에 바탕을 둔 영화로 콜린 퍼스(Colin Firth, 1960~ )가 베르메르로 분하고 스칼렛 요한슨(Scarlett Johansson, 1984~ )이 그의 하녀 그리에트로 출연하는 이 영화는 신비로운 북유럽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의 분위기를 그대로 아니 그림 보다 더 신비롭게 만들어주면서 베르메르의 삶을 그려나간다.

1-영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2-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1666)
1665년 플랑드르지방의 델프트에 사는 화가 베르메르는 사고로 시력을 잃어 남의집살이를 해야 하는 16세의 소녀 그리에트를 하녀로 들인다. 그녀는 청소하려고 아틀리에에 들어 선 순간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형언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받는다. 물론 베르메르도 청순한 모습에 알 수 없는 신비함까지 보태져서 그녀에게 빠져든다. 이후 베르메르는 물감제조 방법을 가르쳐 하녀인 동시에 조수처럼 그녀와 일한다.

하지만 6명의 자녀를 둔 가장으로서 그리고 탐욕스러운 아내와 그림을 돈벌이 수단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 장모는 베르메르의 이런 감정을 눈치 채고, 그를 감시한다. 여기에 베르메르의 패트런(후원자)인 라이벤까지 청순한 그리에트를 보고 탐욕스런 웃음을 지으며 베르메르에게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릴 것을 명한다. 그리에트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베르메르와 하녀라는 신분을 넘어서지 못하는 그리에트. 이 둘의 사랑은 애절하고 속절없이 시간만 보내며 애를 태우고 그러면 그럴수록 베르메르는 그의 오묘하고 청순가련한 모습에 빠져 들어가며 그들의 플라토닉한 사랑은 깊어만 간다.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1660-65, 유화 44.5X 39cm,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헤이그, 네덜란드)라는 그림을 보고 그 제작과정을 유추해서 쓴 소설과 영화는 그림이 갖는 신비로운 빛과 무언가 말을 거는 듯 관객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망울에 막 입을 열어 말을 건네려는 듯 한 소녀의 입술이 더해져서 더욱 고혹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베르메르는 화려하고 역동적인 루벤스나 렘브란트의 그림의 산란하는 빛과는 달리 실내풍경인 탓에 창문을 통해 한번 걸러진 빛이 일정하게 들어온다. 따라서 명암의 대비가 분명한 동시에 온화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며 생동감은 더욱 커진다.

1-영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2-우유 따르는 하녀 (1650)
3-장교와 웃는 소녀 (1657-1659)
그가 살았던 1600년대의 네덜란드는 벨기에가 독립해 나가면서 플랑드르 지방이 해체된 이후의 시기이다. 이 들은 뛰어난 항해술과 식민지 경영 그리고 상업의 발달로 인해 중세의 귀족이니 왕족 또는 성직자들의 주문에 의해 제작되던 그림은 이제 피렌체의 메디치와 같은 거대 권력을 가진 중세의 귀족과 왕족 중심의 주문방식이 아니라 부유해진 상인계급들을이 화가들의 패트론이 되기 시작하던 시기이다.

따라서 화랑이 처음 생겨나던 시기이기도 하다. 영화 속 라이벤도 이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다. 당시의 그림은 인생의 덧없음과 자신이 이룩한 부와 풍요로움, 그리고 그 풍요에 내재된 허영심과 낭비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것을 암시하는 그림들이 바니타스(Vanitas)류의 정물화로 많이 제작된 시기로 정물들을 세밀하게 그려내는 극세밀화가 크게 유행하였다. 물론 베르메르도 사실적인 필치로 대상을 분석하고 파악해서 그림으로 옮겨놓는 태도를 보여주지만 그의 작품의 큰 특징은 세밀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화면이 부드러움으로 넘쳐나는 불가사의하고 독특한 조화이다. 그의 실내 풍경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받아 부드럽지만 명확한 명암의 대비가 인물을 견고하게 만든다. 이렇게 바로크 시대를 살았던 베르메르는 빛을 통한 극적인 묘사라는 시대의 흐름을 따랐지만 한편으론 그 빛을 순화시켜 그윽한 눈부심으로 끌어갔다는 점에서 탁월한 화가이다.

그런데 이런 베르메르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이는 다름 아닌 미술사상 최고의 위작범으로 알려진 한 반 메헤렌(Han Van Meegeren, 1889∼1947)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치하에서 독일의 괴링에게 베르메르의 <간부(姦婦)>라는 작품을 팔아넘겼다. 전쟁이 끝나고 네덜란드의 보물을 나치에 팔았다는 이유로 법정에 섰다. 그는 죄를 면할 생각에 베르메르의 그림이라고 판 작품은 사실은 자신이 그린 위작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법정은 그가 거짓진술을 한다며 믿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법정에서 붓과 물감을 달라고 해서 재현을 해 보임으로서 위작임을 증명해서 그림위조부분만 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사망했다. 이런 그의 위작행위는 자신의 그림에 혹평을 한 미술 평론가 브레디우스 박사를 골탕 먹일 생각에서 네덜란드에서 가장 추앙받는 화가인 베르메르의 그림을 위조하기로 마음먹고 17세기에 제작된 그림을 사서 지운 다음 그 캔버스와 액자를 바탕으로 17세기에 제조된 믈감을 사용해서 아주 정교하게 베르메르 풍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다시 오븐에 굽는 등의 방법으로 300년의 시간을 보태 완벽한 위작을 제작했다. 이 작품이 바로 그의 첫 번째 위작인 <에마우스의 제자들>이었고 평론가는 그의 위작에 극찬을 아끼지 않음으로서 그의 복수는 성공하는 듯 했지만 결국 계속된 베르메르 위작 만들기는 결국 스스로에 의해 꼬리가 잡히고 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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