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아크릴등혼합 박방영, 동양화에 유리 구슬 정진용 인기한지에 푸른 토분 이용 나형민, 한국식 콜라주 정종미도 눈길

요즘 동양화는 예전과 사뭇 다르다. 전시장을 다 둘러본 후에도 소개된 작품들의 장르를 구분 짓기가 쉽지 않다. 한국의 전통 한지와 먹이 서양화의 주재료인 캔버스나 안료와 어울리고, 한 화폭 속에 동서의 기법이 혼재해있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전시에도 그러한 징표들이 뚜렷하다. 서울 종로구 빛 갤러리에서 동양적 정취가 가득 담긴 작품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박방영 작가는 동양화의 퓨전 바람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 작가다.

1-박방영 작가는 동양적 정취와 생명력 가득한 작품을 통해 동양화의 퓨전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3월 3일까지 빛 갤러리에서 갖는 전시 출작품 <즐거운 날>
2-금호미술관에서 3월 1일까지 전시를 여는 정종미 작가는 전통채색화와 한지의 물성을 이용한 한국식 콜라주 기법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 <황진이>
1-갤러리 도올에서 3월 1일까지 열리는 <멋진구조들>전시에서 정진용 작가는 강렬한 색조와 유리구슬 등의 혼합매체를 사용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 출품작‘Burning Gate NO1.’
2-한지에 푸른 채색과 토분을 이용해 현대적 도시풍경을 담아내는 나형민 작가는 산수화의 재발견을 시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갤러리쌈지에서 3월 1일까지 열리는 전시 출품작‘Standing on the border’
1-갤러리 도올에서 3월 1일까지 열리는 <멋진구조들>전시에서 정진용 작가는 강렬한 색조와 유리구슬 등의 혼합매체를 사용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 출품작'Burning Gate NO1.'
2-한지에 푸른 채색과 토분을 이용해 현대적 도시풍경을 담아내는 나형민 작가는 산수화의 재발견을 시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갤러리쌈지에서 3월 1일까지 열리는 전시 출품작'Standing on the border'
박 작가는 이력 자체도 퓨전이다. 그는 본래 서양화를 전공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 한학과 서법, 불교문화 등과 같은 동양문화에 매력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오리엔탈 감수성이 결국엔 그를 동양화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 같은 작가의 이력은 작품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대상과 여백이 본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자유롭게 흩날리는 꽃들과 흥겹게 춤추는 사람들의 어우러짐은 작품을 원시적이고 동양적인 생명의 공간으로 탈바꿈 시키고있다. 장지가 아닌 한지에 표현한 물결 같은 필선과 화려한 색감은 동양화의 화법을 재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빛 갤러리의 신정아 큐레이터는 "박 작가는 무거운 느낌이 강한 장지 작업 대신 한지를 사용해 경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느낌을 더하고 있다"며 "수묵과 함께 서양화 물감인 아크릴, 금분, 음분 까지 혼합해서 사용함으로써 동양화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양화의 터치가 느껴지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방영 작가와 더불어 동양화에 유리구슬이라는 소재를 더해 독특한 퓨전 동양화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정진용 작가역시 인기를 끌고 있다. 정 작가 작업의 중심은 동양화다. 여기에 다양한 혼합 재료들을 활용해 작품의 독창성을 높이고 있다. 먼저 한지에 이미지를 그리고 그 위에 강렬한 색조와 유리구슬로 도포하는 작업을 거쳐 실험적인 작품을 구성해 나간다. 한지에 먹이 스며드는 번짐 효과와 한지와 먹 사이에 나타나는 현상들을 자신만의 기법으로 완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오는 3월 1일까지 갤러리 도올에서 전시를 갖는 정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캔버스나 장지도 사용하지만 번지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한지를 주로 쓴다"며 "특히 유리구슬은 조명에 의해 반짝거리며 반사되는 연출이 가능해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더한다"고 전했다.

우연한 기회에 유리의 시각적 효과를 체험하게 됐다는 그는 초창기 미세한 유리 구슬들을 작품에 붙이는 것으로 시작해 크리스탈류의 유리들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본격화했다. 이처럼 화폭 속에 빛나는 소재들이 장엄한 아시아 건축물과 바로크와 고딕 건축 양식을 연상시키는 정진용 작가의 작품들은 성스러운 빛의 효과를 통해 강한 힘은 물론 특유의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한편 갤러리 쌈지에서는 나형민 작가가 라는 주제로 한지에 푸른 토분을 이용한 '산수화의 재발견'을 보여줄 예정이다.

그는 전통회화에서 산수화가 단순히 산수자연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이상향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과 같이 작품 속에 현대인들의 도시 풍경을 담아 그들의 유토피아적 열망을 그려내고 있다.

동양화를 전공한 나 작가역시 초기에는 수묵으로 층을 만들어 작품에 표현하는 점묵법의 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다 황량하고 고요한 도시 공간을 드러내기 위해 황토색의 느낌이 강한 흙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서양화의 물감인 아크릴을 혼합해 탁한 느낌뿐만 아니라 선명한 색감까지 더하고 있다. 작가는 흙과 안료를 섞어 이미지를 연출했지만 그것을 캔버스가 아닌 한지에 축적 시켰기 때문에 동양화의 느낌이 더욱 강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앞으로의 작업 계획을 밝히며 나 작가는 "산수화가 갖는 풍경의 매력을 더하기 위해 동서양의 재료와 기법 혼용을 적극 활용해 하나의 평면에서 입체적인 공간의 느낌까지 더할 수 있는 획기적인 시도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퓨전 산수화는 표현적인 부분은 물론 내포하고 있는 의식적인 면까지도 동서양이 서로 맞물려 있다"고 덧붙였다.

그밖에도 한지의 매력에 이끌려 10년에 걸쳐 전통 채색화 방식과 산수화 기법을 탐구해온 여성 작가 정종미는 금호미술관에서 여는 <역사 속의 종이 부인>전시를 통해 산수화의 새로운 해석과 한국식 콜라주 기법을 소개하고 있다.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의 초상화와 한지 풍경화를 주요 작품으로 선보여오던 그는 이번에 허난설헌, 논개, 명성황후, 신사임당, 유관순, 유화부인, 나혜석 등 역사 속 여성 11인을 주제로 한 작품을 공개했다. 작품의 바탕이 되는 색면에는 천연 안료나 석채, 염료와 같은 색료를 사용했고, 한지와 비단, 모시 등의 바탕재, 들기름이나 콩즙 등 재래식 재료를 두루 사용해 화면 위에 미묘하면서도 깊고 투명한 색들이 겹쳐 떠오르게 하는 구성 방식을 썼다. 이렇게 만들어진 바탕에 비로소 한지와 닥종이로 된 종이 부인들이 자리잡는 것이다.

정종미 작가는 자신의 작업 세계를 설명하며 "동양화 전공자로 전통 재료와 기법들을 연구·실험하는 과정에서 한지의 물성이 인내심과 포용력을 느끼게 했고, 무엇보다 이는 한국의 여성성과 닮아있었다"면서 "전통의 소재들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일이 작업의 관건이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전통 산수화와 고유의 채색화를 재현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동서양이 교감할 수 있는 현대적 감성으로 풀어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