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미술의 하모니] 보이는 음악, 들리는 그림 4 '칸딘스키와 스크리아빈'두예술가 공감각 체험 바탕 예술의 크로스오버 시도

일반적으로 음악은 귀로 듣고 그림은 눈으로 본다. 하지만 음악을 보고 그림을 들을 수는 없을까? 예술에선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비슷한 말을 하는 음악과 미술을 접하게 된다. 어? 이번엔 말을 한다고? 그렇다. 음악과 미술은 언어가 아닌 다른 표현의 수단으로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동시대를 산 서로 비슷한 메시지를 전한 화가와 작곡가를 찾아 그들이 그 시대를 살면서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얘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1-칸딘스키
2-스크리아빈
3-스크리아빈칼라스킴출처: K Marie stolba/ The Development of Western Music: A History Brown & Benchmark, Iowa, 1990
4-'Kandinsky's Blue Crest'
5-'최후의 심판'


소리를 들으면 색이 보이고 색을 보면 음악이 들린다면 어떤 기분일 지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렇게 두 가지의 감각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을 공감각이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공감각의 능력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이런 현상은 상상이 아닌 현실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 1944) 와 동시대를 산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스크리라빈(Alexandr Nikolayevich Skryabin, 1872-1915) 은 공감각을 경험했고 이를 바탕으로 예술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했다.

이 두 예술가는 공감각을 체험하면서 총체미술이라는 장르를 경험했고, 이를 모티브로 그들만의 예술 영역을 확장시켜 종합예술을 만들어나갔다.

칸딘스키와 스크리아빈은 모두 인상주의 아티스트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들의 초기 작품들은 인상파적 작풍성향을 띤다. 칸딘스키는 모네의 '짚더미'라는 그림을 보고 모든 그림이 형태를 뚜렷하게 나타내지 않아도 회화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크리아빈 역시 드뷔시의 음악에서 기존 화성학에서 벗어난 새로운 음악의 표현력에 깊은 영감을 받았다.

또한 칸딘스키와 스크리아빈 모두 바그너의 총체예술(Gesamtkunstwerk)에 깊은 공감을 하고 그들만의 총체예술을 실현했다. 특히 칸딘스키는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를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색을 보는 공감각을 처음으로 경험했다고 한다.

칸딘스키와 스크리아빈은 당시 유럽 사회를 지배했던 신비주의사상에서도 깊은 영향을 받았는데 신비주의란 자연의 본질을 인지해 신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최고의 경지에 이른다는 일종의 종교적인 성향을 띄고 있는 사상이다.

칸딘스키는 "예술은 정신적인 세계에 속한다"며 "모든 예술작품은 우주가 창조되듯이, 서로 다른 세계들이 충돌함으로써 작품이 생성된다. 예술작품이 탄생하는 것은 마치 세상이 최초로 형성되는 것과도 같다"라고 말했다. 미술이란 외적 형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내면과 감정을 들여다보고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한편 스크리아빈은 이 보다 더 나아가 음악을 통해 신의 경지에까지도 이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종합예술을 예술 장르의 통합 뿐만이 아니라, 종교와 철학을 아우르는 범주까지 작품 세계를 넓혔다.

음정에도 색이 있다, 스크리아빈

신비주의를 바탕으로 스크리아빈은 신비주의 화성 (Mystic Chord) 이라는 독창적인 화음을 만들었는데 이 화음은 '도-파#-시b-미-라-레'로 구성돼있다. 이는 도의 자연적 배열음(natural harmonic series) 중에서 여섯 음을 선택해 4도 관계로 재구성한 것이다.

스크리아빈은 이 화음을 그의 관현악 곡인 '불의 시'에서 도입하면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우주를 표현하고 있다. 신비주의 화성은 자연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신비주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이러한 화성을 사용함으로써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비주의 화성과 더불어 스크리아빈은 이 곡에서 각각의 음정에 색깔을 지정하고 의미를 부여함해 음악과 미술을 통합시키는 종합예술을 시도했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악보에 'luce(빛)'라는 파트를 만들어 색깔을 위한 작곡을 시도했다. 무대조명 색깔을 음악의 흐름에 따라 변하도록 작곡한 것이다.

스크리아빈은 '도'는 빨간색을 나타내고 인간의 의지와 격렬함을 표현한다고 했으며 '레'는 노란색이며 환희를, '미'는 하늘색이며 꿈을, '파#'은 보라색이며 창의력을 나타낸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사람에게는 모두 영혼의 색깔이 있다고 믿었는데 그 사람 주위에 아우라(aura)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음악을 미술에 도입한 칸딘스키

스크리아빈의 이러한 색깔과 음악에 대한 주장과 '불의 시'를 통한 예술적 표현은 칸딘스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칸딘스키는 기본적으로 음악이 미술보다 더 고귀한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음악의 개념을 미술에 접목시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는 작품 제목을 음악의 용어를 따 컴포지션(Composition)이라고 지었다. 그림에 음악의 추상적 개념을 담은 셈이다.

칸딘스키는 "색채는 건반이고 그것을 보는 눈은 하모니다. 영혼은 많은 줄을 가진 피아노이며 예술가는 영혼을 울리기 위해 그것을 연주하는 손의 역할을 한다" 라고 말하며 미술과 음악을 직접적으로 비교했다. 또한 음악에 리듬과 화음이 존재하듯 그림에서도 색과 형태를 리드미컬하고 균형 있게 사용하여 조화로운 자연과 인간의 내적 감정을 끌어내는데 초점을 두었다.

칸딘스키는 스크리아빈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색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믿었고, 악기마다 고유의 색이 있다고 믿었다. 트럼펫은 빨간색을 나타내며 빨간색은 목표지향적이며 반짝이고 열정적임을 의미한다고 했으며 플루트는 밝은 파랑을, 첼로는 어두운 파랑, 그리고 오르간은 제일 어두운 파란색을 나타내며 파란색은 평화와 깊은 내면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렇듯 색을 통한 감정의 표현을 시도한 칸딘스키의 추상미술은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발전하게 된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의 화실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보게 되는데, 바로 자신이 그린 그림을 거꾸로 돌려놓은 것이었다. 순간 그는 그림이 뒤집혀 형태를 알아볼 수는 없어도 색과 구성만으로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음악과 마찬가지로 그림도 구체적인 형태를 그리지 않고도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때부터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기 위한 추상 미술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칸딘스키의 '최후의 심판'은 도저히 최후의 심판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감을 잡을 수 없는 그림이다. 기존의 최후의 심판에서 그려지는 신의 모습이나 최후를 맞이하며 공포에 떠는 인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알 수 없는 모습을 한 색깔이 있을 뿐이다.

바로 칸딘스키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최후의 심판의 구체적인 형상이 아닌 최후의 심판에서 느껴지는 감정이었던 것이다.

스크리아빈 역시 기존의 작곡형태와 화성학에서 벗어나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그의 후기 작품인 '불꽃을 향하여'는 세상의 종말을 예견하듯 격정적인 음악이다.

조용하게 시작된 피아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격동적으로 변하며 몰아치듯 연주된다. 피아노 연주는 점점 클라이맥스로 향할수록 긴장감이 더해지고 이 곡의 제목처럼 불꽃을 향해 온 몸을 던지듯 끝이 난다. 이 곡은 칸딘스키의 최후의 심판처럼 세상의 종말을 표현한 음악이다.

이 곡에 쓰여진 파격적인 화성적 시도는 칸딘스키와 긴밀한 관계를 가졌던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인 쇤베르크의 음열 기법을 예감하게 한다.

1-Scriabin_color keyboard_svg


공감각과 신비주의의 예술가

칸딘스키와 스크리아빈, 이 둘은 공감각이라는 비범함과 신비주의라는 공통된 사상을 바탕으로 비슷한 색을 가진 미술과 음악을 완성시켰다.

두 예술가는 음악과 미술이 가진 고정관념을 깨고 종합예술을 추구했다. 두 장르 사이의 경계선을 무너뜨린 것이다. 또한 자연의 내면, 감정을 들여다보고 내면의 소리를 밖으로 표출 시켜 예술에 진정한 자유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음악 칼럼니스트 violinoella@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