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체·소재·기발한 상상력·형식 파괴등 다양한 시도칙릿 소설·청소년 문학 각광 '젊은 시'논쟁 현재진행형

"새로운 문학 코드는 달라진 시대상을 드러낸다."

"아니다, 독자와 소통을 거부한 자폐적 언어다."

"결국 그들만의 리그 아닌가."

지금, 당신이 '전문가'에게 2000년대 한국문학에 대해 물어본다면 대개 이 세 가지 대답 중 하나를 들을 테다. 현재 출판가 불황 속에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한국문학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복잡하다.

한국문학은 종종 '위기'가 운운되다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원 소스 멀티유즈' 콘텐츠 제작의 화수분이 되기도 한다. 칙릿 소설로 20~30대 여성독자가 부각되는 가하면, 지난 해부터는 청소년 문학이 각광받고 있다. 서점에서 시집 코너는 사라졌지만, 문인들의 '젊은 시'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2000년대 한국문학을 읽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대세는 감각

"현재, 한국문학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감각'입니다."

문학평론가 오창은 씨는 한 공개 세미나에서 한국문학 특징을 '감각'이라고 진단했다. 소설과 시, 비평에 이르기까지 2000년대 한국문학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특징이 감각이란 사실에 이견을 갖는 전문가는 없을 듯하다.

최근 몇 년 간 주요 문학상 수상작과 문예지에서 회자되는 작품들을 살펴보면, 모티프를 얻는 순간부터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 문체에 이르기까지 감각이 대세란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감각'이란 게 대체 뭘까?

문학의 대표 장르인 소설을 살펴보자. 우선 요즘 작가들은 자신의 삶과 사회적 현실 등 존재하는 사실을 작품에서 재현하지 않는다. '상징적 상상'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소설적 현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해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인 '무중력 증후군'은 달이 6개로 늘어난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박민규 작가의 '카스테라'에서 주인공은 텔레비전을 보다가 관심을 갖는 사람을 냉장고에 집어넣는다. 정치가를 집어넣고, 운동선수를 집어넣는다. 이렇게 냉장고로 들어간 사람들은 한 덩어리의 '카스테라'가 된다.

이전 한국 근ㆍ현대 소설이 정체성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지식인의 고뇌를 그렸다면, 최근의 소설들은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 삶의 문제를 가벼운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 셈이다.

이런 특징에 대해 문학평론가 손정수 씨는 '변형되고 생성되는 최근 한국소설의 문법들'에서 "한국 소설의 새로운 화자는 모험의 항해를 떠났다 되돌아오는 오디세우스보다 옷감을 짰다 풀었다를 반복하는 페넬로페 쪽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평가한 적 있다.

문체의 경우도 '감각'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시도가 눈에 띄게 늘었다. 오창은 평론가는 "문체에서도 이전에 없었던 감각, 나만의 개성으로 보이는 문체를 시도하는 경향이 크다"고 말했다.

평론가들은 종종 '혼종적 글쓰기'라고 말한다. 문학평론가 이광호 씨는 '2000년대 문학의 새로운 모험'에서 혼종적 글쓰기를 2000년대 문학의 특징 중 하나로 꼽았다.

우선 대중문화 매체에서 얻는 상상력과 하위 장르의 문법 차용이 잦다. 예를 들어 김경욱의 '장국영이 죽었다고?'를 비롯한 여러 단편 소설에서는 영화적 문법 차용이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이기호의 소설집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는 성경 말투를 빌려 쓰거나 랩의 리듬을 살린 단문체로 작품을 밀고 나간다. 이밖에도 단편 소설에서 독백을 말하는 화자, 주인공, 전지적 시점의 작가가 혼합된 양상의 문체가 속속 선보이고 있다.

이처럼 키워드인 '감각'을 이해하고 한국문학 코드를 읽게 되면 좀 더 재미있는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작가들의 새로운 문체와 소재, 기발한 상상력, 극단적으로 서사가 파괴된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도가 '감각'이란 대세 아래 진행되고 있다.

이 특징은 시에도 영향을 주었다. 바로 '미래파' 혹은 '뉴 웨이브'로 불린 젊은 문인들의 시다. 2000년대 들어 새롭게 떠오른 젊은 시인들의 시는 탈서정성과 환상성 등을 특징으로 한다.

2005년 말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권혁웅 씨가 발표한 평론 '미래파'로 의미가 구체화 됐다. 이 글에서 권혁웅 평론가는 "이들(미래파)에게는 80년대 시인들이 걸머져야 했던 역사와 시대에 대한 채무의식이 없고, 90년대 시인들이 내세운 그럴 듯한 서정이 없다"고 말했다.

길이가 긴데다, 시의 특징인 음악성이 약하고, 이미지의 결이 일정하지 않으며 화자가 혼란스럽다. 무엇보다 난해하다. 일반 독자들은 물론 평론가마저도 이들의 작품을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이들의 시도가 한국문학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소통 부재의 시인', '자폐적 언어 사용자'라 비판 받는 대목이다.

황병승, 김민정, 김경주, 김언, 진은영 등 젊은 시단을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시인들의 작품이 대부분 이 특징을 갖고 있다.

한 가지만 집요하게

또 다른 특징으로 소설의 장르화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특정 계층을 모델로 쓴, 혹은 특정 계층을 독자로 겨냥한 소설들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제는 구문이 된 칙릿 소설은 특정 계층에 집중한 소설의 대표적인 사례다. 문학 시장 최대 소비자인 20~30대 젊은 여성들의 직장 생활과 도시적인 감각을 그린 것이 특징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 미국형 칙릿 작품이 2000년대 초반 인기를 모은 데 이어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가 2000년대 초반 일간지에 연재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는 백영옥의 '스타일', 고예나의 '마이작퉁라이프', 이홍의 '걸프렌즈', 서유미의 '쿨하게 한 걸음' 등 20~30대 여성의 생활을 모티프로 한 장편이 쏟아져 나왔다.

지난해 황석영의 소설 '개밥바라기 별'의 성공으로 청소년 문학 시장 역시 관심사가 됐다. , 김려령의 '완득이' 등 청소년문학상 수상작들이 속속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청소년 문학 역시 하나의 장르화가 이뤄지고 있다.

김형경의 '꽃피는 고래', 김사과의 '미나', 이명랑의 '날라리 on the pink' 같은 기성 작가들의 성장소설도 청소년 문학의 한 축을 이룬다.

이전 추리소설, SF소설 등 특정 장르에 집중한 작품은 국내 문단에서 '대중소설'로 분류됐다. 최근에는 이런 소재들이 순수문학에서도 빈번하게 사용되는 데, 이런 현상도 2000년대 문학의 특징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서준환의 '파란 비닐인형 외계인', 조하형의 '키메라의 아침', '조립식 보리수 나무'는 SF 장르를 작품에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칙릿과 청소년 소설, 장르 문학을 차입한 소설의 등장 등 최근 소설의 경향은 '문단 문학'으로 일컬어지는 순수 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왼쪽부터) 김애란 작가, 황병승 시인, 윤고은 작가, 이기호 작가, 김경주 시인, 김려령 작가, 김경욱 작가 ,백영옥 작가 ,서준환 작가


합일점은 한국문학의 위기

앞선 특징에 대해 문학가의 의견은 분분하다. '감각'과 '장르화'가 2000년대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히지만, 이는 20~30대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보이는 '새로운 특징'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고은과 김지하를 비롯해 김훈, 신경숙 등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는 원로, 중견 작가들의 작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감각과 장르화는 해당 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 국내 순수문학이 위기 상황에 있다는 사실은 문학적 좌표를 떠나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다. 경제 불황에도 출판가에서 문학 작품이 호전하고 있지만, 이전 시대 문학이 갖고 있던 사회적 위상, 영향력이나 작가들의 사회참여 의식은 현저히 떨어져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즉, 현재 한국문학이 현실을 반영하기보다 미학적 완성도나 새로운 시도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영향력 역시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 최근 문예지 '오늘의 문예 비평'에서 젊은 평론가들은 "한국 소설의 최근 호황은 현실에 눈감은 대가"라고 주장해 눈길을 끈다.

문학 평론가 정은경 씨는 '저항 혹은 투항의 책략으로서의 웃음'이란 글에서 "이들의 웃음은 현실과 거의 무관하며 악의 없는 재담과 말장난, 익살과 골계에 가깝다"고 평했다.

문학평론가 권유리야 씨 역시 사인회, 방송출연과 같은 문학 이벤트가 다수 대중의 확보에 성공했지만, 문학 고유의 특성을 잃어 버린 채 출판 자본과 문화산업의 이해에만 복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창은 평론가는 "현재 문학 구조는 상업적 메커니즘에서 성장하는 문학과 문단 내부에서 우열을 가리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두 축으로 구분되는 듯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저널리즘은 10년 단위로 세월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장삿거리를 들고 나오는데, 이때 들고 나오는 새것은 언제나 바다 건너 들여온 것이다.'

2000년 겨울, '창작과 비평'에 실린 황석영 선생의 강연 중 일부다. 이제 그의 말은 일부 수정돼야 할 듯싶다. 한국 저널리즘이 10년을 단위로 문학계 새로운 장삿거리를 들고 나오지만, 이제는 바다건너 온 것이 아니라 내부의 태동에서 감지하는 것이라고.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