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전문 무용수 지원 센터, 직업 전환 재교육 14개 기관서 57개 프로그램 운영

당연한 말이지만, 사회 전반적인 불황은 예술가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불황에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의 사회적 기반이나 든든한 후원자가 없는 이상 예술인도 일반 사회인과 마찬가지로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들은 단지 하나의 직업군으로서 종종 '예술노동자'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다른 장르와는 달리 '몸'을 매개로 사용하는 춤 예술의 경우 필연적으로 '노동 인생'의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 물론 노년이 되어도 출 수 있는 일부 전통춤이나 현대춤 등이 있지만, '젊은 몸'만이 구현할 수 있는 고난도의 동작과 테크닉들도 엄연히 많은 부분 존재하는 것이 바로 춤이다. 특히 발레의 경우는 남녀 불문 30세 이후로는 본격적인 하향세를 걷게 된다.

때문에 신체의 노화가 시작되는 30세를 기점으로, 많은 무용수들은 서서히 은퇴를 고려하게 된다. 또 늘 부상에 시달리는 만큼 조기 은퇴의 가능성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그 다음은? 어릴 적부터 춤 하나만을 보며 그 세계에서만 살아온 이들이 춤을 그만두고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이 '당연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뒤늦게나마 정책적 차원에서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다.

'몸'이라는 공통점으로 다른 세계 도전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이사장 윤성주)는 지난해부터 '전문무용수 직업전환 재교육' 지원사업을 통해 전문무용수들이 은퇴 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 사업의 기본 방향은 우선 어릴 적부터 오랜 시간동안 '몸'만을 연마해온 무용수들에게 '몸'을 다루는 관련 직업으로 서서히 전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배려에서 비롯됐다.

춤 활동에서 축적된 예술적 감성과 정신적이고 신체적인 특성을 그대로 살려, 개인은 물론 무용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에서 시작된 생각인 셈이다.

지난해 5개의 교육기관에서 시작된 직업전환 재교육 프로그램은 현재 14개 교육기관으로 확장돼 무대 스태프 및 안무, 공연기획, 문화연출, 재활트레이너 등 57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개설된 과정은 재활을 다루는 '클리닉 강사', 신체 관리나 춤을 활용하는 'Body capability'을 비롯해 '무용공연 전문 스태프 인력', 'ABC프로그램 강사' 등 크게 네 가지 분야로 이루어져 있다.

지원자들이 이수한 과정은 역시 몸 또는 춤을 기반으로 한 분야들이 많다. 부상으로 은퇴하면서 자연스레 재활에 관심을 갖게 된 일군과 밸리댄스 등 대중 춤으로의 이동을 계획하는 이들이 상당수다. 하지만 공연기획이나 연출, 심지어 방송 드라마 작가 등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이들도 있어 '몸의 예술가'들이 다른 분야에서 어떤 활동을 보여줄지도 기대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은퇴한 무용수들의 수에 비하면 이 같은 '직업전환 재교육'이용률은 그리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의 신윤 기획운영팀장은 "관심은 많은데 섣불리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고 전하며 "직업전환은 은퇴시기에 닥쳐서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일찍부터 미리 설계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단 계획을 세우고 본인이 무용을 그만두게 된다면 어떠한 분야에 관심이 있으며, 본인의 재능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3월 현재 총 31명이 신청해 13명이 교육 중이거나 교육을 마쳤고, 3명의 수료자 중 2명은 이미 관련 단체에서 다른 인생을 시작했다. 부상으로 인한 은퇴라는 공통점을 가진 이들은 전 국립발레단원인 고일안(35) 씨와 전 국수호 디딤무용단원 장향인(31) 씨.

강서솔병원에서 '클리닉 강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무용재활트레이너 과정을 마친 이들은 현재 각각 국립발레단과 삼성레포츠에서 개인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개인적으로는 인생 전환에 성공한 것이지만, 그 자체로 '직업전환 재교육' 사업의 첫 성공 사례로 의미를 갖게 됐다.

특히 자신의 친정인 국립발레단에서 후배들의 몸 관리를 돕게 된 고일안 씨의 감회는 남다르다. "한때는 무대 위에서 춤을 추며 트레이너에게 도움을 받는 입장이었는데 이제 도움을 주는 입장이 됐다.

그런 만큼 새로운 사명감도 생긴다." 그는 비록 3개월간의 이론 과정이나 9개월동안의 실습을 거칠 때는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제는 무용계에 좀 더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첫 성과 기반으로 재교육 프로그램 확장 목표

이번에 첫 취업자들을 배출하면서 직업전환 재교육 프로그램이 서서히 성과를 거두고는 있지만 앞으로 보완할 점 또한 적지 않다. 그동안 교육과정이 다양하지 않고 지원 절차들이 비교적 까다로웠던 것이 신청자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졌던 요인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측은 교육과정의 다양화 및 확대, 지원 절차나 지원 서류의 간소화, 교육기관의 전국적 확대를 통해 지속적으로 현재의 한계를 보완해갈 뜻을 내비친다.

기획운영팀의 신윤 팀장은 "상담과 적성검사를 비롯하여 교육비 지원까지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언제든지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 언제든지 상담하길 바란다"고 무용인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지난해에는 '직업전환 재교육' 프로그램의 홍보에 치중한 전문무용수지원센터는 올해는 사업의 활성화를 위하여 무용수들이 선택하고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접근법을 염두에 두고 있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측은 "향후 직업전환 재교육 지원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더 많은 전문무용수들의 참여와 지원을 유도하고, 아울러 교육과정의 다양화와 지원 규모의 확장을 위한 재원확보에 더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기 은퇴가 불가피한 무용계의 남은 과제였던 직업 전환이 제도적으로 처음 소기의 성과를 거두면서 무용수들의 은퇴 후 진로에 대한 논의도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