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체험수업]하자센터 '기억씨의 보컬하자'가수가 꿈인 청소년들 음악으로 자기표현 점점 활달해져

“따라해봐. 하~, 하~, 하~.”

“하~하~하~, 흐헤헤.”

“민망하지? 복식이 들어가면 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는거야.”

25일 오후 6시 서울 영등포7가 하자센터 지하 연습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던 선생님은 “이것까지 하고 녹음실에서 녹음할 테니까 제대로 해봐”라고 웃음 띤 엄포(?)를 놓는다. 아이들은 “아이, 선생님”이라며 엄살을 부리지만 선생님은 “자, 주현이부터 해보자”라며 MR테이프를 넣고 반주 기계를 누른다. ‘기억씨의 보컬하자’ 수업이 열리는 수요일 오후마다 벌어지는 풍경이다.

선생님에게 ‘기억 씨’라는 애칭도 사용하는 이들은 중ㆍ고등학생 또래의 청소년들이다. 선생님 역시 아이들의 이름대신 애칭을 쓴다. 학생들은 권주현(15), 장예지(16) 양과 전수명(14), 남승우(17) 군이다. 이들은 지난 3월부터 서울시에서 연세대에 위탁 운영하는 ‘서울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하자센터)’의 ‘기억씨의 보컬 하자’에서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장난치는 모습만 보면 철없는 아이들이 뭘 할까 싶지만 MR테이프가 돌아가자 아이들의 태도는 돌변한다. 특히, 록 음악인 ‘버즈’의 ‘남자를 몰라’를 선택한 승우는 노래의 감정을 아주 풍부하게 표현한다. 쉽게 접해보기 힘든 녹음실에서 MR테이프가 돌아가는데도 승우는 떨지않고 눈을 감은채 얼굴을 좌우로 돌려가며 몰입한다.

고음에 들어가자 음이 흔들리고 승우는 노래를 멈춘다. 선생님은 녹음실 유리창 밖에서 미소를 띤 채 손짓하며 마이크에 대고 “괜찮아. 천천히”를 외쳤고 승우는 무사히 녹음을 마쳤다.

네 명의 아이들이 일주일 내내 손꼽아 가기를 기다리는 하자센터는 지난 2001년 연세대가 서울시의 위탁을 받아 청소년 학습 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인문학적 성찰능력을 갖춘 문화작업자를 길러내 IMF이후의 청년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모델을 만들자’는 고건 당시 서울시장의 뜻을 듣고 외국사례를 참고해 다양한 문화강좌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현재는 5개의 작업장(대중음악, 영상, 생활디자인, 웹, 시민문화 작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기억씨의 보컬 하자’는 가수가 꿈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실이다. 이 수업은 지난 3월 개강한 하자센터의 직업체험 교육 프로그램인 ‘일취월짱 프로젝트’ 과목 가운데 하나다. ‘일취월짱 프로젝트’는 일일 직업체험 교실의 심화과정으로 ‘기억 씨의 보컬 하자’ 외에도 랩을 배우는 ‘프리스타일리쉬’, 벽화 그리기를 배우는 ‘그래피티’, 직접 안무를 하고 퍼포먼스를 짜는 ‘몸으로 말하자’ 등 다양한 문화예술 체험 수업이 있다.

‘하자’란 말에는 체험 위주의 교육을 지향하는 센터의 뜻이 담겨있다. ‘일취월짱 프로젝트’는 수강료를 받지만 사설교육기관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가정의 아이들에게는 수강료를 할인해 준다.

여느 청소년처럼 낯가림이 심했던 아이들은 이제는 선생님과 농담을 주고받고 전화로 자주 안부도 주고받는 ‘절친’한 사이가 됐다. 선생님이 “노래할 때 어깨에 힘을 빼라”고 주문하자 장예지 양은 바로 “어깨에 원래 뽕이 들어있는 걸 어떡해요?”라고 응수하고 교실은 웃음바다가 된다.

수명 군의 엄마 이혜리 씨는 “집이 일산이라 센터까지 가는 데 2시간이 넘게 걸리는 데도 아이가 좋아한다”며 “선생님이 수업 시간을 넘겨가며 가르치는 것을 보고 감사했다”고 말했다.

하자센터 '기억씨의 보컬하자' 교실

자기표현을 유도하고 균형감을 회복시키는 기능을 하는 예술은 실제로 아이들의 약점을 보완하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 가수가 꿈인 승우 군의 엄마 남정근 씨는 “아이가 공부에 취미가 없었는데 노래를 배우면서는 열심히 하고싶어 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며 “아직 가수가 될 거라고까지는 생각 안하지만 좋아하는 일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동기유발을 하게 해주는 것 같아 잘 보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혜리 씨도 “아이가 원래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려 하는 편”이라며 “지금도 노래 연습은 방 안에서만 하지만, 노래를 배우면서 많이 활달해졌고 자기표현도 더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대 앞 인디밴드 출신으로 ‘하이미스터메모리’란 이름으로 활동하며 지난 2007년 ‘안녕, 기억씨’란 앨범을 낸 전업 가수인 선생님, 박기혁(34) 씨는 22일 자신의 공연에 아이들을 초청해 즐거운 한 때를 보내기도 했다. 녹음실에서 녹음한 노래는 CD에 담아 아이들에게 돌려준다. 녹음을 마친 장예지 양은 “전에는 꿈이 없었는데 가수가 되고 싶어져서 인디밴드 보컬을 했던 언니에게 물어봐 수업을 듣게 됐다”며 “오늘 해본 노래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들어보고 더 악착같이 해서 꼭 가수가 될 거에요”라고 말했다.

권주현 양은 “원래 가수가 꿈이라 보컬 트레이닝을 받기도 했는데 학원 영어선생님이 옛날에 다닌 적 있다고 추천해줘서 오기 시작했어요”라며 “BMK나 FT아일랜드 같이 노래를 잘하는 실력파 가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1주일에 한 번뿐인 수업은 학생들에게는 너무 아쉽다. 권주현 양은 “웃기고 재밌어서 매주 수업이 기다려져요”라며 “한 주에 2~3번은 수업이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장예지 양도 “학교 음악수업은 오르간 반주에 맞춰 동요만 불러 유치해요”라며 “복식호흡 같은 거 배우면서 모르는 것도 알게 되고 발성연습도 자세히 하는 수업이라면 매일이라도 하고 싶죠”라고 말했다.

친구가 노래를 녹음하는 사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앉은 아이들은 발과 손으로 박자를 맞춰가며 응원했다. 노래가 끝나고 친구들이 녹음실에 돌아오면 환호하고 박수를 치며 장난 섞인 응원을 보냈다. 박기혁 선생님은 연습할 때 “급하지 않게!” 혹은 “가사를 보면서 이 사람이 얼마나 슬픈 상황이었는지 생각하며 노래했어?”라고 다그쳤다. 그러던 박 선생님은 녹음을 마친 아이들에게는 “고생했어”라며 박수와 미소를 보낸다.

박 선생님은 “노래는 말과 같기 때문에 기술 위주의 교육보다는 정서와 감정으로 노래에 몰입하는 법을 가르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음악은 응어리 같은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게 하고 자기표현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줍었던 아이들이 점점 활달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 선생님은 “남들이 맛있다 하는 것만이 아닌 자기가 맛있는 것을 먹으면 되는 게 인생 아니냐”며 “아이들도 그런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돕는 일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노래’를 ‘놀이’처럼 즐기며 아이들은 ‘변화’하고 있었고 거기에 ‘예술’이 있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