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문화의 바람이 부나]6월 재개관 상업성과 문화예술 공존으로 자리잡을지 관심

오는 6월 개관 예정인 명동예술극장을 중심으로 서울 명동에 속속 들어서는 예술공연장이 지역의 정체성을 ‘상업성’일변도에서 ‘문화예술’ 공존의 공간으로 되살릴 수 있을지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원형을 훼손한 공간 ‘복원’과 상업화로 공공성 있는 문화공간의 역사성을 되살릴 수 있을지 우려를 낳고 있다.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도 중요하지만 명동일대의 상업성 일색의 분위기, 일부 기독교 원리주의자의 폭력적 선교행태, 전경과 구청 단속반 등의 감시를 비롯한 거리문화 개선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명동예술극장, 외벽 일부만 복원도 복원?

문화체육관광부는 당초 2006년 대한투자금융으로부터 사들인 서울 명동 1가 54번지 4950.20㎡ 크기의 부지에 장충동으로 이전한 옛 국립극장의 모습을 복원한 순수 문화예술공연장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관을 석달 남짓 앞둔 25일 본보가 취재한 명동예술극장의 모습은 1936년 일본인 다마타가 설계해 메이지좌(明治座)라는 이름으로 건립된 옛 국립극장 원형과는 사뭇 다른 형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건물 옥상부에 설치된 유리벽이다. 명동예술극장은 유리벽으로 둘러쳐진 옥상에 인공정원을 만든 고급 레스토랑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공연장 내부도 과거의 건물과는 완전히 다른 ‘최신식’으로 ‘복원’과는 거리가 멀다. 1층에는 신식카페가 들어선다. 1, 2, 3층에는 한 개의 현대식 무대를 바라보는 552석 규모의 관람석이 들어선다.

콘텐츠면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정체성을 확립할 것인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문화부는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이 올려지는 첫 작품만 이병훈 연출의 ‘맹진사댁 경사’로 결정했다. 문화부 관계자는 “순수 정극, 창작 연극, 고전 등을 놓고 협의중이지만 아직 명확한 방향을 잡지 못했다”며 “연극을 주로 할 것”이라고만 답했다.

원래의 명동예술극장 건물은 1934년 일제에 의해 영화관 용도로 신축됐다. 1948년 해방 이후 1961년까지는 서울시에서 공관으로 활용했다. 1957년부터는 국립극장과 시공관 용도로 사용됐다. 1973년 국립극장이 서울 장충동으로 이전하면서 1975년까지는 국립극장 산하의 예술극장으로 사용했다. 1976년 대한투자금융이 매입한 이후 2006년까지는 사무실 공간으로 쓰였다.

그러나, 완공을 앞둔 명동예술극장은 건물은 외벽 일부를 제외하고는 원형과 거리가 멀어졌고 상당부분 상업화 한 것이다. 홍성태 상지대 (도시생태학) 교수는 “복원(restroration)의 의미는 원래의 모습을 되살리는 것”이라며 “원형을 훼손한 명동예술극장의 껍데기 복원은 청계천 개발과 같이 복원을 빙자한 사기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김정동 목포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옛 국립극장 건물이 “일본 도쿄 아사쿠사의 유명극장 오가쓰간(大勝館)과 디자인이 똑같다”며 “복사 정도가 아니고 도작(盜作) 수준”이라고 말해 ‘짝퉁’건물의 복원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김 교수조차도 명동예술극장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해 복원 후 문화재 등록을 주장했다.

공연장 속속 들어서는 명동

명동예술극장 외에도 최근 서울 명동에는 문화예술공연장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서울시는 16일 명동2가 ‘명동 M-플라자’ 5층에 ‘서울문화교류 관광정보센터’내에 197석 규모의 다목적 공연장을 개관했다. 이 공연장의 운영권은 민간 기획사인 크레디아가 맡고 있다. 크레디아는 첫 공연을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공연으로 잡고 있다.

동숭아트센터는 지난주 명동유네스코 회관 내 명동아트센터를 임대해 창작극 ‘백설공주가 사랑한 난장이’공연을 시작했다. 명동아트센터는 작년 5월 문을 열었으며 410석 규모의 공연장을 갖추고 있다.

권윤숙 명동아트센터 공연팀장은 “최근 명동지역에 일본인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어 문화예술공연장소로서 사업성에 주목했다”며 “현재 좌석점유율은 절반 정도”라고 말했다.

100석 미만의 소규모인 ‘창고극장’ 역시 34년 넘게 명동의 순수문화예술 공연장으로 남아있다. 최근 한 공연기획사도 명동에 100여 석 규모의 공연장 개관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객’과 ‘감시’의 거리문화 개선이 더 시급

명동이 ‘문화예술’과 ‘상업’이 공존하는 거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거리문화의 개선이 공연장 건립을 통한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만큼이나 시급한 과제인 것으로 보인다.

‘쇼핑’일변도인 명동 거리는 지나치게 커다란 간판과 상점들의 호객행위, 좁은 길에 상점들이 내놓은 좌판으로 번잡하다. 명동 초입에 있는 명동예술극장 앞길은 늘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일부 극렬 기독교도들의 포교 소리가 메우고 있다. 대표적 개신교 교회인 영락교회도 주말이면 명동거리에 나와 북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른다.

명동은 또 ‘감시’의 거리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게릴라성 시위를 막을 목적으로 전경이 명동거리를 점령해 시민과 관광객에게 불쾌감을 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서울 중구청은 이 와중에 명동 거리 곳곳에 단속요원을 배치해 무단투기 단속을 벌여 시민들과 실갱이가 벌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쇼핑’의 거리로서 관광특구인 서울 명동의 현재적 정체성을 부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명동은 ‘다문화’, ‘근대 문화예술’의 거리로서 역사적 정체성 역시 품고 있는 공간이다.

명동은 조선조 청나라 점령군이, 조선말에는 일제 점령군이 주둔했던 곳이다. 또, 프랑스 카톨릭이 세운 명예방과 중국대사관이 서민, 중산층과 함께 머무르는 ‘다문화’의 거리로서 역사성을 띠고 있었다.

일제의 메이지좌(明治座)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해방 이후에도 국립극장과 다실, 공연장 등이 많아 ‘근대 문화예술’이 활발하게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홍성태 교수는 “공간의 문화성을 착취하지 않고 상업공간도 얼마든지 문화공간이 될 수 있다”며 “문화공간과 상업공간이 공존하는 수많은 유럽의 거리에서 배울 일”이라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