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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예술을 만나다
과학 연극·전시·소설 등 다양한 융합의 산물 선보여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





1-'2050 Future Scope'전 중 남지'Visibility'
2-2050 Future Scope'전 중 이희명'유충'
3, 4-지난달 31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과학연극시리즈의 일환으로'왜, 과학연극인가?'라는 제목의 과학연극포럼이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원작자 히라타 오리자 극단 청년단 대표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재범 기자happyyjb@hk.co.kr
5-'2050 Future Scope' 전 중 노진아 '미생물'



한 대학의 생물학 연구실에 뜻밖의 손님이 도착한다. 배양액에 담긴 뇌다. 과학자들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살아 있나요?” 뇌를 가져온 이는 잠깐 망설인다. “최선의 상태로, 유기적인 상태로 보존하고 있죠.”

지난 3월24일부터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과학연극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공연되고 있는 연극 ‘과학하는 마음 3-발칸동물원’(이하 ‘발칸동물원’)의 한 장면이다. 연극 내내 섣불리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쏟아진다. “뇌 이식은 뇌사한 사람에게 뇌를 이식하는 것인지, 뇌만 남은 사람에게 다른 신체 부위를 이식하는 것인지”, “온몸 중 인공장기가 몇 퍼센트 있을 때까지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등이다.

아이의 자폐증을 치료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으로 자폐증 원숭이를 ‘만들어’ 연구하는 과학자의 에피소드에서는 연구윤리 문제가 제기된다.

‘발칸동물원’: ‘과학예술’의 모범 사례

최근 과학과 예술이 본격적으로 ‘융합’한 결과물들이 선보이고 있다. 과학 지식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방식으로써 예술 형식을 빌려오거나, 예술에 과학 소재를 도입한 초기 시도들의 수준을 넘어선 것들이다. 일본의 원작을 번안한 ‘발칸동물원’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자 본보기다.

히라타 오리자 원작의 이 연극은 2010년 미래 사회(현재 국내 공연에서는 시대 언급이 빠져 있음)를 배경으로 장기이식, 뇌과학 등의 과학 이슈를 연구실에서의 일상적 에피소드로 풀어냈다. 연구실 내부를 조명했지만, 내용은 극이 쓰인 1997년 당시의 시대상을 아우르고 있다.

예를 들면 극중 언급되는 가상의 유럽 전쟁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을 모델로 설정됐다. 이 전쟁의 특징은 민족 간 갈등이 첨예했다는 것. 등장 인물들은 대참사를 불러온 민족 구분이 실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과학적으로’ 논의한다.

이 연극에서 과학은 단순한 지식이 아닌, 현실의 문제들을 조망하고 해결 방향을 판단하는 근거이자 논리다. 3월31일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린 ‘왜, 과학연극인가’ 포럼에서 서강대 이덕환 화학과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자연에 대한 정확한 관찰과 논리적 분석을 통해 얻어낸 과학 지식이 사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세계관의 핵심”임을 잘 드러내는 것이다.

과학-예술 융합으로 미래를 모색

이처럼 과학과 밀접하게 융합한 예술은 한 시대의 세계관이 어떻게 삶과 문화에 녹아들 수 있는지 예시한다. 이를 통해 현재를 비추어보고 미래를 고민하게 해준다. 이덕환 교수는 과학연극의 역할에 대해 “현대과학을 근거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예술적 감각으로 표현하고, 예술적 감각을 이용해 현대 기술의 위험성을 파악하고 치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에서 과학-예술 융합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시도되어 온 배경에는 시대적 위기 의식이 있었다. 미디어아트 전문 미술관인 아트센터 나비의 노소영 관장은 2007년 펴낸 ‘예술, 과학과 만나다’ 서문에서 “과학기술은 그 역작용을 우려하는 경고음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현대의 신’이 되어 버렸고 인간성의 보루였던 예술의 사회적 위상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홍성욱 교수는 같은 책에서 “예술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낳을 수 있는 부작용과 윤리적 문제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값진 기회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과학과 예술: 그 수렴과 접점을 위한 역사적 시론’) 예술은 과학의 다양한 ‘결과’들을 미리 상상하고 구현함으로써 사람들이 과학에 대한 무비판적 찬양이나 맹목적 비판 같은 극단적 태도를 취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미래’를 구상하는 방향의 융합 프로젝트가 부쩍 늘어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작년 11월 과학창의재단이 주관한 국립과천과학관 개관전 ‘2008 과학과 예술의 만남’ 전은 지구의 빛, 과학의 상상, 예술의 꿈’을 슬로건으로 삼았다. UN이 정한 ‘세계 지구의 해’를 맞아 환경 오염, 기후 변화, 에너지 고갈 등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모색한다는 의도였다.

사비나미술관은 올해 초 ‘2050 Future Scope: 예술가와 과학자의 미래실험실’ 전을 열었다. 예술가와 과학자가 함께 ‘미래’라는 주제로 워크샵을 한 후 작품을 만드는 방식으로 1년간 진행된 협업 프로젝트의 결과였다. 우선미 큐레이터는 ‘환경’, ‘뇌과학’, ‘가상현실’, ‘나노 기술’이 “우리의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칠 이슈”라고 판단해 소주제로 삼았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아주대학교 박영무 기계공학과 교수는 “학문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융합 되지 않은 ‘낱개 지식’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과학과 예술은 사회와 소통하며 발전하고 또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과학은 예술을 통해 문화가 되어야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정재승, 김탁환 교수는 올해 초부터 동아일보에 과학소설 ‘눈 먼 시계공’을 연재하고 있다. 첨단 뇌과학을 이용한 살인사건과 로봇들의 격투기 대회 등의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가까운 미래 배경의 SF 추리 소설이다.

물리학자와 소설가의 협동 작업으로는 최초다. 두 필자가 매일 각자 일정 분량을 쓴 뒤 바꾸어서 퇴고하는 식으로 함께 쓴다. 정 교수의 표현처럼 “화학적인 과정”이다.

이런 과정은 결과물의 내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물리학자인 정 교수가 사건들의 관계, 인물들의 역할 같은 얼개를 짜면, 소설가인 김 교수가 거기에 세부 요소를 더한다. 정 교수가 ‘2049년 서울’이라는 배경을 설정하면 김 교수는 그곳이 어떤 풍경이고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구상하는 식이다. 과학적 통찰력이 문학적 감수성을 통해 구체화된다.

낯선 상황이 펼쳐지지만 이 소설의 메시지는 근본적이다. “인간은 평생 숫자에 갇혀 산다. 때론 불편함을 호소하더라도 기대면 편하고 든든한 것이 숫자다. 그 숫자를 버리고 탈주하려는 인간 역시 적지 않다. 나를 숫자 따위로 규정하지 말라. 난 숫자 이상이다. 로봇은 언제 인간이 되는가. 숫자 이상을 이해하고 의지를 품을 때다”(17회) 같은 구절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한다.

배경을 가까운 미래로 정한 것도 현실과 너무 거리를 두지 않기 위해서다. 필자들이 일간지 연재를 결심한 것은 “이 정도 과학 소설은 대중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재승 교수는 “과학의 발전은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학이 발전하는 순간은 사회 구성원들이 새로운 과학 지식을 세계관으로 받아들일 때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과학이 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발칸동물원' 성기웅 연출
"과학연극은 인간을 설명하는 '눈'을 제공"








-연출 계기는

과학이나 과학연극에 대한 관심보다는 원작자의 작품 세계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한국 연극은 감정적인 것이 많은데, 히라타 오리자는 과학을 통해 인간의 문제를 파고드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등장인물의 감정 변화도 음향, 조명 등의 장치 대신 등퇴장으로 표현한다. 이런 기법도 '과학적'으로 느껴졌다.

-3년 전 초연한 후 3번째 연출했다. 연극 속에 제기되는 많은 과학 이슈 중 흥미로운 지점이 달라졌을 것 같다

초연했을 때는 '황우석 사건' 직후였다. 사회적으로 연구윤리문제에 관심이 있을 때였다. 지금은 뇌과학, 뉴로 컴퓨터나 바이오 컴퓨터 같은 것들이 예민하게 다가온다. 3년 전만 해도 일어나기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는데 이제 실감난다.

-이 연극을 연출하면서 과학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이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인식틀이 바뀌고 시야가 넓어진다. 상상력도 자극된다. 진화생물학을 읽고 연애 이야기를 새롭게 풀어보기도 했다.

-과학연극의 의미는

한국사회에는 인간에 대해 질문하는 작업이 관념적이거나 감정적인 영역이라는 고정 관념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생명과학을 통해 인간을 고민할 수도 있다.

과학연극은 인간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눈'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사회에서는 상당한 과학연극이 만들어지고 있다.




'눈 먼 시계공' 정재승 교수
"과학소설은 과학을 체험하는 데 기여"








-소설 연재하게 된 계기는

이 이야기를 처음 구상한 건 5년 전이다. 주변 영화인들에게 보여주었는데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3년 전부터 김탁환 교수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DISCO(Digital Storyteeling & Cognition)랩을 운영하고 있는 중인데, 연구만 하지말고 창작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1년 반 동안 다듬어 A4 30~40매 분량으로 정리했다. 이것을 토대로 작업해 연재하고 있다.

-10회에 "SF 소설가들은 닥쳐선 안될 미래를 막기 위해 소설을 쓴다. 전설적이 연작 단편집 '화성연대기'를 남긴 SF 소설가 레이 브래드베리의 주장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소설을 쓰는 것도 그런 의미인가

대부분의 SF 소설이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림으로써 과학기술의 발전이 초래하는 문제점을 짚어주고 오늘을 점검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SF 소설을 읽는 것은 매우 우울한 경험이다. 우리 소설이 그것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연쇄살인사건이 나오고 인간의 문제를 건드리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과학 시대에도 낭만과 유머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을 통해 과학과 사회, 현실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미래를 궁리하려고 한다.

-이 소설을 쓰는 것이 자신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나

일주일에 5일은 논문을 쓴다. 주말마다 '눈 먼 시계공'을 쓰는 것이 나에게는 과학에 지친 뇌를 쉬게 하는 작업이다.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소설이 나중에는 만화나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면 한다. 과학자의 아이디어가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사례가 되기를 바란다.

-과학소설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과학은 자연을 통해 인간과 삶, 세상을 바라보는 한 방식이다. 그것이 철학이 될 때 비로소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과학을 체험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과학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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