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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아닌 '잠재' 현실로서의 가상현실
미디어아트프리즘/샤 데이비스의 '오스모스'
디지털인터페이스 착용한 관객 물속 헤엄치듯 숲·연못 등 12개 영역 탐험





박영욱 연세대 미디어아트 연구소 HK 교수







영화 ‘원스’의 한 장면이다. 한밤중에 여자는 남자가 건네 준 시디플레이어의 스위치를 켠다. 거기에는 자신에게 작사를 부탁한 남자가 작곡한 곡이 들어 있다. 배터리가 없다. 여자는 곧장 편의점으로 달려와서 배터리를 넣는다. 귀에 이어폰을 꼽는다.

음악이 들린다. 이 음악소리는 이어폰을 타고 흘러나온다.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들리는 음악소리는 곧 여자의 귀에만 들리는 소리다. 하지만 어느 순간인가 음악소리는 여자의 귀를 뚫고 나와서 편의점 전체에 울려 퍼지며 편의점을 나서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전체에 울려 퍼진다.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는 여자의 이어폰을 타고 흐르는 소리일까 혹은 이어폰 바깥에서 들려오는 배경음악일까? 현실에서는 분명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명 이 소리는 이어폰 속에서 들리는 소리이자 동시에 이어폰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이기도 하다.

영화는 가상이기 때문에 이러한 역설이 가능하다. 영화 속에서 들리는 소리에 대한 지각(perception)은 전혀 새로운 지각이다. 들뢰즈는 이러한 ‘가상적’(virtual) 지각을 영화라는 매체만이 전달할 수 있는 매우 독특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사람들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진짜 현실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 가상의 이미지나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한다. 가상현실 공간하면 항상 떠올리게 되는 것이 영화 ‘매트릭스’에서의 매트릭스 공간이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서 전뇌(電腦)에 나타나는 현실과 구별되지 않는 가상의 세계이다.

여기서 가상의 세계는 의례 디지털 매체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짜’의 세계로 간주된다. 가상현실의 성공여부는 디지털 매체를 이용하여 현실과 전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현실 같은 ‘가짜’를 얼마나 잘 만드는가에 달린 듯하다. 가상현실의 기술이 돌덩어리로 황금을 만드는 연금술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상현실이 현실과 똑같은 ‘가짜’의 세계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의 예술가 샤 데이비스(Char Davies)는 가상현실이 현실과 똑같은 가짜가 아닌 ‘현실과 다른 가상적’ 세계임을 보여준다. 그의 대표작 ‘오스모스’(Osmose, 1995)는 가상현실의 이러한 특성을 잘 나타낸다.

오스모스는 관객에게 현실과 구별되지 않은 가짜 현실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공간적 체험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오스모스’는 가상현실의 작품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관객이 디지털 인터페이스 장치인 안경(HMD, Head Mounted Displayer)과 조끼를 착용함으로써 가상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형식이다. 이 작품의 흥미로운 점은 관객의 호흡이나 몸의 균형에 따라 공간의 위치가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가령 숨을 들이킬 때 몸은 수직으로 상승하며, 숨을 뱉으면 하강한다. 관객은 마치 무중력 상태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인터페이스 장치를 착용한 관객은 약 15분 동안 물속을 헤엄치듯이 숲, 연못, 지하세계 등 12개의 영역을 일인칭 시점으로 탐험하게 된다.



(작은 사진) '오스모스' 체험 장면


샤 데이비스가 간단한 손동작이나 걸음걸이가 아닌 호흡이나 몸의 균형을 통해서 공간적 위치를 변화하게 한 것은 관객들이 가상공간에 몸으로 참여하게 함으로써 몰입의 정도를 강화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가상공간의 이미지들이 반투명하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그렇기 때문에 숲의 공간에서 나무와 배경은 확연하게 구분되지 않고 뒤섞인 듯한 느낌을 준다. 작가는 발광입자를 활용해 이미지의 실체감을 최대한 약화시키는데, 이는 고체도 액체도 아닌 공간의 느낌을 주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오스모스의 가상현실 공간이 결코 관객들에게 현실공간처럼 느껴지게 만든 가짜의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오스모스의 공간은 공간의 ‘가상성’을 주저 없이 드러낸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지각은 현실의 지각이 아닌 가상의 지각이다.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러한 가상적인 지각은 지극히 비현실적인 지각이 아닐까?

물론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현실 속에서도 이러한 지각은 무수히 많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무중력의 공간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무중력의 공간을 체험한다. 순간순간 우리의 몸은 무중력을 지각한다. 이것이 비현실적이라면 무용수들이 경험하는 몸의 체험 역시 모두 가짜일 것이다.

러시아가 나은 불멸의 발레리노인 니진스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무대에서 점프를 하고 있는 동안 나는 내 몸이 마치 무중력의 상태에 떠오른 듯한 느낌을 받지요.”

니진스키의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가상이나 착각이 아니다. 고전발레의 공연을 보면 무용수들이 공중으로 몸을 날리고 회전을 하는 무대의 공간은 하나의 가상공간처럼 느껴진다. 무거운 중력이 지배하는 객석의 현실적 공간과 달리 무용수들이 날아다니는 공간은 무중력의 가상공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공간은 결코 비현실적인 공간이 아니다. 숨을 죽이고 발레리나의 점프를 바라보는 관객은 무대라는 가상현실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무중력의 상태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그러한 체험은 우리 몸 속에 있는 잠재적인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가상적인 지각을 가능하게 한다는 들뢰즈의 지적은 가상현실과 관련 지어 볼 때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때 가상적이라는 말은 결코 말 그대로 ‘가상의’ 혹은 ‘가짜의’라는 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몸에 너무 배어 익숙해진 지각들로부터 추방된 지각들의 부활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이때 가상이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로부터 추방된 또 다른 현실, 곧 잠재적인 현실을 의미한다. 샤 데이비스가 오스모스라는 작품을 통해서 보여준 가상현실은 바로 이러한 잠재적(virtual) 지각의 가능성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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