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 노벨일본서 등장한 애니메이션 풍 장르 소설 새 캐시카우로 문학지형 바꿀지 관심

최근 몇 년간 국내 출판계의 ‘슈퍼 루키’가 등장했다. 흔히 ‘NT노벨(New Type Novel)’로 불리는 라이트 노벨(Light Novel)이다. 겉표지는 꼭 만화책처럼 생겼다.

애니메이션 풍으로 그린 일러스트가 대다수다. 속을 펼치면 소설책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말과 행동은 다시 만화를 닮아 있다. 새로운 장르문학, 라이트 노벨은 무엇인가?

라이트 노벨을 아십니까?

10~20대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풍의 장르소설을 일컫는 말인 라이트 노벨은 일본에서 1970년대부터 등장했다. 영어로 된 단어이지만, 일본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일본에서 문학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고, 미국과 유럽 등에 소개된 번역물도 여러 편 있다.

국내 라이트 노벨이 소개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대원씨아이의 NT노벨, 학산문화사의 익스트림노벨, 서울문화사의 J노벨, 디엔씨미디어의 SEED노벨 등이 국내 라이트 노벨 브랜드 회사다.

이미 대형서점에는 라이트 노벨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라이트 노벨은 인기를 얻고 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4~5년 전부터 라이트 노벨 코너를 따로 마련했다. 라이트 노벨은 보통 수십 권의 시리즈물로 나오기 때문에 독자들의 충성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라이트 노벨의 가장 큰 특징은 캐릭터를 중심으로 만화적인 상상력을 가미했다는 점이다. 문고판 크기에 만화 캐릭터를 그린 일러스트를 표지로 만든다. 국내 가장 인기 있는 라이트 노벨 작품, ‘작안의 샤나’를 살펴보자.

작품에는 인형을 닮은 거대한 괴물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이 괴물의 팔을 툭 자르면 검붉은 피가 아닌 인형 솜털이 뿜어져 나온다. 만화 같은 상상력이 라이트 노벨의 특징이자 경쟁력이다. 물론 독자는 10대 청소년이 대다수다.

작품의 완성도를 전적으로 작가의 재능에 기대는 일반 문학 작품과 달리 창작 단계부터 출판 기획자와의 토론을 거쳐 ‘시장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만든다는 점도 라이트 노벨의 특징이다.

이렇게 탄생한 라이트 노벨은 만화나 애니메이션 영화 등으로 만들어진다. 원소스 멀티유즈의 기폭제가 되는 셈이다. 라이트 노벨로 시작해 기성문단에 진입하는 작가도 상당수다. 소설 ‘내 남자’로 지난해 나오키 상을 받은 사쿠라바 가즈키의 경우 라이트 노벨로 이름을 알린 뒤 기성문단으로 진입했다.

문학지형 변화시킬까?

최근 라이트 노벨이 새롭게 주목 받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라이트 노벨 세대가 출판계 주류로 등장할 10~20년 후 한국문단의 지형이 이들 작품에서 영향을 받을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문학이 세계와의 끊임없는 교류에서 탄생하는 장르인 만큼 국내 문단 역시 해외문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왔다. 가까운 예로 1980~90년대 국내 소개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접한 청소년들이 현재 한국문단을 이끄는 30~40대 작가로 성장한 것이다.

이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라이트 노벨의 독자들이 미래 한국문단을 이끄는 작가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SF적인 요소, 로맨틱 코미디 분위기의 칙릿, 엽기적인 발상 등 라이트 노벨의 단골 소재가 최근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한다는 점도 눈여겨볼 점이다.

소장 문학평론가 조영일 씨는 현재 10대 청소년들이 라이트 노벨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데 대해 가장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를 하고 있는 평론가 중 하나다. 그는 “학창시절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와 같은 감각적인 일본 소설을 읽은 세대가 현재 30~40대 기성작가로 성장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영일 평론가는 “최근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변하고 있다. 이런 특징에 대해 비평계는 ‘새로운 상상력’이라고 의미부여 하고 있다. 기존 순수문학의 비평 방식으로 해석되지 않는 지점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라이트 노벨에서 발견되는 전형적인 코드다. 장르문학 관점에서 이런 방식은 전혀 새롭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견해는 일부 평론가들의 전망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라이트 노벨이 한국문단의 새로운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한계를 지닐 것’이라고 분석한다.

장르문학 전문지 ‘판타스틱’의 김봉석 편집위원은 “라이트 노벨이 한국문학 기류를 바꿀 가능성이 있지만, 우선 문학 시장과 작가가 바뀌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그는 “10년 전에도 이영도의 ‘드레곤 라자’, 이우혁의 ‘퇴마록’등 장르문학이 한때 붐을 이뤘다. 그러나 아직도 장르문학은 한국문학계 한 축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즉, 라이트 노벨을 비롯한 장르문학에서 걸출한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배출되고, 스테디셀러가 있어야만 문학의 한 축으로 자리 잡는다는 분석이다.

지난 2월 13일 한나라당 박대해 의원이 발표한 ‘2008 세계 주요 30개 대학 도서관 대출 순위’를 보면, 오쿠다 히데오나 에쿠니 가오리 같은 일본 작가들의 소설과 해리포터 시리즈 유의 판타지·만화책이 주를 이룬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세계 문학 시장이 리얼리즘의 서사를 탈피해 판타지와 스릴러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장르문학의 봄’이 시작된 셈이다. 그 변화의 한 가운데 라이트 노벨이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