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미술이야기] 영화 '거울 속으로'와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존재 암시

(좌) 반 아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우) 르네 마그리트 'La Reproduction Interdit' (1937)

미술은 언어다. 하지만 너무나 개인적이고 독창적인 까닭에 우리는 그들의 언어의 독해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미술작품이 지닌 뜻을 헤아리고 그 작품을 통해 영화를 이끌어 가는 계기로 삼거나 영화의 반전을 암시하는 장치로 사용해 왔다.

이렇게 영화 속의 미술은 영화의 또다른 은유나 비유로 활용되면서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 왔다. 영화 속의 미술이야기를 통해 영화와 미술의 통섭의 세계를 만났으면 한다.

1년 전 화재로 인해 문을 닫았던 백화점이 전면 수리 후에 재개장을 앞둔 즈음에 업친데 덥친 격으로 연쇄살인사건이 터진다. 백화점 화장실에서는 피자 커터로 자신의 손목을 그어 자살한 여자가 발견되고 볼펜으로 머리가 관통된 채 엘리베이터에서 발견된 죽어있는 남자의 시신, 주차장에서는 손목이 꺽인 채 자신의 차 속에서 죽어있는 한 남성이 발견된다.

도입부부터 섬득한 사건현장이 등장하면서 전형적인 공포 스릴러 영화임을 강조하는 영화 ‘거울 속으로’(2003년 작)는 이렇게 시작된다.

196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기라 불리는 시절에 제작된 ‘월하의 공동묘지’(1967)류의 스릴러물들은 느닷없이 나타나는 귀신과 머리를 풀어헤친 원한에 찬 요귀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한국에서 제작되는 스릴러물의 전형적인 구조와 전개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거울 속으로’는 이러한 서술방식과는 다른 구조를 지닌다. 부드러운 이미지와 목소리를 가진 유지태가 전직형사로 백화점의 보안과장인 우영민 역을 맡고, 백화점 연쇄살인사건의 수사를 맡은 담당형사인 하현수 역을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를 연기한 김명민이 그리고 하현수가 용의자로 지목한 정신병력이 있는 이 지현과 화재로 죽은 언니인 이정현 역을 맡아 일인이역을 해낸 김혜나 등이 등장한다.

개봉당시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영화 판권을 사간 허리우드에서 ‘미러’(Mirrors, 2008년작)으로 리메이크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던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연기자들 이외에도 거울이 한 몫 한다. 모든 것을 비추기 때문에 사실 영화에서 거울을 등장시키는 일은 피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찍는 사람이나 스텝들이 항상 거울에 비치기 때문. 하지만 이 영화에서 거울은 자신과 또 다른 자신의 자아가 거울을 통해 투영되면서 사실 가장 두려운 존재는 나 자신 즉 스스로라는 사실을 적시함으로써 영화의 공포감은 더욱 커진다.

거울을 소재로 독특한 영화를 만든 김성호 감독은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의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항상 부조리한 현실을 우화적으로 비꼬는 한편 눈으로 보이는 것들의 이미지와 존재에 대해 의문부호를 달았던 마그리트의 이런 생각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바로 그의 ‘재현되지 않다’(1937년, Museum Boymans-van Beuningen, Rotterdam 소장)라는 작품이 그것이다. 거울 앞에 한 남자가 등을 보이고 서있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남자의 모습은 여전히 뒷면이다. 정상적인 거울에서라면 분명 얼굴이 거울에 비쳐야 하는 데 말이다.

즉 거울에 비친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또 다른 누구라는 가설이 성립된다. 이런 부조리하지만 부조리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그림을 보고 김성호 감독은 자신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라고 믿는 거울 속의 내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나를 배신하거나 또는 거울 속에 또 다른 세상이 있어 그것이 거울 밖의 존재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하는 상상이 이 영화의 제작 동기가 되었다.

(좌) 영화 '거울속으로'와 (우) 이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미러'

이 영화에는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1898~1972)의 ‘마술 거울’(석판화, 1946년)도 등장하지만 영화의 중요한 고비마다 등장해서 영화를 이끌어 가는 나레이터 역할을 하는 그림이 있다. 바로 ‘아르놀피니의 부부의 초상’(1434, 3장의 오크패널 위에 유채, 국립미술관, 런던) 이 그것이다.

네덜란드의 화가얀 반 아이크(Jan van Eyck, 1395 ~1441)가 그린 이 작품은 이탈리아 상인인 아르놀피니의 주문으로 신부 조반나 체나미와의 혼인 서약식 장면을 그린 초상화이다. 매우 사실적인 묘사로 15세기 북유럽 미술의 전형을 보여주는데 오늘날의 카메라로 진화하는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의 원리를 적용시켜 그림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장치로 거울을 사용한다.

주인공 부부 뒷벽에 걸려있는 볼록거울이 그것이다. 그 거울을 확대해 보면 두 사람이 더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자신이 푸른 색옷을 입고 팔레트를 들고 서있다. 그리고 그 옆에 붉은 옷을 입은 조수가 있다. 이들은 이 혼인 서약의 증인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거울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얀 반 아이크, 여기에 있었다.(Johannes de Eyck fuit hic)”라는 명문을 거울위에 새겨놓았다. 마치 아르놀피니의 결혼식의 화가처럼 인간의 눈에 드러나지 않는 또 다른 실존, 존재에 대한 실마리를 이 그림을 통해 암시하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이런 장치 외에도 그림을 읽는 많은 상징들이 숨어있어 ‘예술과 상징’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자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먼저 뒷벽에 걸려 있는 볼록 거울의 가장자리에는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매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죽음의 길을 걸을 때 잠시 숨을 골랐던 10개 장소인 ‘십자가의 길’이 있다. 결혼 후 어떤 고난도 주님의 은총 안에서 극복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거울 옆에는 크리스털 묵주가 걸려있다. 이는 순수와 순결의 상징으로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여기에 임신한 듯한 신부의 배는 항상 논란거리이다. 하지만 복식사를 살펴보면 이 당시 여성들에게 유행했던 옷의 모양이 유난히 복부를 불룩하게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는 여러 개의 촛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촛불하나만 켜놓았다.

그것은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신앙의 표현이자 하나님의 눈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신부 앞에 서있는 강아지 그리폰 테리어는 주인에게 가장 충성스럽다는 종으로 신부는 신랑에게 무조건적으로 충성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높은 침대 머리 부분의 용 조각은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다.

또 신랑신부는 결혼식의 신성함 때문에 신발을 벗고 있는 데 남자의 신발은 밖을 향하고 있고 신부의 신발은 안쪽을 향해 있다. 이것은 남자는 밖에 일을, 여성은 안살림을 담당하라는 뜻이다. 여기에 신랑의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창문틀에는 오렌지가 놓여있다.

정열과 열정을 상징하는 이 과일은 이들이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지중해 연안에서만 나는 오렌지를 통해 그가 매우 돈이 많은 부호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렇게 그림에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 장치들이 등장한다. 이 그림을 보면 유지태가 영화 속에서 했던 “보이는 게 다는 아니야”라는 대사가 떠오르지만 사실 그림에는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이 항상 있다는 것이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