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경험이 창작의 원천… 음악·미술 등 예술 장르서 영감 받기도

1-'박쥐'의 박찬욱 감독
2-시인 허만하
3-소설가 윤고은
4-시인 황병승
5-소설가 신경숙

상반기 한국영화의 기대주, ‘박쥐’의 제작보고회 현장. 박찬욱 감독은 ‘박쥐’를 “사제의 정체성, 뱀파이어, 에밀졸라의 결합”이라고 소개했다.

“제 성장환경이 카톨릭 분위기에 익숙하다보니 사제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할 일이 많았고, 그런 신분을 가진 사람이 죄악을 저질러야 하는 딜레마에 놓이게 됐을 때 오는 정신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여기에 뱀파이어 영화, 에밀졸라의 소설이 결합되는 과정을 거치며 지금의 박쥐가 탄생됐어요.”

박찬욱 감독이 언급한 소설은 에밀졸라의 첫 소설 ‘테레즈 라캥’이다. 최근 영화의 개봉에 맞춰 재출간됐다.

영화 ‘박쥐’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예술 작품이 다른 장르의 작품 또는 강렬한 경험에서 영감을 얻는다. 베트남 전쟁을 찍은 사진 한 장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 대표적인 사례.

문학 작품 역시 미술, 음악, 영화나 가족 경험, 심지어 꿈에서도 영감을 얻어 탄생한다. 문학 작품, 그 창작의 원류를 되짚어 보자.

메모는 나의 힘

문학을 비롯한 예술 작품은 창작의 원천을 주변 환경에서 찾는 경우가 흔하다. 작가의 경험이 영감의 원천이 되는 셈이다. 때문에 많은 작가들이 일기를 쓰거나 만난 사람을 기록하는 등 자신의 일과를 정리해 둔다.

특히 묘사가 뛰어난 작가의 경우 메모가 습관처럼 베어있다. 하성란 작가는 꼼꼼한 메모 습관으로 정평이 나있다. 인터뷰 때 자신의 답변과 기자의 질문을 메모해 둘 정도다. 이렇게 정리한 메모는 몇 년 후 다시 꺼내 읽으면서 작품을 구상할 때 모티프로 이용한다.

“여러 직업군의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만의 직업적 특성이 있거든요. 그 사람이 그 직업을 갖고 겪었던 일들, 그게 한 문장이라면 거기서부터 상상의 날개를 펴기 시작해요. 조금 더 생각해보고 그 사람이 되려고 생각하다 보면, 제가 그 직업인이 된 거 같아요.”

하성란 작가는 공업고등학교 출신의 H 시인에게서 전기 줄 설치하는 방법을 듣고 꼼꼼히 메모를 해 두었고, 이를 모티프로 작품 ‘깃발’을 썼다.

윤고은 작가 역시 하루 일과를 적어두는 수첩을 두고 관리한다. 특히 그는 메모의 내용 뿐 아니라 출처를 세심하게 기록하는 편이다. 아이디어를 적어둔 종이와 자신만의 수첩, 취재 자료를 책상 한 쪽에 수북하게 쌓아 두고 작품을 창작한다. 장편 소설 ‘무중력 증후군’에서 주인공 리보의 일상을 묘사하는 부분은 대부분 학창시절 술자리에서 들은 후일담을 적은 것이 많다고.

“작품에서 묘사한 술자리 야한 농담은 제가 대학생 때 남자 선배들에게 들었던 게 많아요. 제가 수첩에 매일 기록해 두는 지 선배들은 몰랐겠죠. 술자리 등장하는 소설 인물마다 실제 인물이 한 명씩 있어요. 출처를 적어두면 인물을 묘사를 할 때 편하죠.”

예술 작품에서 영감 얻기도

작가 중에서 유독 영화광이나 아마추어 음악가가 많다. 음악, 그림, 영화 등 다른 예술 장르에서 문학적 영감을 얻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허만하 시인의 에세이 ‘알파의 시간’은 세잔의 그림 ‘생트빅투아르 산’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허 시인은 뛰어난 미적 감각을 지닌 그의 그림을 두고 “세잔은 자기 시대를 앞질러간 사람이다. 세잔에게는 동시대인에게 볼 수 없는 ‘플러스 알파의 시간’이 있다”라고 표현했다.

2000년대 젊은 시단의 기수, 황병승 시인은 동시대 음악에서 작품의 모티프를 얻는다고 말한다.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의 경우 포스트 록과 실험음악에서 모티프를 따온 작품이 많다.

“포스트 록이나 실험 음악은 기존의 정형화된 음악이 아니라 돌발적이고 새로운 음악이에요. ‘이 자유로운 음악 구성을 어떻게 시로 가져올까?’를 고민했어요. 제 시에서 이미지가 서로 충돌하는 것, 그리고 충돌이 조화를 이루는 것은 전부 실험 음악에서 모티프를 따온 겁니다.”

꿈에서 기원 찾기도

때로 꿈속에서 겪은 환상적인 이미지를 시나 소설로 그려낼 때도 있다. 소설가 김유진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평소 경험을 짧은 메모로 남긴 후, 메모를 모아 작품의 이미지로 만들어 낸다. 특히 악몽을 꾸고 나면 몽환적인 이미지를 세심하게 적어두었다가 비슷한 작품을 구상한다. 김유진 작가의 최대 장점으로 꼽히는 그로테스크한 묘사는 꿈에서 비롯된 셈이다.

최근 출간한 소설집 ‘늑대의 문장’에서 세 쌍둥이가 폭사하는 장면은 그녀가 꿈꾼 경험을 글로 묘사한 것이다. 김유진 작가는 쌍둥이가 원인 모를 폭사로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내장이 파혈된 장면을 꿈에서 본 후 파편적인 기억을 몇 편의 시로 남겼고, 이 시를 모티프로 다시 단편 소설을 썼다.

“평소 깊은 잠을 못자서 꿈을 자주 꾸는 편이에요. 보통 컬러 꿈을 꾸기 때문에 이미지가 더 선명한데, 그 기억을 메모해 두었다가 작품 배경을 묘사할 때 많이 이용합니다.”

엄마 떠나는 버스 안에서

최근 60만 부를 돌파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주인공의 자전적 요소가 상당부분 녹아 있다. 실제 이 작품은 신경숙 작가가 유년 시절 고향을 떠나오는 버스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시골에서 15살, 16살에 밤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오면서 ‘작가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때 작가가 되면 엄마 이야기를 써야지라고 생각했어요. 저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했는데, 약속을 지키는 데 30년이 걸렸지요.”

신경숙 작가는 “어머니가 내 문학의 원천”고 말했다. 실제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신경숙 작가의 삶과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일례로 소설가 딸과 약국을 하는 여동생, 셀러리 맨 오빠 등 주인공의 가족 구성원은 신경숙 작가의 가족 구성원과 같다. 신 작가는 “20~30대 때 보다는 40대가 되면서 (작품에서) 어머니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언제부터인가 글이 잘 안 풀리면 엄마한테 전화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희 어머니는 주변 사람 이야기부터 시골에서 느끼는 계절 변화까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시죠. 저는 도시에 살고 있는 결핍을 메우게 되고. 엄마 인생이 제 (창작) 인생이기도 하지요.”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