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미술이야기] 피렌체 3대 걸작 '메두사의…' 만든 첼리니의 작품… 위작기증 덮기

한국에서 상영되는 영화제목들은 흥행을 위한 고육지책이기는 하겠지만 원제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 많다.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 1953년작)에서 성가를 과시한 상큼한 미녀배우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본명 Audrey Kathleen Ruston, 1929~1993)이 등장하는 ‘백만 달러의 사랑’(How To Steal A Million, 1966년작)도 그런 예에 속한다. 우리말로 새긴다면 ‘백만 불짜리를 훔치는 법’정도가 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하지만 제목을 가지고 시비할 필요는 없는 영화이다. 명장 윌리엄 와일러(William Wyler, 1902~1981)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우아함을 지켜나가는 그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영화이다. 그는 ‘미니버 부인’(Mrs. Miniver, 1942년작)에서 ‘벤허’(Ben-Hur,1959)에 이르기까지 멜로에서 대형 스펙터클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경쾌한 유머로부터 비장하거나 때로는 우아한 또 장엄하기까지 한 장면을 연출해내는 다재다능한 실력을 보여준다.

특히 이 영화에서 그는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1953년 작)에서의 오드리 헵번을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그려내면서 ‘현대의 요정’이라는 칭호를 얻게 해주었다.

이 영화에서 눈부실 만큼 아름다운 오드리 헵번은 타고난 재능이 넘쳐나는 화가 보넷의 딸 니콜로, 보넷 역은 벤허에서 아랍인 족장 역을 맡아 1959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바 있는 휴 그리피스(Hugh Griffith, 1912~1980)가 연기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고호, 세잔느 등 작가와 사조를 구분하지 않고 유명화가들의 작품의 위작을 만들어 경매시장에 내다 파는 것을 즐긴다. 외동딸 니콜은 이런 아버지의 행적이 들킬까봐 가슴졸이며 말려보지만 아버지는 그 재미있는 일을 그만 둘 생각이 없다.

어느 날, 보넷은 첼리니(Benvenuto Cellini, 1500~1571)의 비너스 상을 미술관에 기증하겠다고 나선다. 니콜은 그림은 위작이 가능하지만 조각은 사용했던 재질분석과 기술적, 조형적, 예술적 검증을 통해 진위여부를 따지기 때문에 위작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 두려워 아버지를 말려보지만 이미 물 건너간 일. 평소 보넷을 위대한 수장가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리몬트 미술관장은 진위도 가리지않은 채 그 비너스 상을 미술관에 전시한다.

첼리니는 이탈리아의 조각가이자 금세공인인 동시에 마니에리스모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신과 당대의 이야기를 다소 과장되지만 생생하게 묘사한 자서전으로도 유명한 르네상스기 대표적인 인물이다.

젊어서 프랑스로 어디로 떠돌다 말년에 프렌체로 돌아와서 메디치가의 공작 코시모 Ⅰ세를 위해 ‘메두사의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1554)를 제작했다. 이 조각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1501~1504)과 도나텔로(Donatello,1386~1466)의 ‘주디트’(Judith and Holofernes,1460)과 함께 피렌체의 3대 걸작으로 유명하다.

그는 음악가가 되기를 희망했던 부모와는 달리 피렌체의 금속공방에서 금 세공일을 배웠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자유분방하고 다혈질이었던 탓에 가는 곳마다 말썽을 일으키고 사고를 쳐서 한 곳에 정주하기보다는 평생 동안 시에나, 로마, 피렌체, 파리 등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작품 활동을 해야 했다.

특히 1558~62년 사이에 비서에게 구술해서 작성된 구어체의 자서전은 이탈리아 르네상스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사고뭉치였던 데 비해 학구적이기도 했던 그는 1565년부터 금세공과 조각에 관한‘금세공에 관하여: Trattato del-l'oreficeria’와‘조각에 관하여: Trattato della scultura’라는 논문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 후 표제음악의 창시자 엑토르 베를리오즈(Louis-Hector Berlioz, 1803 ~1869)에 의해 첼리니와 미녀 테레사와의 사랑이야기를 소재로 한 ‘벤베누토 첼리니’ (1838)라는 오페라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초연에 실패해서 그 뒤 별로 공연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서곡과 제2막 서두에서 연주되는 ‘로마의 사육제’는 널리 알려진 곡이 되었다.

(좌) 영화‘백만 달러의 사랑’에 등장하는 첼리니의 비너스상. (우) 오페라 ‘벤베누토 첼리니’의 한 장면
(좌) 영화'백만 달러의 사랑'에 등장하는 첼리니의 비너스상. (우) 오페라 '벤베누토 첼리니'의 한 장면

이런 도나텔로의 ‘비너스 상’ 기증은 미술관으로서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기증후 전시가 열리던 날 밤, 집에 홀로 남은 니콜의 집에 도둑이 든다. 보넷의 가짜 고흐 그림을 훔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그 그림에서 약간의 물감덩어리를 떼어내는 정도에 머문다.

도둑 더모트 역은 피터 오툴(Peter Seamus O'Toole, 1932~ )이 분했다. 도둑을 발견한 니콜은 도둑과 승강이를 벌이다 총을 쏘고 도둑은 부상을 당한다. 하지만 도둑의 말에 홀려 그를 호텔까지 데려다 주고 작별의 키스까지 나누고 헤어진다.

그런데 어느 날 보험사에서 니콜을 찾아와 비너스상은 보험에 들어야 한다고 하자 보넷은 엉겁결에 서류에 서명을 한다. 하지만 보험가입 전 작품진위여부 등 정밀감정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그간의 위작행적이 드러날 것이 두려워 노심초사하던 니콜은 그림도둑 더모트를 찾아간다. 비너스 상을 훔쳐 보험사가 감정을 못하게 할 속셈이었던 것.

가장 무도회처럼 가면을 쓰고 등장해서 작품을 훔쳐달라는 니콜의 애절한 부탁에 더모트는 거절하지 못하고 그녀와 함께 비너스상을 훔쳐낸다. 자석을 이용해서 문을 따는 장면은 지금은 진부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흥미로운 장면이다. 또 청소부로 분장한 니콜 역시 ‘로마의 휴일’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헵번의 모습을 연상시키지만 어떤 것을 입어도 그녀의 매력은 빛난다.

하지만 더모트는 이미 헵번의 아버지가 위작범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접근했던 것. 사실 사설탐정이자 런던, 뉴욕, 레닌그라드 등등의 주요 미술관 자문위원이자 감정위원이며 화학을 공부하고 미술사 박사학위를 소지한 전문가였던 것. 더모트가 자신의 정체를 알리자 니콜은 크게 놀라고 이때 그 자리에 보넷이 들어온다.

더모트는 보넷에게 미술품 위조에서 은퇴할 것을 강권하면서 니콜에게 청혼을 한다. 보넷은 그림위작에서 손을 뗄 것을 약속하지만 그 두 사람이 떠나는 날 여전히 그의 가짜 고흐 그림에 빠져있는 고객이 찾아오고 그는 여전히 그림위작에서 손을 떼지 못 한 채 영화는 끝을 맺는다.

대개 그림을 다루는 영화들이 위작이나 도둑에 관한 이야기 중 하나 만을 주제로 하지만 이 영화처럼 위작과 도난을 함께 소재로 한 영화는 거의 없다. 실재하는 미술관은 아니지만 이곳에 즐비한 피카소의 청색시대의 그림을 비롯해서 미로, 브라크, 렘브란트와 많은 조각품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영화에 나오는 그림의 작가들을 맞추는 것도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지만, 역시 헵번이 등장할 때마다 입고 나오는 60년대 풍의 의상과 독특한 모자패션도 색다른 볼거리가 되어준다. 게다가 60년대 파리 시내를 달리는 클래식한 자동차들은 관객들을 ‘시간여행’으로 안내한다.



글/ 정준모(미술비평, 문화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