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파워 갤러리] (2) 예화랑88년 이후 농익은 연륜에 젊은 감각 더한 전시로 가로수길 명물 자리매김이숙영 대표 "기획전시만 여는 것은 화랑의 임무"

젊은 층에게 ‘걷고 싶은 거리’로 사랑 받는 신사동의 가로수길. 봄비를 맞아 제법 울창해진 가로수를 따라 걷다 보면 커피빈 바로 옆에 예사롭지 않은 건축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2006년 위용을 드러내자마자, 이 늘씬하고 세련된 건물은 곧 가로수길의 명소가 되었다. 그 해 국내의 대표적인 세 개의 건축상을 휩쓸고 이듬 해 한국 건축물로는 처음으로 세계적인 건축상인 ‘AR Awards’를 수상했다.

바로 이 건물 1층과 2층에, 31년간 미술 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예화랑이 자리한다. 1978년 인사동에 둥지를 틀었던 예화랑은 3년 후, 화랑으로는 처음으로 강남에 들어섰다. 88년 이후 줄곧 가로수길에서 농익은 연륜에 젊은 감각을 더해낸 전시로 이곳을 지나는 이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당시 강남이 개발을 막 시작할 때였어요. 강남에 문화의 기반을 다져야겠다는 생각으로 옮겨왔습니다. 옆에 있는 벽돌건물(현재 커피빈 건물)의 디자인도 제가 했고 이 건물도 설계부터 참여해서 애정이 남다르죠. 美를 다루는 곳이어서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예화랑 이숙영(61) 대표의 말이다.

이화여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이 대표는 엄밀히 말하면 2대 화랑 경영자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대학 4학년 때 작고한 아버지는 천일 백화점과 천일 화랑을 운영하던 경영자이자 화상이었다. 당시 3대 컬렉터로 불릴 정도로 아버지의 서양화 컬렉션은 화려했다.

어린 시절부터 대가들의 작품을 보고 자란 덕에 이 대표는 서양화의 진위를 가려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정가이기도 하다. 덕분에 현재 KBS-TV ‘진품명품’에서 서양화 부문의 감정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이 대표의 시댁 역시 수많은 동양화를 소장하고 있는, 그림과 인연이 깊은 집안이다. 시어머니의 할아버지가 1918년에 창립된 순수미술동인회인 ‘서화협회’ 회원으로 활약하였던 서화가 청운 강진희 선생이었다. 예화랑의 첫 전시가 동양화 명품 전, 2회 전시가 서양화 명품 전인 이유이다.

이후, 예화랑은 서양화를 위주로 전시를 기획해왔다. 남관, 오지호, 구본웅, 권옥연, 문신, 김기창, 변정화, 김종학 등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국내 작가들과 파블로 피카소, 카렐 아펠, 린 체드윅, 프랭크 스텔라, 니키드 상팔 등 명성 높은 해외 작가들의 전시가 꾸준히 이어졌다.

기획전시만 여는 것에 대해 이 대표는 ‘화랑의 임무’라고 말했다. 매번 전시할 작가를 직접 선정하는 것은 물론이다. 작가와 화랑은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으며 31년간 함께 성장해왔다.

“좋은 작품 속에는 역사성과 철학이 담겨 있어요. 전 그 중에서도 교감이 이루어지고 정감이 가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큰 전시를 많이 해왔는데, 특히 세계적인 조각가이자 누보레알리즘의 선각자인 아르망의 전시를 두 차례 한 것이 기억에 남네요. 2005년에 타계하셨는데, 한 번의 전시는 그의 세계 첫 유작전이 되었지요.”

예화랑은 2005년 청담동에 분점인 갤러리 아트 2021을 오픈했다. 런던 엑세스 대학원에서 갤러리 경영학을 전공한 후 예화랑의 디렉터로 활동해온 이숙영 대표의 딸 김방은 씨가 분점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 김방은 씨가 실장으로 들어오면서 예화랑은 한층 젊어졌다.

홈페이지는 세련되게 리뉴얼 되었고 예화랑 이외의 외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외부 전시 기획도 활성화되었다. 롯데 애비뉴엘이나 현대백화점 등에서 전시회를 의뢰해오면 공간의 콘셉트에 맞게 미술 전시를 기획해주는 방식이다.

이숙영 대표는 4년 전부터 서울오픈아트페어(SOAF)의 운영위원장의 역할에도 무게를 실어오고 있다. SOAF는 최근 심은하, 김혜수 등 연예인들의 작품 출품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아트페어.

아트페어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현실에 대한 지적이 없지 않지만 ‘미술의 저변확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건 SOAF의 올해 전시는 대중들의 관심이 유독 뜨거웠다. 전년대비 매출도 15% 증가로 집계되면서 참여 화랑과 작가들 역시 흡족한 분위기다.

“성공적으로 치러져서 참 기쁩니다. 기존의 아트페어에서 아쉬웠던 점을 모두 실현해 보고 싶었던 게 SOAF에요. 매출도 중요하지만 대중 친화적인 면이나 재미를 좀 더 부각시키고 싶었거든요. 아트페어 사상 처음 생긴 것이 많아요. 기업이 부스를 세워 작가를 후원하는 형태라던가, 젊은 작가 열 명을 뽑아서 다음 년도에 전시를 할 수 있게 해주면서 신진작가를 육성하고 있어요.” SOAF는 다수 화랑의 기대가 실리면서 매년 더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새로운 작품을 대할 때마다 애인을 만나는 것처럼 설렌다는 이숙영 대표. 그녀의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는 거창하지 않았다.

“건전한 미술 시장이 형성되기를 바랍니다. 화랑이 작가를 발굴해서 좋은 전시를 하고 널리 알리는 곳이잖아요. 지금처럼 계속해서 좋은 전시를 해야지요.” 31년간의 한결같음 때문인지, ‘지금처럼’이란 말 속에선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진정성이 전해졌다.

예화랑 & 갤러리 아트 2021


1978년 인사동에 세워진 예화랑은 1982년 강남구 신사동으로 이전하면서 강남지역 최초의 화랑이 되었다. 매년 7~8회, 회화, 조각, 영상, 판화, 그리고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전시를 기획하여 국내외 대표 작가의 작품을 소개해왔다.

2005년에는 아트 2021(대표: 김방은)이라는 이름으로 예화랑의 분점을 마련해 해외 유명 작가들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 아트 2021이 입주한 청담동의 네이처 포엠 빌딩에 는 현재 십여 개의 갤러리가 둥지를 트고 있다.

아트 컨설팅은 예화랑의 또 하나의 역점사업이기도 하다. 건축물 내외부에 가장 적합한 작가를 선정해 작품을 의뢰해 설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983년 힐튼호텔을 시작으로 2009년 3월 무주리조트 클럽하우스에 이르기까지 전국 42곳에 공공미술장식품을 설치했다.

일례로, 추상 조각가 박석원의 작품이 1998년 대한투자무역진흥공사(KOTRA)에, 심재현의 작품이 2000년 에너지 관리공단에, 신현중의 조각 황소가 2002년 증권업협회 건물 앞에 세워졌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