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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패션을 말하다
드라마와 캐릭터를 통해 생기 불어넣으며 최고 화두로 부상




황수현 기자 sooh@hk.co.kr





1-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2-엠넷미디어의'트렌드리포트 필'
3-온스타일의 리얼리티쇼'스타일리스타'
4-채널 동아의 워너비 패션 디자이너
5-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에서 도전자가 원단을 사고 있다


패션에는 두 개의 세계가 있다. 옷 밖의 세계와 옷 안의 세계. 옷 밖의 세계는 잘 차려져 나온 밥상처럼 편하게 즐기기만 하면 된다. 매끈하게 잘 빠진 재킷은 체중을 3kg 쯤 줄여주고 한들한들한 원피스는 여성미를 한껏 끌어올린다.

포인트가 되는 단추도, 다채로운 색감도 몽땅 즐길 거리다. 이제 옷 안의 세계, 안감을 뜯고 패션의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밖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광경이 펼쳐진다. 주머니 안감은 너덜너덜하게 달려 있고, 솔기마다 달린 시접은 어수선해 신경을 거스른다.

간혹 재봉틀 기름과 초크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오직 화려한 외관을 위한 필살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 옷 안 쪽은 그들만의 세계다. 재미가 없다. 옷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최근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에서는 신진 디자이너 발굴을 다룬 리얼리티 프로그램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가 막을 내렸다. 최고의 디자이너를 꿈꾸는 평범한 사람 14명이 경쟁을 벌이는 내용으로, 매회 화면은 원단을 자르고 재봉틀을 돌리는 디자이너들의 작업 과정으로 가득 찼다. 출연진 중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은 모델 이소라 한 사람뿐. 완성된 옷에는 심사위원단의 난해한 평이 따른다.

“현대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구속을 모티브로 꼼데갸르송의 실험적인 옷을 웨어러블하게 표현했네요”

그야말로 옷을 뒤집어 놓은 것 같은 이 프로그램의 평균 시청률은 1.73%, 가장 높게 나온 10회에서는 3.38%를 기록했다. 케이블 시청률을 지상파 시청률로 치환할 때 보통 곱하기 10을 하는 상례에 따르면 대박이 난 셈이다.

마니아들은 매회 방영분을 캡쳐해 블로그에 올리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확대 재생산시켰고 급기야는 얼마 전 국내 예능의 최강자인 ‘무한도전’이 이를 패러디하면서 지상파에까지 그 이름이 오르내리게 되었다.

정제되지 않은 패션의 뒷골목에 쏟아진 이 의외의 관심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갑자기 대한민국에 의류업계 종사자가 늘어나기라도 한 걸까? 아니, 그보다 먼저 TV는 왜 패션의 뒷골목을 비추기 시작한 걸까?

지금 최고의 화두는 패션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해요” 온스타일 김제현 부장의 말이다.

“지금 패션은 최고의 화두에요. 온스타일의 주 타깃인 20~34세 여성들은 패션에 대한 관심이 많을 뿐더러 지식도 상당해요.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전문 용어를 아는 건 물론이고 뉴욕에서 막 인기를 끌기 시작한 디자이너의 이름까지 전부 꿰고 있어요.”

엠넷 미디어의 ‘트렌드 리포트 필’은 일종의 패션 토크쇼다. 디자이너와 패션지 기자, 스타일리스트로 이루어진 사회자와 패널 진은 둘러 앉아 패션을 주제로 수다를 떤다. 시상식에 참석한 연예인들의 스타일에 점수를 매기거나 트렌드를 소개하는데 역시 쉽지 않다.

처음 들어보는 해외 디자이너의 이름이 보충 설명 없이 거론되고, 다소 낯선 주제인 모델을 집중 조명하기도 한다. 트렌드 리포트 필의 시청률은 2%대다.

패션에 대한 관심은 사상 유례를 찾아보지 못할 정도로 뜨거워져 있다. 사람들은 무대 위에 올라온 옷은 물론이고 무대 뒤까지 흘끔거린다. 옷에 담긴 디자이너의 철학을 듣고 싶어하고 그들의 옷을 입는 모델에게도 친근함을 느낀다. 멋진 스타일을 제안하는 스타일리스트들에게는 연예인에게 보내는 것 같은 환호를 보낸다.

그러나 패션이라는 키워드 자체가 만능은 아니다. 과거 패션 프로그램이 홀대 받던 때를 떠올려 보면 시청자들의 관심도 낮았지만 방송사도 방법을 몰랐다. “이 상의에는 저런 하의를 입으세요” 식의 막무가내 정보 전달은 시청자들을 지루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TV가 패션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코디 제안쯤이야 잡지가 지겹도록 해 온 일이고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서 마음만 먹으면 파리의 모든 컬렉션을 볼 수도 있다. 정보 전달자로서의 희소성을 잃은 TV는,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패션을 말할까?

Drama-울고 웃는 패션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의 오리지날 판인 미국 프로젝트 런웨이는 한 주에 한 명씩 떨어지는 서바이벌 형태에, 출연자들을 풀어놓고 관찰하는 리얼리티 방식을 결합했다. 이들은 옷 만들기에도 열심이지만 경쟁자들을 비하하는 데에도 열을 올린다.

회가 거듭되면서 시청자들은 맘에 드는 출연자와 미운 털이 박힌 출연자를 구분하고 블로그나 게시판을 통해 꾸준히 의견을 피력한다. 그렇게 프로그램은 이야기 거리가 되고 시청률을 확보한다. 패션이 정보의 틀을 벗어나 드라마로 시청자들에게 찾아간 셈이다.

한국판을 만들면서 온스타일의 고민은 이랬다.

“대놓고 비난하는 것을 꺼리고 자화 자찬에 약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 맞을까?”

그러나 기우였다. 한국에는 한국형 싸움이 있었다. 출연진들은 1대1로 대립하기 보다 뒤에서 수근거려 한 사람을 ‘왕따’ 시키는 식의 갈등 구조를 만들었고 여기에 ‘왕따’를 보호하는 정의의 사도가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재미를 위해 몇몇 거친 캐릭터들을 탈락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줄을 이었다. 프로그램 최고의 순간은 우승자들이 마지막 컬렉션을 선보였을 때지만, 시청자들을 가장 TV 앞으로 바싹 다가 앉게 한 순간은 단연 출연진들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다.

Character-살아 숨쉬는 패션

누구의 입을 통해서 듣느냐에 따라 패션은 즐거운 놀이가 되기도 하고 따분한 강의가 되기도 한다. 이왕이면 재치 있는 사람에게서 밝고 명랑한 톤으로 듣고 싶은 것이 시청자의 마음이다. 때문에 방송사들은 패션에 관심 많은 연예인, 또는 끼 많은 패션인을 찾기 위해 분주하다.

올리브TV의 올리브 쇼는 모델이자 평소 오락 프로그램에도 종종 얼굴을 비친 변정수를 사회자로 내세웠고, 채널 동아의 ‘워너비 패션 디자이너’에서는 클래지콰이의 호란이 사회자로 나섰다. 새로 발굴된 캐릭터 중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디자이너 하상백이다.

그는 디자이너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VJ 못지않게 활달하고 적극적으로 나선다. 눈길을 끄는 외모와 여성 출연자들과의 친화력, 풍부한 감정 표현과 재치 있는 입담은 패션 프로그램의 패널로 활동하는 그에게 독보적인 존재감을 선사한다.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에서 멘토 역할을 했던 홍익대학교의 간호섭 교수도 마찬가지다.

그는 참가자들이 만든 작품을 향해 ‘지구 용사 벡터맨’, ‘타잔 부인’ 같은 별명을 지어주며 어려운 패션 이야기를 웃음으로 바꿨다. 지상파 방송에서 그의 출연 분을 보고 즉각 섭외해 패널로 출연시켰을 정도다.

스토리 온의 ‘토크 앤 더 시티’가 패션 매장을 소개하는 수많은 프로그램들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이유도 캐릭터들의 힘이 크다. 연예인이지만 다양한 패션을 시도하는 하유미와 김효진, 그리고 연예인보다 수다스러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우종완은 패션 매장을 도는 내내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시청자들이 눈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트렌드 리포트 필이 최근 시청률에 난항을 겪는 이유도 사회자 교체에 따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발랄한 성격으로 쇼 전체를 오락 프로그램처럼 이끈 최여진에 비해, 새 MC인 윤진서는 아직도 배우 이미지가 강한 데다가 낯을 가리는 듯한 인상으로 톡톡 튀는 느낌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패션이 TV를 만난 것은 여러모로 긍정적이다. 단순한 정보 전달에 그치지 않고 독창적인 관점과 해석을 더해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때 TV는 한국 패션계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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