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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루스의 추락' 앞에서 정신을 잃다
[영화 속 미술이야기] 영화 '스탕달 신드롬'과 브뤼겔의 '이카루스의 추락'
미술품 보고 받은 충격 범죄 심리와 연결 전혀 새로운 영화 탄생





글/ 정준모(미술비평, 문화정책)





1-귀도 레니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2-스탕달 신드롬 한 장면


요즘처럼 자극적이고 번잡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림을 통해 감동을 받는 다는 것은 어쩌면 사치에 속하거나 아니면 시대착오적인 사람으로 분류될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명화의 힘이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우리의 감성과 이성을 지배하기도 하고 미묘한 감동의 세계로 안내하거나 새로운 체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렇게 그림의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힘을 우리는 아우라(Aura)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의 아우라가 리얼한 힘으로 작용하면서 인간의 또 다른 욕망 즉 양면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바로 1996년 이탈리아 호러무비의 명장 아르젠토(69)가 감독한 ‘스탕달 신드롬’(The Stendhal Syndrome, La Sindrome Di Stendhal)이 다.

로마에서 치정살인 사건 전담반 여형사로 근무 중인 안나(아시아 아젠토 분, 감독 다리오 아르젠토의 딸)는 연쇄강간 살인범을 추적해서 피렌체로 간다. 이곳 호텔에서 정보를 얻은 그녀는 범인을 ?아 우피치 미술관을 찾는다. 여기서 그녀는 카라바조(1573~1610)의 ‘메두사’(Medusa, 1595~ 98, 유화, 우피치미술관 소장)와 보티첼리(1445? ~1510)의 방을 지나면서 다시 환청과 환영에 듣고 본다.

이후 렘브란트(1606~1669)의 ‘야경’(Night Watch, 원제 ‘바닝 코크 대장의 민병대’,1642, Rijksmuseum, Amsterdam)을 보다가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신은 그녀의 직업이 경찰이며 어떤 임무를 띠고 있는지를 암시하는 간결하면서도 멋진 장면이다. 그녀는 결국 브뤼겔(1525 ~ 1569)의 ‘이카루스의 추락’(Val Van Icarus, Fall of Icarus, 1558, 유화, 벨기에 왕립미술관 소장) 앞에 서서 정신을 잃고 결국 쓰러지고 만다.

‘이카루스의 추락’은 그리스 신화를 모티프로 한 그림으로 크레타 섬의 이노스 왕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다이알루스와 이카루스 부자는 감옥에 갇힌다. 아버지는 다이알류스는 이카루스를 탈옥시키기 위해 밀랍과 새털로 만든 날개를 달아 아들을 날려 보내지만 이카루스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 가까이 날아가 밀랍이 녹으면서 바다에 떨어져 죽는다.

그림에서 이카루스는 거꾸로 처박혀 살려달라고 허우적거리며 애원하지만 아무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비정하게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인간의 끔찍한 이기심과 비정함을 풍자하고 있다.

사실 ‘농민화가’로 불리는 브뤼겔은 16세기 가장 위대한 플랑드르화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초기에는 주로 신화와 전설과 학자의 통찰력을 결합시켰다. 그는 그림의 외양 뿐만 아니라 심층까지 담아내어 시각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초기에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풍속과 생활을 가감없이 그려냈지만 브뤼셀로 이주, 농민전쟁기 사회불안과 혼란과 스페인의 압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종교적 제재를 빌어서 표현하면서 휴머니즘과 예리한 비판의식으로 독창적인 화법을 전개한 화가이다.

한참 후 정신이 깨어난 그녀 앞에 한 남자가 가방을 주워다 주면서 자신을 알프레도(토마스 크레취만 분)라고 소개하고 사라진다. 그 후 혼돈에 빠져있는 안나의 뒤를 쫓아 온 연쇄살인범 알프레도는 그녀를 성폭행한다. 로마에 돌아온 안나는 벽에 걸린 작가미상의 커다란 풍경화 속으로 들어가는 환상을 겪는다.

그림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였던 셈인데 특히 폭포를 통해 다시 현실로 나오는 장면은 2006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되었던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Bill Viola, 1951~ )의 ‘해변 없는 바다’(Ocean Without a Shore)에 차용되어 삶과 죽음의 경계로 등장한다.

정신과 치료를 받던 그녀는 의사의 권유로 고향인 비테르보(Viterbo)에 돌아와 요양을 한다. 하지만 다시 나타난 알프레도는 그녀를 납치해 끊임없는 고통을 가하고 격투 끝에 안나는 알프레도를 죽인다. 하지만 미러 이미지처럼 알프레도를 닮아가면서 마리와 자신의 정신과 의사 그리고 옛 애인이자 동료형사 마르코마저 살해하는 영락없이 통속적인 싸이코 스릴러물의 전형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미술품을 보고 받는 심리적 충격을 범죄 심리와 연결시켜 전혀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사실 이 영화를 위해 감독은 1년 동안 유럽의 미술관들을 찾아 미술품을 보고 생각하면서 이 영화를 구상했다.

영화 속 안나처럼 그림을 보다가 정신을 놓게 되는 현상을 처음 경험한 사람은 1871년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Chiesa di Santa Croce)를 방문한 스탕달(Stendhal, 1783~ 1842)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로마ㆍ나폴리ㆍ피렌체’(Rome, Naples et Florence,1817)에서 교회에 진열된 미술품을 보고 계단을 내려오는 도중 심장이 뛰고 무릎에 힘이 빠지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고 적고 있다.

이런 현상은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들이 미술품을 감상한 뒤 받은 흥분으로 비롯된다. 이런 현상을 ‘스탕달 신드롬’이라 부르는데 바로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전 세계 중요미술품의 1/5을 소장하고 있다는 피렌체에서는 매년 평균 12명 정도의 스탕달 신드롬 환자가 생긴다고 한다.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바(Santa Maria Nuova Hospital) 병원의 정신과 의사 그라지엘라 마게리니(Graziella Magherini)는 그것이 유명하고 훌륭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 받는 심리적 충격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런 현상을 최초로 경험한 스탕달의 이름을 빌어 1989년 펴낸 저서의 제목을 ‘La sindrome di Stendhal’이라고 하면서 공식화되었다.

스탕달은 피렌체에서 바로크시대의 이탈리아화가 귀도 레니(Guido Reni, 1575~1642)의 작품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1662년, 유화, 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 Rome 소장)을 보고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주인공 베아트리체 첸치(1577~1599)는 매우 아름다운 처녀였지만 그녀의 아버지에 의해 14살 때 겁탈을, 계모와 오빠는 학대를 당하면서 일가는 아버지를 살해하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그녀가 16살 되던 해 짐승 같은 아버지를 죽이고 체포되어 사형에 처해진다. 이때 비극적인 절세미녀가 사형당하는 모습을 보고자 이탈리아 전역에서 구경꾼이 몰려들었다고 하는데 귀도 레니 역시 사형당하기 직전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린 것이다. 하지만 일설에 의하면 당시 스탕달에게 무릎을 꿇도록 한 그림은 14세기 화가 지오토(Giotto,1266~1337)가 그린 산타크로체 교회의 아름다운 프레스코화였다고도 한다.

하지만 무엇을 보고 신드롬에 빠져들었건 중요한 것은 여전히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들으며 감동을 받고 열락의 세계로 빠져 들 수 있는 여유 아니겠는가. 그대 그 기쁨을 경험한지 몇 해나 되었나 한번 곰곰 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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