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극·마임·퍼포먼스 등 '몸의 언어' 작품들 한 무대에

2006년 2월, 예술의 전당에선 충격적인 장면이 벌어졌다. 안무가 얀 파브르의 ‘눈물의 역사’ 공연이 그 현장이다. 이 공연에서 ‘눈물’은 단지 눈물뿐만 아니라 땀, 소변, 정액, 피 등 몸에서 나오는 모든 체액을 의미했다.

객석에서 찬사와 야유가 동시에 터져나왔다던 아비뇽 페스티벌의 반응은 한국에서도 벌거벗은 무용수들이 오줌을 쏟아내면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줄거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진보적인 현대춤, 퍼포먼스적 요소가 강한 실험극, 여러 해석들이 나왔지만 그의 작업이 이제까지의 작품 양상과 다른 관점을 요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몸에 대한 서사를 풀어낸 작품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몸과 예술의 영역에 대한 파격적인 도전은 흔치 않았다. 몸에서 나온 체액은 과연 몸일까 아닐까. 그것이 예술로 용인될 수 있을까. 있다면 그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얀 파브르는 원초적 몸짓들과 다양한 체액들을 통해 이런 모든 의문들을 던진 채, 몸과 예술에 대한 다원적 시선을 권유했다. 파브르의 ‘불편한 말 걸기’에 관객도 평단도 평가와 해석을 두고 엇갈린 반응을 나타냈다.

얼마 전 한국을 찾은 에미오 그레코는 몸을 주제로 하는 얀 파브르의 정신을 잇고 있었다. 이번에 무대에 올려진 ‘비욘드 Beyond’는 춤과 뉴미디어가 결합한 형태로, 역시 ‘몸의 언어’에 방점이 찍힌 작품이었다. 현대춤의 외연이 갈수록 확장되고 있지만, 그의 작품은 그 장르가 가진 정형적 형식과 메시지로부터 이탈된 느낌을 보여줬다.

일본의 부토, 미디어 설치, 움직임에 관한 워크숍의 결과물이 그대로 무대에 올려지는 방식도 주목할 만했다. 무대예술에서는 대개 메시지 전달이 작품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목적인 반면, 그의 관심은 몸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이런 차별성은 카바레 댄서로 활동하다가 뒤늦게 발레에 뛰어든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얀 파브르에게 발탁된 뒤 타고난 리듬감을 수단으로, 인간의 몸과 원초적인 본성을 주제로 새로운 춤 예술의 형태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연극 연출가 등 다른 장르의 예술과 공동 작업을 한 것은 물론이었다.

무대예술에서 인간의 몸에 대한 고찰이 다양해지고 심화되며 새로운 창작 양상을 빚어내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해외 창작현장의 경향만은 아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연극제나 춤 페스티벌, 기타 공연예술제에서 장르보다는 몸을 중심으로 한 작품들이 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이들 작품들은 실험극이나 춤, 혹은 마임이나 퍼포먼스로 불리지만, 다른 이름으로 불려져도 이상하지 않을 ‘몸의 언어’들이다.

무대 위 몸에 대한 질문 ‘피지컬 씨어터’

지난 5일 대학로의 정보소극장에서는 몸에 대한 두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첫 번째 작품은 두 명의 안무가가 일상을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무대였다. ‘소소한 일상’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작품에서 소품은 목욕탕 의자와 두 사람의 몸. 바닥에 목욕탕 의자를 늘어놓은 무대 위에서 두 사람은 경쾌한 음악에 맞춰, 어떤 때는 음악 없이 움직임만으로 소소한 일상을 그려냈다.

두 번째 작품은 어두운 조명 아래 매달려 있는 사람의 모습에서 출발했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점멸하는 불빛과 그에 걸맞은 기묘한 음악이 더해지면 매달린 사람은 그 상태로 몸을 서서히 움직여 바닥까지 내려오기 시작했다. 빛과 소리와 몸이 하나로 어우러지며 제목처럼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1-얀 파브르 작 ‘눈물의 역사’ 공연 첫 장면
2-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
3-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 참가작 ‘소소한 일상’
4-춘천마임축제 해외공식초청작 스트레인지 프룻의 ‘순수의 끝’
1-얀 파브르 작 '눈물의 역사' 공연 첫 장면
2-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
3-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 참가작 '소소한 일상'
4-춘천마임축제 해외공식초청작 스트레인지 프룻의 '순수의 끝'

여기서 몸의 의미는 작품 안에 존재하기도 했지만, 작품 밖에서도 느낄 수 있게 해줬다. 구조물에 매달려 있기 위해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공연자의 땀 흘리는 ‘몸’이 공연 안팎에서 관객의 주의를 끊임없이 환기시켰다.

두 작품의 아티스트들은 각각 무용가와 마임이스트. 특히 두 번째 작품은 이미 지난해 춘천마임축제의 예술가 개발 프로그램인 ‘무빙스페이스 프로젝트’에서 먼저 선보인 바 있는 ‘마임’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피지컬 씨어터’라는 이름으로 각자의 ‘소속’을 버리고 한 무대에 선다. 두 작품을 비롯해 장르 불문의 총 13개 팀이 공연하게 되는 장은 ‘신체극 축제’를 표방하는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이다.

올해 4회째를 맞지만 이 페스티벌은 여전히 ‘피지컬 씨어터’라는 장르를 찾는 여정을 계속 하고 있다. 처음에 이 행사는 배우가 몸만으로 표현하는 것이 연극의 원형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첫회부터 지금까지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있는 배정자 PD는 “대학로에서도 엄밀한 의미의 신체극을 보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소수의 신체극 예술가들과 관객을 연결해줄 수 있는 장을 고민하다 이런 축제를 생각해냈다”고 밝힌다.

그가 처음 의도한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의 모습은 배우의 ‘몸’을 보여주는 공연. 그래서 1회부터 3회까지 참여작의 형식을 보면 실험적인 연극에서 마임, 퍼포먼스로 조금씩 확대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올해 공연의 특징은 춤 작품이 본격적으로 포섭되고 아울러 축제 기간도 한 주 더 늘어나 본격적인 ‘몸의 공연제’로서 자리매김을 시작했다는 것. 다원예술의 특징이 그러하듯이 미디어 아트, 설치미술과 같은 다른 매체와의 결합도 더욱 활발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이 추구하는 것은 매체 융합이라는 다원성보다는 그 이름처럼 ‘몸’에 관한 것. 그래서 배 PD는 “앞으로도 이 페스티벌은 다른 오브제보다는 ‘몸’ 자체에 더 집중을 해서 관객과 예술가가 ‘신체극’이라는 공통의 장으로 만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왜 지금 ‘몸’인가

신체극 전문 축제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지만, 몸을 중심으로 하여 기존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자유롭게 장르를 초월하는 신체극들은 기존의 공연제에서도 이미 선보여 왔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마임축제로 유명한 춘천마임축제에는 마임 공연만 있지 않다.

몸과 그 움직임,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는 모든 공연예술, 가령 신체극과 움직임극(Movement Theatre), 비주얼극(Visual Theatre), 거리극(Street Theatre), 야외설치공연(Installation performance), 장소특정형공연(Site-specific Theatre) 등 여러 장르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오히려 올해 기대작들 중에는 정통 마임보다는 다른 장르가 차용된 작품이나 실험적 성격의 신체극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올해는 강릉관노가면극의 현대적 재창작 작업이 눈에 띈다. 한국춤 전공자와 봉산탈춤 전수자의 몸짓과 16가지 관노가면극의 춤동작이 접목된 것으로, 전통에 기반을 둔 한국의 현대적 몸짓을 찾아내고자 하는 신선한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 해외공식초청작인 스트레인지 프룻의 ‘순수의 끝’도 4미터 이상의 장대(Stilt)를 이용해 불가능해 보이는 각도까지 구부러지거나 앞뒤로 흔들리는 춤적인 퍼포먼스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오는 26일 개막을 앞둔 국제현대무용제(MODAFE)는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몸짓의 한계에 도전한다. 최근 다원화 경향에 따라 현대춤은 난해하다는 기존의 통념에서 서서히 자유로워지고 있다. 이번 무용제에서 이 같은 양상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프랑스 안무가 나세르 마르탱 구세가 안무한 개막작 ‘코미디’는 재즈 선율과 해학적 춤을 한데 묶어 즐거운 현대춤을 표방한다. 핀란드 안무가 수사나 레이노넨의 ‘트리클, 그린 오크’는 발레의 연약하고 우아한 통념을 깨트리기 위해 네 명의 남녀 무용수가 근육질(?)의 발레를 보여주게 된다.

이처럼 최근 잇따르고 있는 공연예술제에서의 ‘몸’에의 관심 혹은 몸을 중심으로 한 장르융합 현상은 무엇 때문일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의 김신아 사무국장은 다소 냉정한 입장이다. 그는 이 같은 현상이 페스티벌 제작 형식의 변화에서 초래됐다고 진단한다.

“새로운 것을 더 이상 찾기 어려운 현대예술에서 남들과 다른 것을 모색한 끝에 각 축제들이 자기 행사에 맞는 콘셉트에 적절한 타이틀을 붙이는 일이 많다.” 본격적인 신체극이나 순수하게 신체극을 향한 집약된 관심보다는 표현의 한계에 부딪힌 공연예술이 새로운 표현방식을 위해 다른 장르나 매체를 빌려와 적절히 포장하는 예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소위 몸에 집중한다는 공연들도 직접 가보면 미디어 아트나 드라마틱 무용극/연극의 다른 이름인 경우도 많다”며 아직까지 본격적인 신체극 페스티벌의 등장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무대예술에서 몸은 언제나 중요한 매체였다. 그래서 근래 몸이 주요한 키워드로 등장한 것은 새삼스럽기도 하다. 김 사무국장의 지적대로 최근 등장하고 있는 일련의 신체극들이 과연 본격적인 고민과 장기적 관점에서 비롯된 산물인가에 대한 의문 제기는 그래서 지금 유의미하다.

새로움을 위한 기획 행사는 단기적인 이벤트에 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연 전문가들은 ‘몸의 언어’를 들고 나온 작품 혹은 축제들은 그 예술적 평가 이전에 ‘신체극’으로서의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부터 다시 판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