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파워갤러리] (4) 진화랑개관과 동시 꾸준히 해외 전시 열어 국내와 문화교류 일조유위진 대표 "반한 작품만 전시… 이우환 화백과 특별한 인연"

(좌) 진화랑 건물 전면에 자리한 야요이 쿠사마의 ‘호박’ 시리즈 (우) 일본의 야요이 쿠사마와 함께한 유위진 대표
(좌) 진화랑 건물 전면에 자리한 야요이 쿠사마의 '호박' 시리즈 (우) 일본의 야요이 쿠사마와 함께한 유위진 대표

노란 바탕 위에 크고 작은 검은 색의 둥근 점이 정갈하게 그려진 이것은 거대한 호박이다. 수많은 크기의 도트무늬의 호박을 캔버스 위에, 혹은 입체로 형상화한 야요이 쿠사마.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인 그녀의 거대한 호박은 하나의 상징처럼 진화랑의 전면을 장식하고 있다. 진화랑의 유위진 대표의 컬렉션 취향을 읽을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진화랑의 나이는 올해로 서른여덟. 화랑보다 표구사가 흔하던 시절, 현대미술의 전당으로 진화랑은 당시 화랑으로서는 드물게 개관과 동시에 꾸준히 해외 전시를 열어오며 문화 교류에 일조해왔다. 한국의 작가를 일본에 꾸준히 소개하는 전시인 ‘한일 현대 그림전’은 올해로 38회를 맞는다. 진화랑의 태생과 동시에 시작한 덕이다.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 유 대표가 긴 삶을 함께 해온 생활 철학이다. 6.25 부산 피란 시절에 읽었던 기사는 생각을 실천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한 외신 기자가 당시에 이런 기사를 썼어요. ‘전쟁으로 황무지가 된 곳에 원조를 하는 것은 쓰레기통에 장미를 꼽는 것과 같다’라고요. 아주 화가 났어요. 그때 마음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우리의 예술을 반드시 세계에 알리겠다고요.”

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지만 기록으로 남기기 힘든 공연예술보다는 반복해서 볼 수 있는 미술이 전파력이 빠르겠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은사인 서양화가 故 임직순 선생의 가르침이 그녀에게 이정표를 놓아주었다.

지금까지 293회의 전시를 기획해온 진화랑에는 주목할 만한 전시가 많다. 한국의 대표 작가들의 기획전시는 물론 피카소가 마리 테레즈와 낳은 딸 마야의 피카소 컬렉션(1982년)은 하루에 만 명의 관람객이 덕수궁 미술관을 다녀갈 정도로 성황이었다.

한국의 화랑으로서는 최초로 세계 3대 아트페어로 꼽히는 피악(FIAC,1984)에서의 전시는 유 대표에게 큰 자부심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당시까지 전쟁과 가난이란 단어로 대변되던 한국의 예술을 전 세계에서 온 딜러들과 애호가들에게 선보였다. 파리 시장 시절의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과 당시의 퐁피두센터 대표도 진화랑의 부스를 다녀갔다.

“시라크 시장에게 도예가 안동오 선생의 도자기와 이방자 여사의 그림을 드렸어요. 두 작품은 프티팔레(파리시 미술관)에서 소장하기로 했지요. 아홉 명 작가의 작품을 가져갔는데, 한 프랑스인이 전시 내내 와서 몇 작품을 유심히 보더라고요. 그 분이 바로 당시 퐁피두센터 대표였어요. 그 해에 이우환 작가의 수채화와 드로잉이 퐁피두센터에 소장되었죠.”

이우환 화백의 작품은 애호가로서, 화상으로서, 유 대표의 기억에 특별하게 남아있다. 여전히 자신이 반하는 작품만 전시한다는 그녀는 1979년 ‘수채화, 드로잉 전’으로 이 화백과 인연을 맺었다. ‘참선에 가까운 여백의 강렬한 메시지’에 매력을 느꼈고 그 감흥은 여전하다고 한다.

당시 전시회에서 팔린 수채화 한 점을 제외한 40여 점을 받으러 온 이 화백에게 유 대표는 작품을 모두 사겠다고 했다. 일 년간 작품비를 지불해 결국 그 작품은 모두 유 대표가 소장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해외 전시에 나갈 때마다 이 화백은 100호짜리 작품을 두 점씩 유 대표에게 보냈고 총 70여 점의 작품이 진화랑에 소장되었다.

1990년 현재의 진 아트센터를 건립하면서 이 화백의 작품은 효자 노릇을 하기도 했다. 건립비용이 모자랐던 유 대표가 고심하던 중 마침 와세다 대학의 컴퓨터과 교수가 일본에서 소개를 받고 그녀를 찾아왔다. 어떤 작품을 컬렉션 하는 게 좋은지 묻기 위해 한국까지 찾아왔던 것. 유 대표는 두 작가를 소개했고 한 명이 이우환, 다른 한 명이 야요이 쿠사마였다.

지금 이 두 작가는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를 자랑하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녀는 일본인 교수에게 ‘초기 작품부터 현재까지의 대작 40점 정도만 컬렉션하면 전 세계에서 찾아올거라’고 귀띔했다. 이는 유 대표의 컬렉션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화백의 작품을 특히 아끼던 터라 이후에 다시 일본인 교수에게서 사겠다는 서약서를 받기도 했지만 그 교수가 이 화백의 작품에 푹 빠져 현재는 누구에게도 팔지 않겠다고 할 정도이다.

좋은 작가를 발굴하는 ‘예리한 눈’을 가졌다고 알려진 유 대표. 그녀는 40여 년 전에도 그랬듯이, 여전히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가능성을 믿는다. “아시아 미술의 중심은 한국미술이에요. 일본과 중국보다 독창적이죠. 정신세계가 주목받는 시대이죠. 사람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답고 풍요롭게 사는가가 화두일 겁니다.” 유 대표가 한국미술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진화랑 (진 아트센터)


1972년 종로구 사간동에 오픈한 진화랑은 1991년 현재의 종로구 통의동에 진 아트센터를 설립해 자리를 옮겼다. 개관 이후 줄곧 국내 전시와 더불어 해외전시를 개최해온 진화랑은 한국 현대미술의 국내외 교량 역할을 충실히 해오고 있다. 오픈과 동시에 매년 한국과 일본에서 개최하는 한일 현대 그림전은 올해로 38회를 맞는다.

이우환, 박서보, 남관, 김창열, 황주리의 한국 작가와 살바도르 달리, 파블로 피카소, 야요이 쿠사마, 타다미나미, 아이즈꼬르베, 제리피어트 등 세계적인 작가들을 국내에 소개해왔다. 세계적인 아트페어인 FIAC, Art L.A, Melbourne Art Fair, Tokyo Art Expo, NICAF 등에 꾸준히 참가하면서 국제 전시 경험을 쌓아왔다.

최근에 야요이 쿠사마 전시를 마친 진화랑은 5월 19일부터 29일까지 '사진작가 이은주'의 전시를 연다. 시간의 흐름과 역사 속에서 퇴색해가는 정경을 사진 속에 담아온 그녀는 남대문 속에 우리들의 자화상을 투영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