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전] 22명의 화가와 사진작가·소설가의 색다른 그림과 사진

1-최석운‘어머니와 아들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9
2-이만익‘오남매와 어머니’캔버스에 유채 2009
3-황주리‘그대안의 풍경’캔버스에 아크릴릭 1999
4-김형근‘화향花鄕’ 캔버스에 유채 2009
1-최석운'어머니와 아들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9
2-이만익'오남매와 어머니'캔버스에 유채 2009
3-황주리'그대안의 풍경'캔버스에 아크릴릭 1999
4-김형근'화향花鄕' 캔버스에 유채 2009

화가들은 왜 어머니 그림을 그리지 않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국내 화가들이 어머니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 경우는 흔치 않다. 드물게 사랑하는 '아내'를 소재로 한 그림은 있어도 어머니를 그린 그림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화가는 저마다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가 따로 있고, 그것을 천착하며 자신의 회화세계를 심화시켜 간다. 그러다보니 어머니는 그림의 대상에서 제외된다(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더 근원적으로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한몫 한다. 우리 사회에서 부모의 초상화나 사진은 '영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화가들은 무의식적으로 부모님 그리는 것을 꺼려한다.

또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다. 일반인의 초상화 작업은 편하게 할 수 있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벅차오른다. 쉽게 붓을 들지 못한다. 자식을 위해 헌신해온 어머니를 생각하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코끝부터 싸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시대 화가들의 어머니 그림은 어떤 표정일까?

최근 문화예술계에 키워드로 '엄마'가 떠오르고 있다.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 영화 '체인질링'과 개봉을 앞두고 있는 '마더', 연극 '잘자요, 엄마'와 '친정엄마와 2박3일'등 헌신과 희생을 상징하는 '엄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미술경영연구소(소장 김윤섭)가 기획한 <어머니 전>(5월 6~31일, '미술관가는 길'전관)은 화가들의 어머니 그림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원로화가에서부터 중진·신진 화가까지 22인의 가슴에 맺힌 어머니 그림과 사진작가나 소설가의 색다른 어머니 그림과 사진을 만날 수 있다. 김흥수 송영방 김형근 민경갑 석철주 방혜자 오원배 유희영 윤중식 이규선 이길우 이만익 이숙자 이인 전뢰진 정탁영 최석운 한진섭 함섭 황주리 같은 화가들과 사진작가 조선희, 소설가 윤후명 등 우리 예술계를 대표하는 이들이 출연진이다. 그들 중 일부는 신작으로 '나의 어머니'를 선보이고, 또 일부는 자신이 아끼는 그림을 출품하여 전시회를 빛냈다.

원로화가 이만익은 자식들을 좌우에 세운 채 앉아 있는 어머니 모습('오남내와 어머니', 2009)을 보여준다. 가족사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안정된 구도 속에, 이만익 특유의 굵은 선과 평면적인 채색으로 모자상(母子像)을 단순하게 표현했다. 아버지 없이 '오남매'를 키운 어머니는 바위처럼 견고하다.

이보다 후배 화가인 최석운은 양손에 짐을 든 채 잠이 든 아이를 업고 있는 어머니의 초상('어머니와 아들', 2009)이다. 흔히 '어머니는 힘이 세다'고 하는데, 그런 어머니를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어머니는 짐이 전혀 무겁지 않은 듯 자고 있는 아이를 사랑스럽게 보고 있다.

특이 인상적인 작품은 소설가 윤후명의 그림('어머니와 나', 2009)이다. 초승달이 떠 있는 밤에 어머니가 빨간 꽃을 든 아이를 맞이하고 있다. 투박한 붓질로 조형된 어머니는 무채색 계열의 화면 속에서 자식을 향해 '큰바위얼굴'처럼 서 있다. 어두운 색채에서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어머니의 세월이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사진작가 조선희는 어머니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가 외면하고 살아온, 자식들을 건사한 위대한 어머니의 몸이다. 어머니의 몸이 헐거워질수록 자식들의 삶은 싱싱해진다.

화가들은 어머니를 그릴 때, 형태와 채색을 고치고 또 고친다. 마치 여자들이 얼굴화장을 고치듯이 온갖 정성을 다한다. 그것은 어머니와 닮게 그리기 위한 묘사행위라기보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최대한 근접하려는 마음의 표현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절절한 그리움이 담긴다.

세계적인 경기불황으로 미래가 불안하다. 황사 자욱한 하늘처럼 전망이 불투명하다. 사람들은 무더위에도 가슴이 시리다. 이런 때일수록 아버지의 권위보다 어머니의 아늑한 품이 그립다. 가슴이 아프거나 일이 안 풀리고 힘들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 어머니다. 사람들은 방전된 삶의 생기를 어머니에게 위로받고 재충전한다.

그림은 "작가가 숱한 고뇌 속에서 생략하고 `덜어내고 손질하여 압축한 소리 없는 시"(조정육)다. 한편의 시를 음미하듯이, 화가들이 압축 저장한 어머니 그림에서 각자의 어머니를 만나면 된다. 그 어머니의 품에는 자식인 우리가 안겨 있다. 우리는 곧 어머니의 전부다! 02-738-9199


정민영 미술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