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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셰익스피어'는 무엇인가
'오셀로', '템페스트' 등 공연 잇따라
현대적 의미 재조명 필요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





(위) 극단 전망 심재찬 연출의 '오셀로'
(아래) 극단 미추 손진책 연출의 '템페스트' 리허설 장면


올해 한국 연극의 라인업 중에는 굵직굵직한 셰익스피어 극들이 눈에 띈다. 지난 3월 극단 미학이 ‘리어왕’을 무대에 올렸고, 4월에는 ‘2009 아시아 연극연출가워크숍’이 ‘셰익스피어’를 주제로 진행되었다.

이달 16일부터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극단 전망의 ‘오셀로’가 공연되는 데 이어 20일부터는 극단 미추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 ‘템페스트’를 올린다. 연희단 거리패의 레퍼토리 공연 ‘햄릿’이 7월에는 밀양, 11월에는 서울을 찾는다.

명동예술극장 개관 기념 공연 목록에도 셰익스피어 극이 두 편 포함되어 있다. 극단 여행자 양정웅 연출의 ‘햄릿’과 연희단 거리패 이윤택 연출의 ‘베니스의 상인’이다.

국제연극평론가협회장인 김윤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는 5월1일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에서 ‘셰익스피어 현상’이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셰익스피어가 지금 한국 사회와 연극계에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

셰익스피어 극의 고전적 가치

“산다는 것, 또 연극을 한다는 것에 대한 회의가 들 때마다 돌아오고 싶은 작품이다.” 극단 미학의 정일성 연출가가 밝히는 셰익스피어극의 의의다. 그는 ‘리어왕’을 마지막으로 11년만에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모두 공연했다. 그는 “셰익스피어 극을 할 때마다 삶의 의미가 다르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고전으로서의 셰익스피어극의 가치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5월20일부터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템페스트’를 공연하는 극단 미추의 손진책 연출가는 “셰익스피어 작품이 37개인 이유는 인간 삶의 상황이 꼭 37개로 나뉘기 때문”이라는 ‘속설’을 덧붙였다.

수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이용관 교수는 셰익스피어극이 “전 세계, 어떤 시기에도 읽힐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보편성은 무엇보다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온다. “예를 들면 ‘베니스의 상인’의 샤알록은 언뜻 단순하게 극악무도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원전에는 그를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나온다. 셰익스피어 극을 음악에 비유하면 모노가 아닌 스테레오인 셈이다.”

아시아 연출가 간 교류를 목적으로 한 ‘아시아 연극연출가워크숍’에서 셰익스피어를 선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주최측인 한국연극연출가협회의 부회장이자 이 워크숍에서 ‘사랑의 헛수고’를 공연한 김성노 연출가는 “국가간 공통의 주제를 찾으려니 셰익스피어만한 작품이 없었다”고 말했다.

혼란을 통과하는 정도로서의 셰익스피어 극

올해 공연되는 셰익스피어 극은 거의가 비극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비극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인간과 삶의 본질을 드러냄으로써 고통을 통과하게 하는 통찰력을 일깨워준다. 정일성 연출가는 ‘리어왕’이 “비극적 체험을 통해 실존의 문제를 깊고 다양한 형식으로 표출”한다고 말했다.

셰익스피어학회 공연부회장인 한양여대 안병대 교수는 “경제 위기로 어려운 시대 상황 때문에 비극의 역할이 더욱 커졌다”고 분석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 대구 등 지방도시에서 열린 ‘햄릿’, ‘맥베스’ 공연에 관객들이 몰렸던 예를 들었다. 현실이 암울할수록 비극의 대중적 호소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 극은 연극계 내부에서 하나의 주춧돌로 여겨지기도 한다. 정일성 대표가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공연하게 된 계기는 “한국 연극계가 질적으로 위기에 처했다는 판단”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미명 아래 말초신경을 자극하거나 원전을 훼손하는 연극의 경향이 생겼다”는 것이다.

혼란할수록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선택한 것이 셰익스피어 극이었다. 셰익스피어 극은 배우를 길러내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심도 있는 언어”로 구성되어 있어서 연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손진책 연출가도 셰익스피어 극이 “연출의 역량을 잘 드러내고 배우의 브랜드가 되는 극”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셰익스피어, 과장됐나

하지만 한국에서의 셰익스피어 극의 의의가 너무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성노 연출가는 “한국 연극계의 셰익스피어 사랑은 유별난 것 같다”고 말했다.

안병대 교수는 이런 현상을 역사적, 정치경제적 맥락에서 설명했다. 셰익스피어 극은 영국의 문화 제국주의에 의해 세계에 전파된 측면이 있다. 한국에서도 해방 이후 대학을 중심으로 셰익스피어 극을 “고품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생겼다. 정부기관과 언론기관, 학회가 참여한 대대적인 ‘400주년 기념’ 행사 등도 한 몫 했다.

그러다보니 “문화계에서 셰익스피어를 지나치게 존중하는 분위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최근에도 정치, 경제적 이유에서 뒷받침되고 있다. 셰익스피어 극은 “무게감과 상업성을 고루 갖췄다”는 인식 때문에 공적 문화 지원의 혜택을 받아 주요 극장에 오르는 동시에 ‘산업’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일부 극단의 한국화한 셰익스피어 극이 해외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이런 분위기는 더욱 공고해졌다. 국내 창작극 쪽에서 불만을 제기하는 이유다.

현대사회에서 고전은 인간성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동국대 김한 교수는 작년 발표한 ‘인간성 회복 전략으로서의 디지털 시대의 신화와 드라마 읽기’에서 셰익스피어 극을 비롯한 고전적 드라마가 시대를 지혜롭게 건널 수 있는 상상력을 회복시켜준다고 주장했다.

이런 의미에서 셰익스피어 극의 활황은 시사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도입되고 제작, 수용된 사회적 맥락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셰익스피어 현상은 역사, 정치, 경제적 의도로 만들어진 측면도 있고, 그 와중에 예기치 않게 한국 창작극의 입지를 좁힌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셰익스피어에도 작품만큼이나 여러 해석의 가능성이 있다.

'템페스트' 의 손진책 연출가 인터뷰






'템페스트'를 어떻게 해석했나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인 '템페스트'는 주로 용서와 화해라는 메시지로 해석되어 왔다. 하지만 나는 그게 억지스럽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삶과 인간에 대한 절망을 노래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인 이유로 고국에서 쫓겨난 프로스페로의 처지를 국내 요양원에 머무는 나이 든 노숙자들의 상황과 연결지었다. 노숙자들은 '바니타스'처럼 보일 것이다. 버려져 있는 존재 그 자체다. 그들이 '템페스트' 공연을 연습하는 내용이다.

'극 중 극' 형식이 흥미롭다. 셰익스피어 극의 형식적 매력은 무엇인가.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당시에는 조명도 뛰어난 무대 장치도 없었다. 그래서 '저 달빛'도 '큰 폭풍'도 대사로 설명해내야 했다. 연극은 관객과의 약속인데,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그 점을 가장 잘 이용하고 증명한 사례인 것 같다.

이 '약속'을 거부하고 극 중에 '환상'을 넣으려는 시도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환상으로는 현실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이 작품에서 무엇을 보기를 바라나

셰익스피어가 노래한 절망을 보면서도, 결국 그것을 통해 인간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연극은 인간학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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