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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셰익스피어인가
나날이 새롭고 넓어지는 해석의 스펙트럼… 시공초월 인기비결




김윤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1-에이문타스 네크로슈스의 '햄릿'
2-에이문타스 네크로슈스 '오셀로'
3-오스카라스 코르슈노바스 연출의 '로미오와 줄리엣'


언어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오늘을 포스트모던한 시대, 또는 포스트드라마연극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성의 기표로서 언어가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에 언어를 매개로 하는 희곡문학도 아울러 동반 하락하였다.

이와 같은 연극의 탈문학적 현상과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부는 셰익스피어 열풍은 얼핏 보기와는 달리 서로 길항관계에 있지 않다. 셰익스피어야 말로 언어의 마술사이긴 하지만 그 언어는 철저히 연극성과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문학이 거세된 이 포스트드라마틱한 시대에도 셰익스피어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오늘날 셰익스피어는 세 가지 측면에서 새롭게 수용된다. 첫째는 서사의 틀을 그대로 유지한 채 현대의 시각적 표현미학 속에 담는 형태이다.

예를 들어 2000년 이후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계속 연출하고 있는 리투아니아의 에이문타스 네크로슈스는 ‘오셀로’를 연출하면서 데스데모나 역에 발레리나를 캐스팅하더니 ‘햄릿’을 연출하면서는 락 가수를 햄릿 역에 캐스팅하면서 크로스오버적 연극만들기를 시도하여 혼종주의로 특징지어지는 현대의 문화를 수용한다.

또한 물, 불, 얼음, 돌 같은 자연적 요소들을 극의 강력한 기표로 활용하여 오브제로 하여금 연기하게 하는 시각연극을 지향한다. 예를 들어 오셀로가 데스데모나한테 배반당했다고 오해하여 분노와 슬픔에 젖어 있을 때 무대 양 옆의 벽들은 그의 눈을 확장하며 줄줄 눈물을 흘린다.

벨기에의 뤼크 퍼시발도 ‘오셀로’를 연출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서사를 따라 가되, 무대 중앙에 시커먼 그랜드 피아노가 새하얀 그랜드 피아노를 강간하는 모습으로 두 대의 피아노를 세워 놓고 극의 기본개념을 시각화한다.

뿐만 아니라 독일의 유망한 젊은 피아니스트로 하여금 검은 피아노를 때로는 타악기로, 때로는 현악기로, 대개는 건반악기로 삼아 연주하게 하면서 무대 주변에서 벌어지는 극행동에 대한 오셀로의 정서적 반응을 시청각적으로 연주하게 하면서 역시 크로스오버적 무대를 만들고 있다.

올 10월에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리어스에서 개막될 ‘햄릿’에서 연출자 오스카라스 코슈노바스는 배우 분장실의 거울들만 사용하여 ‘햄릿’의 서사를 정체성 찾기라는 존재론적 주제, 그리고 진짜와 가짜, 연극과 인생, 역할과 실존 사이의 철학적 주제와 연계한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현대복장을 하거나 시대초월적 의상을 입고 있다. 시각이 전경화되고 크로스오버가 중심을 이루는 미학으로 많은 연출가들은 셰익스피어의 고전적인 이야기들을 현대적 서사로 전환시키는 데 열중한다.

셰익스피어를 수용하는 또 하나의 주요한 접근은 극에 현대의 전도된 가치와 문화를 대입하여 아예 오늘, 우리의 이야기로 만들거나 텍스트를 오늘의 관점에서 해체하여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 계열의 원조는 아무래도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현대연출가 피터 브룩이 1970년에 연출한 ‘한 여름 밤의 꿈’일 것이다.

그는 폴란드의 연극평론가 얀 코트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드러난 인간성에 대한 어둡고 절망적인 관점에서 셰익스피어를 재해석한 것에 영향을 받아 그 때까지 낭만적으로만 해석되고 공연되어왔던 희극 ‘한 여름 밤의 꿈’에 인간의 “어둡고 강력한” 성적 폭력의 가능성을 극대화한 서커스 극으로 변환시켰다.

이보다 4년전 찰스 마로윗츠는 ‘마로윗츠 햄릿’에서 종전까지 해석되어오던 귀족적 햄릿관을 내던져 버리고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를 해체하고 오늘의 자유주의적이며 민주주의적인 관점에서 햄릿에 대한 촌평 위주로 극을 재구성하여 불량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햄릿을 잔인하게 조롱한다.

2004년에 초연된 영국의 콤플리시테 극단의 ‘자에는 자로’에서 연출자 사이먼 맥버니는 무대를 이태리 공작 저택에서 현대 헝가리의 정치판으로 옮겨 놓고 도덕적 혁명과 국가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정치권력의 남용과 법의 왜곡을 신랄하게 희화한다.

피지배자가 당하는 부정의와 상관없이 지배계급 내부에서 벌어지는 냉소적인 권력다툼을 전경화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오늘의 정치상황에서 세계 어디서나 발견되는 보편적 현상이기도 하여 맥버니의 현대적 접근을 정당화시켜준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오스카라스 코르슈노바스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를 ‘피짜 헛’과 ‘피짜 인’의 주방으로 만들어 놓고 두 갈등하는 귀족 가문을 오늘날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 아래에서 적자생존식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두 피짜 체인 사이의 싸움으로 현대화한다.

결말은 더욱 충격적이다. 두 청춘 남녀의 무죄한 죽음 앞에서 두 가문이 화해하는 원작과는 달리 그 죄없는 죽음 앞에서조차 두 가문은 증오와 반목과 살인을 더욱 강화시킨다.

또 하나 비교적 널리 구사되는 접근법이 있다면 그것은 자국의 연극미학으로 셰익스피어를 지역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필자는 1994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브라질 극단이 만든 ‘로미오와 줄리엣’을 봤는데, 극장은 어느 창고를 개조한 듯한 공간이었고, 마당 한 가운데 폐차장에서 주워온 듯한 작은 승용차 한 대를 놀이터 삼아 브라질의 배우들이 삼바의 리듬을 춤추고 노래하면서 극의 비극성보다 희극성을 강조하였다.

한국의 양정웅이 ‘한여름 밤의 꿈’을 한국의 도깨비 놀이로 번안한 것과 흡사하다. 중국에선 베이징 오페라 형식으로, 일본에선 카부키나 노의 형식을 차용해서 셰익스피어를 무대화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가 오늘날 특히 경쟁적으로 무대화되는 것은 세계화의 현상과도 유관하다. 오늘의 많은 연출가들은 극작가의 국경을 인정하지 않으며, 세계에서 가장 좋은 작가의 작품을 연출하고자 하는 야심을 보이는데, 그가 바로 셰익스피어인 것이다.

서거한 지 근 400년이 된 셰익스피어는 살아생전에 이미 부조리극, 서사극, 잔혹극 등 현대 연극의 대표적 경향들을 예측하게 하는 극의 형식을 선보였고, 더 나아가 외양과 실제,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사이의 구분을 상대화시키며 존재의 근본적 문제들을 냉정하게 천착하였다.

극의 형식, 주제 모두에서 그는 내일보다도 더 현대적이다. 그래서 그의 희곡들은 세계 어디선가 매일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양식으로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식자들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충실한 공연을 소리 높여 요구하지만 그의 현대성을 발견하여 현대적 미학으로 재구성하는 것이야말로 원작에 충실한 접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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